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학의 시련

일상의 지속

by 나뭇결


2019년, 복학하던 시기의 얘기를 하고자 한다. 굳이 서울에서 정신과 진료 및 치료를 진행해야 했던 이유가 설명되는 부분으로, 가족이 치료에 얼마나 방해가 될 수 있는지, 지방에서 방문한 정신과에서 어떤 일을 겪었는지 말할 것이다. 복학하긴 했으나 다리가 부러지는 사고로 인해 본가로 내려가야 했고, 본가에서 혼자 진도를 따라잡으며 공부 및 치료를 병행했으니까.

다리가 부러진 이유는 별것 없다.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이유로 엄마가 대뜸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왔다는 것이다. 내 자취방이었던 옥탑방에서 슬리퍼 차림으로 다급하게 내려가다가 그대로 슬리퍼가 미끄러졌고, 발목이 부러졌다. 당장 휠체어를 타고 교내를 돌아다니는 것도 문제지만 옥탑방을 오가며 생활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판단하에, 나는 결국 본가인 제주도로 돌아가야 했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약은 환자의 자의적인 판단으로 중단하면 안 되기 때문에, 병원에서 처방받던 처방전 목록과 함께 제주도의 정신과를 찾았다. 정신과라는 장소에 처음 방문한 엄마는 불안해했고, 오히려 내가 그런 엄마를 진정시키며 진료실로 들어갔다. 내 처방전을 봤던 의사의 첫마디가 잊히지 않는다.


“이 정도나 먹는다고요?”


내가 느끼기로는 ‘이렇게 멀쩡해 보이는데 이 정도나 처방해 준 그 병원이 잘못된 거 아니냐?’라는 어조였다. 물론 이것은 내 기분 탓이고, 아무래도 의사끼리 공유하는 기본적인 처방 상식에서 비롯된 첫마디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엄마의 양약에 대한 무조건적인 불안을 증폭시키기에 충분했다. 사실 내게 그 정도의 약은 현상 유지밖에 되지 않는 분량임에도, 엄마는 끝까지 약을 먹지 말자고 나를 설득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어쨌든, 덕분에 엄마를 내보내야 했던 나는 기분이 상했다. 내가 보통 사람보다 많은 양의 약을 복용 중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으며, 그럼 그 약을 먹고도 현상 유지도 겨우 하는 나는 대체 무언가 하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결국 나는 제주도의 병원은 다시 방문하지 않았고, 상담 치료도 진행하지 않았다. 한 번에 두 달여 치의 약을 받는 것으로 충분했다. 그렇게 침대 생활이 시작되었다.


본가에는 퇴직한 아빠, 그런 아빠를 대신해서 가장 역할을 하는 엄마, 그리고 취직한 오빠가 살고 있었다. 사실상 아빠와 제일 오랜 시간을 보냈으나, 그리 친밀한 사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하루 종일 하는 말이라고는 ‘밥 먹어라.’ ‘잘 먹겠습니다.’ 정도밖에 없었다. 집안일하다가 간식으로 과일을 잘라다 주시기도 했으나 그때뿐으로, 서로 눈치만 보며 최대한 피해 다녔다.

엄마는 일을 하다가 저녁에나 들어왔으나, 그 후로 나에게 말을 걸기에 열심이었다. 오늘 샤워 도와주겠냐, 밥은 잘 먹었냐, 양약은 끊으면 안 되냐, 엄마아빠를 너무 미워하지 말라 등. 내가 약을 하루나 이틀 정도 먹지 못하면 금단증상에 시달리는 것을 보고서도 설득은 멈추지 않았고, 그에 우울해져서 울고 있으면 무어라 말을 붙이지 못해서 안달이었다. 나는 차라리 엄마가 오기 전에 잠들어 있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고 느낄 정도였다.

오빠는 그나마 별다른 터치가 없었다. 어렸을 때도 서로에게 무관심했기 때문에 가끔 어딘가 갈 일이 있을 때 오빠 차를 얻어 타지 않으면 대화할 일 자체가 없었다.

결국 제일 큰 문제는 엄마였다. 엄마는 날 돕고 싶어서 안달이었고, 적극적으로 행동했으나 하나같이 틀린 방법이었다. 최악의 치료 환경에서 공부한 결과가 좋을 리가 없었고, 2019학년도 봄학기 성적은 최악이었다. 나는 뼈가 붙자마자 서울로 향했고, 가을학기를 준비하며 나 홀로 지낼 수 있는 옥탑방에서 다시 병원에 다녔다.


우울증이라는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약의 도움도 분명 필요하며 환자 자신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환경의 조성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 집’은 절대 치료에 좋지 못한 환경이었다.

첫째로, 내 공간이 없었다. 서울로 대학을 가면서 내 방이 사라졌고, 안방에서 엄마와 같은 침대를 쓰는 상황인 데다 아빠는 거실로 쫓겨났으니 얹혀사는 기분이 들 수밖에 없었다. 내가 원하는 감정 표현을 하기 어려울 정도로 어색한 사람들과 하루 종일 한 공간에 있어야 하는 것은 고문이 따로 없었다.

둘째로, 엄마는 내가 치료받는 것을 불만스러워했다. 다리의 치료에는 열성적이었지만 내가 약을 먹는 것에는 눈치를 줬다. 점점 살이 붙는 몸도 좋아하지 않았다. ‘엄마의 마음에 들지 않는 내 모습’이 보이면 보일수록 더 우울해질 수밖에 없었다.

셋째로, 그러면서도 내가 우울해하지 않기를 바랐다.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이 ‘대체 어떻게 해줘야 하는 거냐?’라는 말이다. 나도 답답하지만 어떻게 해달라고 말할 수가 없다. 내가 보기에 가족이 해줄 수 있는 최선은 나와 다른 공간에 있어 주는 게 전부니까. 애초에 전제가 틀렸다. 우울증 환자는 어떤 노력을 해도 우울한 상태일 수밖에 없는데, 가족이 뭘 해준다고 나아질 리가 있겠는가? 주변인이 해줄 수 있는 최선은 상태가 더 나빠지지 않을 정도로만 유지를 도와주는 것이다. ‘기분이 나아지기를 바란다’는 기대 자체가 우울증 환자에겐 부담이며 독이다.


이 독한 치료 기간 동안 난 가족과 한층 더 멀어졌고, 다시는 본가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그 덕인지 2019년 가을학기는 무난하게 마칠 수 있었다.


**지난주 말없이 연재를 쉬어 죄송합니다ㅠㅠ!

ㄴ이사를 하면서 정신이 없었습니다... 이거 공지를 올리면 올릴 수 있는 회차가 줄어드나 싶어서 고민하다가 이번주에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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