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여전히 나는 불안했다.
그만두는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다시 돌아온, 평범한 ‘나’라는 사람
# 한국의 삶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정말로 잠만 잤다.
나의 거대한 이민가방과 캐리어는 채 열어보지도 못한 채, 방 한쪽 구석에 쌓아놨다.
그동안 어떠한 피로가 이리도 쌓였던 걸까.
정말로 하루의 대부분을 잠자는데만 다 보냈다.
그리고는 3주가 될 무렵, 병원에 가봐야 하나 라는 생각을 했다.
'3 주내 내 잠만 자고 밥만 먹고 있는데도 이리도 힘들다니'
엄마도 걱정을 하기 시작하셨다.
5년 동안 쌓인 피로를 한 달 안에 다 풀어내는 건지. 내가 약한 건지.
전혀 알 순 없었지만, 1달이 될 무렵에서야 겨우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아침 볕에 눈뜨고, 해가진 밤에 자연스레 잠자는 이 패턴에 나는 행복감을 심하게 느꼈다.
그동안 내가 못했던 것들. 너무나도 행복했다.
하필 내가 좋아라 하는 '봄'에 한국에 갔던 나는.
여기저기 푸릇푸릇해지는 나무와 한껏 늘어난 일조량으로 인해서 조증에 가까운 희열감을 맛봤다.
'그래 이게 바로 봄냄새지..!'
그리고 정말로 그리웠던 것은,
저녁에 아무 때나 나가서 치맥을 하거나 편의점에서 자유롭게 맥주 한 캔 하는 것.
정말로 소확행의 끝을 달리고 있었다.
'이런 게 찐 행복이지'
컨디션이 돌아올 때쯤, 가장 먼저 한 일은 위내시경을 받으러 병원에 가는 것이었다.
비행할 때 아팠던 위가 걱정되었다.
잠깐, 승무원 시절을 이야기 하자면.
그 당시 중동의 의료시스템이 안 좋았던 탓인지.
그곳에 지낼 때에는, 아팠던 순간에 의사를 믿을 수 없던 상황이 너무나도 많았다.
그래서 나는 꼭 한국만 오면 꼭 병원에 들러 의사 선생님을 봐야만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는 처방받은 약들은 소중하게 가지고 돌아 가서는, 장롱 속 깊은 곳에 보관해놨었다.
정말로 아플 땐 한국에 올 수 없으니 항상 비축해두는 수밖에..!
그곳에서는, 내가 판단하고 진단하는 게 더욱더 정확하거나 혹은 안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한국에서 처방받은 약이 있어야만,
아픈 어느 순간에라도 내가 나를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국에 있다는 것은,
내가 아무리 아플지라도 믿을만한 병원에 한껏 기대도 된다는 의미였고,
이것이 나를 안심하게 만들었다. 한국의 복지에 든든함을 느낀 것은 이때부터였다.
'아파도 걱정 안된다구!'
한국에 있으면서 모든것이 만족스러웠다.
그렇게 컨디션이 돌아올 때쯤, 한국에 있는 친구들을 볼 수 있었다.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혹은 볼 수 없었던 친구들과의 약속을 한껏 잡아놨다.
하지만 정신을 차린 이때부터, 조금씩 불안하긴 했었다.
비행을 하던 습관들은 한국에서도 여전했다.
잠이 들어도, 여전히 비행을 하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꿈속인데도 나는 꽤나 열정적으로 일만 하는 모습이었다.. 꿈인데도 억울했다..!
혹은 잠을 자다가도 비행에 늦은 줄 알고는 침대에서 뛰쳐나온 적도 몇 번 있었다.
정말로 어이가 없는 동시에, 내가 이렇게 긴장하며 살았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습관이란 게 이렇게나 힘이 세구나’ 했다.
그리곤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는 불안감은 항상 내 마음속에 내재되어있었다.
친구를 만나러 나 가는 길에도 내 맘속은 다음에 무슨 일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에 대해서 불안해하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생각했다.
'6개월만 푹 쉬기로 했잖아, 5개월은 아무 생각하지 말자. 5개월 후에 본격적으로 준비할 거니까'
그렇게 나는 마음속으로 아무 단어나 생각해내기 시작했다.
보이는 그대로 마음속에 읊어댔다.
“자동차, 커피, 나무, 봄이다”
불안을 최대한 마음속 깊숙이 묻어두기 위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