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학과 치료생활

일상의 지속

by 나뭇결


이제 타임라인은 2018년도로 넘어온다.

휴학생 주제에 서울에서 자취생활을 하는 것에는 장애물이 한두 개가 아니었는데, 제일 큰 산이 ‘뭐 할 거냐?’라는 질문이었다. 휴학하면 학교 갈 일도 없는데 그냥 본가에서 지내는 게 편하지 않으냐, 그런데 왜 굳이 서울에 있어야 하냐 이거다. 어찌저찌 서울에 자취한다는 말을 납득하고 받아들여도 ‘그럼 서울에서만 할 수 있는 특별한 일을 하겠지?’라는 기대가 깔려 있는 친척들과 대화하기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결국 나는 대외적인 이유를 만들어야만 했다. 가족과 살아봤자 더 죽고 싶어지기만 할 뿐이라는 걸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겉보기에 난 사랑받고 자란 막둥이였다. 그래서 사실 가족과 떨어져서 살 수 있다면 서울이든 대전이든 울산이든 상관없으나 일단 서울에서 자취하기를 선택했다. 같은 학교 친구들과 동아리 활동이나 스펙을 쌓기 위한 활동을 하겠다는 핑계를 들며.


두 번째로 높은 산은 어느 누구의 도움 없이 치료 생활을 지속하는 것이다. 예전에도 말했지만, 우울증 환자가 자의로 어떤 목표를 위해 꾸준히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보통의 의지가 없다면 불가능에 가깝다. 약물의 도움을 받거나, 그도 모자란다면 누군가의 어시스트가 필요하다. 하지만 난 정신병동에 간 게 아니라 자취를 시작했고 서울에는 특별한 연고가 없었다. 결국 나는 내가 강제로 움직일 수 있는 치료방법을 고민해야 했다.

일단 학원을 결제했다. 어렸을 때부터 한푼 두푼 모은 세뱃돈이 꽤 되었다. 사실 그런 돈을 크게 투자하자니 손이 떨렸지만 ‘내 돈’을 투자하지 않으면 도저히 능동적으로 움직이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게 프로그래밍 학원과 운동을 위한 댄스 학원을 결제해놓고 나서도 조금이라도 관심이 가는 클래스가 있다면 일단 기록해 두었다. 글쓰기나 그림 그리기와 같은 것들을.


마지막은 조금 우스울 수도 있지만, 기본적인 일상생활의 문제였다. 내가 나를 소중히 여기지 못해 돌보지 못하니, 다른 누군가를 돌보아서라도 일상을 지속해야 했다. 그래서 나는 함께 자취할 수 있는 친구를 구했다. 나야 굶어도 되지만 함께 사는 친구를 굶기기는 미안하고, 밥을 차리면 같이 먹기는 할 테니까. 같이 사는 사람이 있으면 더 자주 씻을 수 있는 것은 물론이었다.

월세를 나눠서 낼 수 있으니 이득이라는 점을 차치하고서라도, 제법 효과적인 해결책이기는 했다. 문제가 있다면 누군가와 원룸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게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라는 점이다.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도 수없이 갈등을 빚는데, 아무리 친구라도 동거 중에 갈등이 없을 수는 없다. 나는 가까운 사람과의 갈등에 더더욱 취약한 사람이었고.


결국 나는 머슴과 비슷한 생활을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대충 시리얼로 아침을 해결하고 약을 먹는다. 다행히 친구는 늦잠을 자는 편이라 그동안 집안일이나 병원, 할 일을 해치우고 점심을 해 먹거나 외식으로 해결한다. 나는 미식에 취미가 없기 때문에 친구가 추천하는 것을 위주로 먹는데, 그러면 밖에서 친구랑 노는 날처럼 놀고는 해서 기분이 나아진다. 문제는 집에 가서도 그게 이어진다는 점이다.

친구는 하루 종일 나와 놀기로 작정한 것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가 있다. 내가 굳이 부탁하면 그때야 움직이긴 하지만 나서서 빨래와 청소, 설거지 같은 집안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굳이 나서서 부스럼을 만들기 싫었던 내가 도맡아서 하고, 그동안 친구는 말벗을 해주고 나는 그것으로 만족하며 잠에 든다. 그나마 혼자 있지 않으니 우울함에 잠겨 죽지 않아도 되는 점이 좋다, 생각하며.


하지만 절대적으로 치료와 휴식이 필요한 상황에서, 1년간 머슴으로 산 결과는 가혹했다.

월세와 병원비,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아르바이트 일정을 늘려야 했고 귀가해도 친구를 부양해야 했으며, 피곤함에 학원을 빠지는 날이 늘어만 갔다. 혼자 우울에 잠길 시간은 없어졌지만 혼자 에너지를 채우며 휴식할 시간이 없는 건 매한가지였다. 무조건 동거가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내가 선택한 룸메이트는 그리 궁합이 좋지 않은 듯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내가 친구의 일상 중 9할을 부양하고 있다면 친구가 나를 도와줄 때는 내가 아파서 몸져누워있을 때, 혹은 특별히 도움을 요청할 때뿐이었으니까. 결국 나는 여전히 나를 돌보지 못했다. 무기력하지는 않았지만 의미는 없었던 치료 기간의 1년이 그렇게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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