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스펙트럼장애와 신경다양성
앨리스는 자폐스펙트럼장애가 있다. 무려 세 군데의 병원, 4명의 정신과 전문의로부터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앨리스의 일상을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에 올리면 가장 많이 달리는 댓글의 유형은 당신의 아이는 자폐처럼 안 보인다는 것이다. 사실 어느 정도 이해는 된다. 앨리스와 비슷한 (여자, 친사회적, 외향적, 말을 잘하는) 유형의 자폐 아이는 나도 많이 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자폐처럼 안 보인다를 넘어서서 당신의 아이는 자폐가 아니라는 말을 정중하게, 혹은 오만하게, 혹은 화를 내며 표현하는 사람도 있다. 자폐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이런 댓글을 다는 사람은 줄어들기는커녕 박멸해도 나타나는 바퀴벌레처럼 계속 등장한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당신의 아이는 자폐가 아니에요”라는 댓글에 숨겨진 의미를 알아보고 이것이 아이에 대한 덕담이 아니라 사실은 모욕인 이유를 자폐 아이의 양육자 입장에서 풀어보고자 한다.
그 사람들이 “당신의 아이는 자폐가 아니에요”라는 댓글을 쓰는 이유
나는 자기가 정신과 전문의도 아니면서, 실제로 아이를 만나본 적도 없으면서, 함부로 정신과적 진단을 내리는 사람들이 도대체 어떤 사고방식을 가진 건지 매번 궁금했다. 그래서 진단 놀이 댓글을 볼 때마다 바로 삭제하기보다는 일단 댓글을 캡처해서 보관한 후 꼼꼼히 읽어보았다. 그래서 발견하게 된 이들의 공통점은 크게 다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1번. 자폐를 접해본 적이 있고 자폐에 대한 고정관념이 확고하다.
모종의 이유로 (자폐를 미디어에서 봤거나, 혹은 자폐가 있는 지인이나 가족이 있거나) 자폐를 접한 적이 있으며, 이후 자폐에 대해 더 공부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본인이 알고 있는 자폐가 자폐의 유일한 모습이라고 생각하며, DSM-5에서 자폐가 아스퍼거증후군까지 포함하는 자폐스펙트럼장애로 범주가 넓어졌지만, 관심도 없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2번. 자폐를 겉모습으로 쉽게 구분할 수 있다는 오만함과 무례함을 겸비했다.
1번과 연결된 것이다. 자폐에 대한 고정관념이 확고하게 잡혔기 때문에 본인이 겉모습만으로 자폐인을 구분할 수 있다는 착각을 한다. (실상은 자폐스펙트럼장애의 진단 기준도 모르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여기까지는 오만함의 영역이다. 여기에 무례함을 겸비한 사람은 굳이 자신의 검증되지 않은 “판단”을 원하지도 않는 상대에게 정중하게, 혹은 비판적으로, 혹은 화를 내며 표현한다.
3번. 자폐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선의라고 생각한다.
모든 진단 놀이 댓글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간혹 “축하”의 뉘앙스로 당신의 아이가 자폐가 아니라는 댓글을 다는 사람이 있다. 솔직히 가장 난감한 댓글이다. 악의가 아니라는 것이 진심으로 느껴질 때 더 그렇다. 하지만 이런 댓글의 기저에는 자폐는 나쁜 것이라는 생각이 깔려있다. 때문에, 자폐가 아니라는 말을 마치 아이에 대한 칭찬처럼 하는 것이다. 하지만 큰 착각이다. 엄밀히 말하면 이런 댓글은 자폐 아이의 양육자인 나에게 모욕으로 느껴진다.
아이가 자폐가 아니라는 댓글이 자폐 아이 양육자에게 모욕인 이유
서두에도 밝혔지만, 앨리스는 이미 자폐스펙트럼장애 진단을 받았다. 그리고 대부분의 영상에서 아이가 자폐 진단을 받았음을 드러냈다. 자폐는 아이가 가진 장애이며, 동시에 정체성의 일부이다. 그런데 아이의 영상에 “칭찬”의 의미로 자폐가 아니라는 댓글을 다는 것은, 이미 자폐인인 아이에게 자폐는 나쁘다고 묘사하는 것이며, 아이가 가진 정체성을 대놓고 비난하는 것이다.
자폐는 장애이다. 장애는 사회 적응을 어렵게 한다. 하지만 장애 자체가 선하거나, 악한 것은 아니다. 사회는 장애를 부정적으로 묘사하지만, 이는 사회가 장애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 세상의 모든 책이 점자로 되어 있다면 그때부터는 누가 장애인일까? 지구별에서 60dB 이상의 소음이 쉬지 않고 난다면 그때부터는 누가 장애인일까? 이를 생각해 보면 장애는 의학적으로 규정된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규정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장애는 내가 살고 있는 사회가 어떤가에 따라 그 범위가 조금씩 달라진다.
그래서 규탄해야 할 대상이 있다면 장애 그 자체가 아니라 많은 사람을 장애인으로 만드는 사회적 시스템이다. 장애는 긍정적인 것도 부정적인 것도 아니며, 장애에 "부정적인 것"이라는 개인의 가치관을 주입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것도 명백히 해당 장애가 있다고 밝힌 아이의 영상에 말이다. 이런 행동은 의도가 선하다는 말로 포장할 수 없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악하고 역한 행동이다.
그렇다면 어떤 댓글을 남겨야 할까
많은 사람들은 자폐를 비롯한 발달장애인의 영상을 보면서 이들이 얼마나 비장애인과 비슷한지 평가하기 바쁘다. 그러면서 이들이 장애인인지 잘 몰랐다고 평가한 자신을 좋은 사람이라 여기며 뿌듯해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평가 자체가 비장애인이 장애인에 대해 가지고 있는 우월의식의 표현임은 알고 있을까. 발달장애인이 어떤 일상의 영상을 공유했다면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불특정다수에게 자신이 비장애인처럼 보이는지 평가받기 위한 목적은 절대 아닐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나와 비슷한 양육을 하고 있는 자폐 아이 양육자들과 고기능 자폐 아이의 일상/육아/교육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서 굳이 바쁜 시간을 쪼개어 영상을 찍고 수고스럽게 편집을 한다. 내가 원하는 것은 비슷한 양육자들과의 소통이며, 비전문가의 진단 놀이는 원한적이 없다. (진단에 관해서는 이미 정신과 전문의 4명에게 답을 구했다) 자폐 양육자라면 앨리스의 영상을 보면서 궁금한 점을 구체적으로 물어보면 되는 것이고, 앨리스와 비슷한 아이를 양육하지도 않고 딱히 궁금한 것이 없다면 이런 자폐 아이도 있구나 하면서 넘어가면 되는 것이다. 굳이 잘 알지도 못하는 영역에 대해 고장관념, 편견, 오만함에 사로잡혀 말도 안 되는 댓글을 남기지 말자.
병적인 평가문화, 비교문화, 장애인에 대한 우월의식. 지금의 진단 놀이에는 이런 추악한 기저가 깔려있다. 이제 그만해야 한다. 장애인은, 장애는, 자폐는 평가 대상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