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다국적 항공사에서 시니어가 된다는 것
건강한 소신을 갖는다는 것
중동 승무원이 된 평범한 ‘나’라는 사람
# 시니어가 된다는 것
2년 차,
내가 그만두기로 한 1년이 어느덧 몇 개월은 훌쩍 지나고 있었다.
‘그래 말 한마디가 뭐가 대수라고. 재밌으면 더 다니는 거지!’
내가 그전에 내뱉은 말은 잊어버린 채, 나는 회사에 대한 만족감이 스멀스멀 커지고 있었다.
그 이유는 우선 회사의 분위기였다.
듣자 하니 다른 동네의 시니어리티는 말도 못 하다고 했다.
하지만 이곳은 내 할 일만 야무지다면, 주니어든 시니어든 상관이 없다. 정말로.
오히려 주니어리티라고 불리는 주니어들의 텃세가 존재했다..하하
모든 규칙을 지키며 야무지게 일하는 주니어크류들을 괴롭힘을 당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말발이 세다면 더욱더 건드리지 않는다. 정말로.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지 않지만, 일이 많이 익숙하지 않고
초반에 어리둥절하면서 말대답을 못하는 초초 주니어들이 많은 괴롭힘을 당한다.
그리고 사실 주니어 때는 괴롭힘을 당해도 당하는지 모른다는 게 함정이다.
나 또한 그랬다. 주니어 때는 이 크류가 왜 나한테 이렇게까지 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혹은 눈치채지 못했다. 시니어가 미워하면 그런가 보다 하고 미움을 받았다.
그러한 미움에 주눅만 들 뿐, 왜 그런지 당당하게 물어볼 수 없었다.
또한 문화 차이나 억양의 차이도 분명 존재했는데.
주니어였던 나는 그것을 제대로 캐치하지 못했던 시절이 있었다. 어느 문화권은 대놓고 어떠한 사람을 욕하기도 했고,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상식으로는 그게 욕하는 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그건 분명 언어의 장벽과 문화의 차이를 넘어서지 못한 나의 무지함이었을지도 모른다.
혹은 그 당시에 나는 그 기싸움을 이겨낼 수 없음을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히려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주니어들은 오히려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다.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모든 상식과 공식이 무너지고
새로 지어지던 때가 바로 중동에 적응하던 이 시기였다.
주니어라고 기가 죽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환경 덕분이었을까?
꼭 해야 할 말과 아닌 건 아님을 밝히는 당당한 크류들을 보면서,
나 역시 자연스레 그들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그러지 않으면 당당한 이 크류들 사이에서 살아남을 수 없음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이때 내가 만난 다양한 크류들의 영향력은 어린 나에게 꽤나 크게 다가왔다.
덕분에 나의 ‘소신’이라는 게 건강하게 자랄 수 있었다는 감사함이 크다.
처음에 중동에서의 삶은, 나에게 답답함과 제한만을 준다고 생각했다.
나와는 너무 다른 문화. 결코 적응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했다.
가끔은 동료들의 이러한 당당한 언행들이 부담스럽기도 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서 나는 많은 문화의 다양성을 배웠다.
내가 언제 중동에서 그렇게 다양하고 각기 다른 생각과 에티튜드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서 일해 보겠는가..
그 다양함 그리고 당당함은 내가 그전에 생각했던 것 보다도 훨씬 거대한 카테고리였다.
다양한 국적이 있는 만큼, 차별도 존재했다.
가끔 어떠한 크류들은 다른 크류를 욕하면서 그들이 가난한 나라에서 왔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도 처음엔 그런가 보다 했다.
그리고 그들의 생각에 동의한 적도 있다.
하지만 이들 중 누군가는 그 누구보다도 더 큰 꿈과 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그게 어떠한 사소한 일 일지라도 말이다.
가끔 내가 부끄러웠던 적도 없지 않아 있었다.
처음엔 참으로 이상했다. 그리고 나중에는 '아하' 싶었다.
면접 때 왜 그렇게 문화의 다름에 대해서 물어봤는지..
나의 면접 답변에는 문화의 다름을 이해한다고 수없이도 말하고 다녔지만.
내가 실제로 느꼈던 '문화의 다름'을 이해하는 데는 정말로 많은 노력을 들여야만 했다.
다국적 항공사였던 이곳.
지금에서야 깨달은 사실이지만, 이곳의 비행은 좀 많이, 심하게 재미있었다.
‘다양한 인종이 섞여있어서’라는 게 지금 나의 결론이다.
그렇게 나는 다국적 항공사에서 점점 시니어가 돼가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