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시간을 보내는 법

일상의 지속

by 나뭇결


이전 글의 말미만 보면 내 2018년이 굉장히 암울했을 것 같지만, 사실 아예 그렇게만 보낸 것은 아니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도 나 자신을 위한 시간을 보내는 법을 찾기 위해 굉장히 많은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상담을 받으며, 친구나 지인들과 소통하며 몇 가지 조언을 얻고 다양한 도전을 해본 것이다. 나는 그렇게 취미 부자가 되었고, 이후의 생활에 나쁘지 않은 보탬이 되었다. 결국 ‘의미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던’ 셈이다.


첫 번째는 배우는 것인데, 평소에 한 번쯤 배워볼까 생각만 하고 있었던 것을 바로 시도했었다. 댄스학원과 프로그래밍학원이 그 일환이었으나 결국 큰 흥미는 느끼지 못했고, 정착한 것이 글과 그림이다. 주변의 도움으로 겨우 시에서 제공하는 그림 클래스를 신청할 수 있었던 것이 2018년 봄이다. 일주일에 한 번 나가서 길거리 드로잉을 했는데, 굳이 처음 보는 사람들과 데면데면하게 지낼 필요 없이 홀로 길거리를 거닐며 그림을 그리고 마지막에 서로의 그림을 공유하는 시간을 갖는 시스템이었다. 딱히 대단한 그리기 기법을 배우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수업을 기대했다면 마음에 들지 않았겠지만, 나에게 중요했던 것은 ‘그리는 시간을 주는 것’이었기 때문에 만족했다. 애초에 그리기 위한 시간을 따로 가져본 적도 없고 짬짬이 공부에서 도피하기 위해 낙서나 했던 나이기 때문에, 온전히 내 즐거움만을 위해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좋았다. ‘그래도 오늘은 무언가 했다’는 만족감은 덤이다. 과거의 나였다면 하루 종일 그림이나 그렸다고 하면 결국 놀았다는 거 아니냐, 그게 뭐가 그리 잘났냐고 자신을 다그쳤을 터였다. 하지만 평소에 움직일 힘도 기력도 없는 지금은 하루 종일 그림을 그리기 위한 시간을 줬고, 그것을 해냈다는 사실에 나를 격려할 수 있게 되었다. 글도 비슷한 맥락이었는데, 이것은 좀 더 다른 주제로 다뤄보고 싶기 때문에 추후에 다시 언급하겠다.

두 번째는 루틴을 만드는 것이다. 이전에 말했던 운동은 아니고, 기계적으로 취미활동을 하는 것이다. 정확히는 재활이 맞겠다. 예전에 좋아했던 취미활동들을 버릇처럼 되풀이하면서 이번엔 재미있는지, 흥미가 생겼는지를 고민해 보는 것이니까. 보통은 과거의 나였다면 관심을 가졌을 만한 애니메이션이나 영화, 혹은 소설과 웹툰이다. 물론 시간을 투자해 보면서도 재미있다는 감상도 없고 기력도 없다. 특히나 소설과 같은 활자는 읽는 와중에도 그 내용이 뇌리에 제대로 박히지 않아 기계적으로 스크롤을 내리기 일쑤였다. 하지만 중간에 그러고 있다는 자각이 들면 몇 번이고 되풀이하며 다시 봤다. 일단 보고 있으면 잡생각을 할 틈이 없을뿐더러 ‘어째서 과거의 나는 그걸 보지 않은 거야!’ 같은 원망을 듣기 싫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극단적인 피해망상의 확대로 인한 시도이긴 했으나, 그 덕에 당시의 콘텐츠를 놓치지는 않을 수 있었다. 오히려 현재의 극단적인 숏폼의 시대에서도 긴 영상과 기승전결, 활자를 선호할 수 있게 된 것은 덤이다.

하지만 이 시도의 핵심은 내가 내 마음에 솔직해지는 것이었다. 모든 것에 감흥이 없어진 지금, 내 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만 내가 ‘그나마’ 이것을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과거에 좋아하던 소설이나 만화를 보는 것뿐만 아니라 음식도 먹어본 후 내가 이것을 무난하고 가성비가 좋아서 먹는 것인지 좋아해서 먹는 것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했다. 위에서 배운 그림이나 글을 생산하는 과정에서도 실력 향상보다는 재미를 느끼기 위해 집중했다.


세 번째는 충분한 시간을 투자하는 것. 지난 시도를 통해 결과적으로 내가 게임이나 글에는 재미를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이 콘텐츠를 즐기기 위해 아낌없는 투자를 시작했다. 사실 ‘결국 하루 종일 게임만 했다는 거 아냐?’라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으나, 나름 변명을 해보자면 이렇다.

나는, 아니 대게 현대의 많은 학생들은 마음 편히 놀아본 적이 없다. 그냥 놀아본 적이야 많겠지만 항상 마음 한구석이 불편하고 소란한 것이다. 보통 난 이것을 ‘마음이 바쁘다’라고 표현하는데 나를 비롯한 지인들에게 정말 흔한 증상이다. 일하거나 공부할 땐 집중하고, 놀 때는 또 마음 편하게 노는 것에 집중하면 되는데 그게 안 된다. 심지어 자거나 누워있을 때도 마음 편히 쉬지 못하니 쉬는 게 쉬는 게 아니다. 그냥 굳이 시간을 써서 불안해하기에 가까운 행위를 하느니 명상이 낫다고는 몇 번이나 말하지만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상태’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사람이 많다. 나 역시 그래서 이것을 연습해야 했다. 노는 것에도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상하지만 현실이었고, 나는 최대한 쓸데없는 불안감을 느끼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 걱정, 두려워서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는 것이 현재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차라리 당장의 즐거움에 집중하는 것이 나를 위한 일이었다. 이것을 깨닫는 것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고, 상담도 큰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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