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승무원이 된 평범한 ‘나’라는 사람
#위경련
그만둬야 하는 이유가 없었던 걸까 아니면 그만둘 용기가 없었던 걸까..?
그만두는 사람들이 부럽기는 했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언제까지 중동에서 살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이 마음속에 항상 자리 잡고 있었다.
이 직업은 너무너무 좋은데, 언제까지 이곳에서 내가 살 수 있을까?
돌아가야 한다면 30이 되어버린 지금이 기회일까?
그렇게 나는 그만둘 용기는 없으면서 생각은 너무나도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유럽 비행에서 돌아가는 비행 중.
말도 안 되게 갑자기 배가 아팠다. 이렇게 아팠던 적이 처음이기에,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었다.
심지어 나의 포지션은 일이 많은 갤리이기에 쉴 수가 없었다.
허리를 제대로 펼 수 없을 만큼 배는 아팠지만,
그래도 일은 해야 했기에 허리를 살짝 굽힌 채 계속 일을 했다.
동료들도 걱정은 되지만 본인들의 일이 너무 많아 날 돌볼 겨를이 없었다.
그렇게 랜딩을 했다. 검색해서 알아보니, 위경련이 온 듯했다.
집에 돌아온 나는 거대한 약통을 장롱에서 꺼내서는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위가 아팠던 적이 없던 나는 위통약이 없었고, 약국에서 어서 사 와야만 했다.
아픈 와중에 약국에 가서 사 온 약을 먹고 누웠는데, 괜스레 서러웠고 무서웠다.
의료시설이 너무나도 낙후된 이곳..
아프지만 내가 알아서 증상과 약을 찾아서 사 먹어야 하다니. 한국이 사무치게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이곳에서 혼자 지내면서 아팠던 적이 꽤나 많았다.
그리고 아플 때마다, 이 곳의 의사들이 처방해준 약을 먹고 제대로 나았던 적이 없었다.
뚱딴지같은 약을 줄 때도 있었고, 의학적 지식이 나보다도 없는듯한 느낌을 너무 많이 받았다.
(이것은 나만의 의견이 아닌, 모든 크류들이 인정한 사실이다..!)
때문에, 이곳에서 아프다는 것은 굉장한 두려움을 주었고, 나는 그것을 4년째 버티는 중이었다.
그러다보니 이렇게 아픈 날에는 한국에 있는 부모님께는 더욱더 전화를 드리지 않았다.
다행히 그 비행 후에 나는 며칠의 쉬는 날이 있었다. 문제는 그다음, 미국 비행이었다.
'과연 14시간의 비행을 내가 안 아플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미국은 회사 보험이 안되는데, 가도 괜찮을까..'
괜스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병가를 내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병가를 낸 후, 나는 여느 날과 똑같이 쉬고 있었다.
쉬면서 위경련은 왜 오는지 그리고 어떻게 관리를 해야 하는지를 인터넷을 통해서 배워가고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제때 밥을 먹을 것' 이었다. 너무나도 간단하지만 내가 하기 힘든 것이었다.
'매일매일의 스케줄이 다른데..'
오늘은 낮비행, 내일은 밤 비행, 그다음 비행은 아침비행으로 섞인 이 스케줄을 보자 하니,
밥을 매 끼 챙겨먹는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그리고 때마침, 한국에 있는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오늘 비행 안 갔어?"
차마 병가를 냈다는 말을 못 하겠던 나는, 쉬는 날이라고 말해버렸다.
그런데 엄마가 뜬금없이 말했다.
"그만두고 들어와서 엄마랑 살자 "
아팠던 나는 많이 약해졌던 탓 일가, 이 생활에 지쳐버렸던 걸까
"엄마, 나 진짜로 그만두고 들어가야 할까 봐... "
이 말을 하고는 펑펑 울어버렸다.
수화기 너머의 엄마는 영문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