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지속
이번에는 상담과 그 이후의 진행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나는 2018년도 한 해 동안 일주일에 한 번, 1시간 동안 상담을 진행했고 이런 주기적인 상담이 정확히 어떤 도움이 되는지 궁금한 사람이 있을 것 같아 이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다. 그중 제일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꺼내볼까 하는데, 우울한 사고방식, 비관의 극대화가 내용에 포함되어 있으니 유의하길 바란다.
상담을 받기 위해, 그리고 약 처방을 위해 정신과에 가는 날이었다. 버스를 타는데 문득 내 삶이 너무 불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충분히 분에 넘치는 풍족한 삶을 살고 있는 데도 만족하지 못하는 내가 너무 끔찍한 욕심쟁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이게 전부 ‘너무 많이 알고 있어서’라는 생각에 그냥 모두가 원망스러워졌다. 왜 하필 인간, 사람으로 태어나서 이렇게 복잡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차라리 생각하지 못하는 돌로 태어났다면 아무 생각 없이 이 세상 구경을 했을 거라고,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사실 이것은 어렸을 때도 종종 했던 생각이 부정적인 방향으로 극대화된 것이다. 어릴 적의 나는 환경과 동물에 관심이 많았고 환경 보호는커녕 파괴에 앞장서며 어떤 책임도 지지 않으려 하는 인간에 환멸이 나 있었다. 만 11살의 나는 친구들에게 공공연히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부끄럽다’라고 할 정도였다. 20살의 나와 차이점이 있다면 11살에는 책임을 질 수 있는 위치에 올라 이 상황을 고치려는 의지가 있었다는 것이고, 20살에는 없었다는 것이다. 난 당연히 상담사님께 이런 얘기를 했고, 여러 가지 질문에 대답해야 했다.
-제일 큰 감정이 죄책감인 것 같은데, 왜 그런 죄책감을 가질까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어서요.
-무언가 해야 하는 건가요?
충분히 분에 넘치는 삶을 살고 있는데, 뭔가 세상에 도움이 되거나 기여를 하지 않고 있어서요.
-그러면 가치가 없는 건가요?
당연히 그렇지 않을까, 생각하면서도 ‘모든 생명은 가치가 있다’고 배워온 것에 발목을 잡혔다. 딱히 세상에 대단한 기여를 하지 않아도 사람, 짐승 상관없이 모든 생명은 태어난 것만으로 가치가 있는 삶이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왜 나에게만 이렇게 박해졌을까?
-내 곳간이 채워져야 남도 도울 수 있는 거잖아요. 제가 보기에 OO님은 내 곳간이 텅 비어 있는데 남을 도와줄 수 없다고 슬퍼하는 걸로 보여요.
맞는 말이다. 그러면 왜 나는 남을 돕지 못해서 안달일까?
오랜 고민의 결과, 나는 이것이 성격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천성인지 환경에 의해 형성된 결과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냥 이게 좋고, 기쁘니까. 자기만족으로 다른 누군가를 돕는 것이다. 당연히 모든 이에게 적용되는 얘기는 아니고 내 개인적인 특성이다. 오랜 기간 남을 돕고 고맙다는 말을 듣는 것에서 자기효능감을 느껴왔기 때문에, 또한 좋아하고 애정을 느끼는 대상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 하는 오지랖이 커서 오히려 돕지 못하는 내게서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세상에 빚이라도 진 것처럼 괜히 더 도움이 되려고 하는 노력을 버렸다. 민폐를 끼치지 않겠다는 생각도 버렸다. 사실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으나 그 성격이 내게 독이 되는 상황이라면 버려야만 했다.
상담사님의 비유처럼, 내 곳간이 채워지지 않은 상황에서 뭔가 해보겠다고 발버둥을 쳐봐야 밑 빠진 독에 물을 들이붓는 상황이 될 뿐이다. 일단 지금은 내 문제를 타개해야 했고, 내 곳간을 채워야 했다. 다소 이기적일지라도 나에게 집중하는 연습이 필요했다. 남을 돕지 않고도 일상생활 중에서 만족을 느낄 방법, 나 자신에게 만족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상담사님은 그런 나에게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는 취미를 가져보라고 권했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프랑스 자수였다.
왜 하필 프랑스 자수였는가, 하면 별 이유는 없다. 그냥 예뻐 보였고, 마침 프랑스 자수 키트를 팔고 있었던 것이다. 필요한 재료가 한 봉지에 전부 다 들어있는 키트를 하나 사서 바느질을 해보니 잡생각이 사라지고 어릴 때 종종 혼자 구멍 뚫린 양말을 꿰매어 신던 기억이 나서 즐거웠다. 나중에는 나름 도안을 그려서 원하는 자수기법을 검색해가며 작품을 만들긴 했지만 티코스터 이상의 실용적인 물건을 만들기는 어려워서 그리 오래 가지는 못했다. 결국 사놓은 여러 개의 실타래를 보빈에 감는 시간을 보내며 대부분의 불안하고 우울한 시간을 보냈다.
그다음으로 시도한 취미는 그림이다. 어릴 때부터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좋아하기도 했고 오래 그림을 끄적이기도 했기에 제일 쉬운 취미였는데, 노트북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타블렛을 장만해 놓고는 제대로 쓰지 않아서 그제야 작업툴을 제대로 배운 것 같다. 한번 시작하면 완성하기까지 멈출 수 없어서 시간을 보내기에 알맞은 취미이기는 했으나, 작업물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실력이 크게 늘지 않으면 되레 우울해지고는 해서 결국 큰마음 먹고 시작하게 되는 취미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언급할 만한 취미는 글이다. 내 불안한 생각과 감정을 글로 정리하면 해소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시도했고 나름 외출할 때 수첩을 들고 다니며 이것저것 생각과 감정을 끄적여보았다. 막상 불안으로 가득 차 있을 땐 잡설밖에 나오지 않았으나 침착할 때 다시 펜을 잡으면 질문할 수 있었다. 대게는 ‘나는 왜 이런 사람으로 성장했는가?’와 같은 고민들에 대한 대답. 이것은 나중에 답해보겠다. 결국 나중이 되어서는 일기나 에세이뿐만 아니라 소설 장르에 해당하는 글도 쓰게 되었고, 소설에서는 내 가치관이 더 투명하게 드러났다. 장르 상관없이 글을 쓰는 행위를 통해, 나는 나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었다.
**지난주 말없이 연재를 쉬어 죄송합니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