12. 용기 내는 날이 올까?

그만둔다는 건 얼마나 큰 결심 일까.

by 라즈베리맛젤리




중동 승무원이 된 평범한 ‘나’라는 사람






#새벽비행.


대략 아침 8시 출발하는 비행기라 치면, 나의 회사 차량 픽업 시간은 6시쯤이 될 것이고. 무조건 비행 전 밥과 커피를 챙겨 먹으면서 여유롭게 준비해야 하는 강박이 있는 나는, 2시간 전인 새벽 4시쯤 일어난다.

한마디로 비행 4시간 전부터 나의 비행준비가 시작된다.


엉덩이가 들썩들썩거리는 빠른 템포의 곡들은 없어서는 안 될 나의 노동요였다.

알람에 깨자마자 자연스레 멜론 노래 리스트를 쓰윽 둘러본다. '오늘은 무슨 노래가 땡기려나'

화장하면서 거울을 보니 이 날도 눈 주위에 알레르기도 아닌, 작디작은 붉은 점들이 올라왔다.

몸이 안 좋아지고 있다는 증거들은 컨실러로 찹찹 가리기 바빴다.



‘홍삼이 어디 있더라..’

주섬주섬, 홍삼 한포와 몇 알 남아있는 비타민 그리고 몸에 좋다는 것 몇 개를 더 챙겨 먹으면서 안정감을 갖는다. 이거라도 안 먹으면 불안하니까.


잠을 못 자는 거는 시작에 불과했다. 슬슬 이곳저곳에서 아프다는 내색을 하기 시작했다.

그저 나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고 노력하는 중일뿐이다.



생각해보면 오랫동안 비행일을 건강하게 하시는 분들도 많다. 참으로 부럽다.

다만 변명을 하자면, 예전에도 이야기했듯.

당시 회사의 비행시간은 꽤나 많았다. 그리고 나는 주로 유럽 비행을 선호했는데, 유럽 비행은 대략 4~6시간짜리인 중거리 비행이며 레이오버(그곳에서 머무르고 오는 비행)를 할 때면 대략 30시간 정도 머무르고 온다. 한마디로 다른 항공사처럼 오래 머무르지 않았다.

(그나마 오래 머무르는 비행을 한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였다.)


그래서 대부분 내가 눈을 뜨고 있을 땐, 비행 중이었다.

그렇게 나는 내 몸이 망가지는 줄 모르고 비행하기 바빴다.




‘그래 이제 운동도 하고, 커피도 정말로 많이 줄였으니 괜찮아질 거야’

나는 첫 1년 차에 그만두고자 했던 충동을 빼면, 그 이후에는 그만두고 싶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사실 그만두는 게 무서웠다.

이곳의 분위기와 일하는 것들 모두 다 나에게는 익숙해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에 다시 가서 새롭게 일할 자신이 없었다. 동기들과도 항상 회사에 대해서 투덜투덜거리다가도 대화의 끝은 ‘그래도 재미있다’였다.


내가 손에 쥔 이 모든 것들을 놓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을 했다.

‘ 난 이렇게 여행 다니고 내 마음대로 생활하는 이곳이 좋단 말이야’

이러한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출근하는 길, 회사 픽업 버스에서 아는 한국인을 만났다.

듣자 하니 또 다른 누군가가 퇴사를 하고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소식이었다.

항상 이런 말을 들으면, 우리의 이야기 끝은 '한국 가면 뭐 해야 해?'로 끝났다.

한마디로 한국 가서 무언가를 할 자신이 없었다.


이야기를 마치고, 창밖 너머로 떠오르는 노른자 같은 해를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 나도 용기 내서 그만두는 날이 올까..?'

나에게는 상상할 수 조차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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