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골목 끝, 혹은 사람 많은 공원의 틈새에서..
꽤 오래전, 몇 년 정도 자영업을 한 적이 있었다. 당시 남편은 하는 일이 잘 되는 편이었는데도 욕심을 내서 따로 가게를 내고 싶어 했다. 나는 이런저런 것들을 짚어보며 썩 내키지 않는다고 했지만 늘 그렇듯이 그의 고집을 꺾지 못해서 회사를 그만두고 작은 가게를 열었다.
손바닥만 한 전시 공간이 붙어있는 가게였는데 미술재료를 팔고 액자 제작도 했다. 공식적인 통계로는 백여 명의 화가가 등록되어 있는 City of the Arts라는 슬로건을 내 건 도시였지만, 그들 대부분이 무늬만 화가였고 일 년에 한 번 열리는 그 지역 아트 쇼에 그림을 내는 사람들마저 몇 명 되지 않는다는 걸 나중에서야 알았다.
조촐하긴 해도 미술 재료와 액자, 전시공간까지 있었으니 적자는 아니었지만 계속 유지할만한 상태는 아니라는 판단을 하고 삼 년 만에 가게 문을 닫았다. 잘 알고 지내던 ‘비조’의 개인전을 마치고, 캐나다의 큰 갤러리에서의 전시는 불가능한 한국 화가 두 명에게 한국에서 사용할 포트폴리오의 외국 전시 경력을 한 줄 보태주는, 썩 내키지 않는 일을 한 직후였다. 남편은 아쉬워했지만, 건강이 급격하게 나빠지고 있던 나는 전혀 섭섭하지 않았다. 하지만 덕분에 두 번은 하지 못할 경험과 추억이 남았다.
미술 재료들은 단골들에게 꾸준하게 나가는 편이었지만 액제 제작은 처음부터 좀 회의적이었다. 품질이나 다양성으로 보면 비교할 수도 없었지만 그래도 아키아( IKEA)에만 가도 사이즈별로 갖가지 액자들을 싸게 구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전시회를 목적으로 다량으로 액자 주문을 하는 외에 과연 손님이 있을까 싶었는데 비싼 금액도 마다하지 않고 액자 제작을 주문하는 손님들이 있었다. 그렇다고 그분들이 가져오는 그림들이 유명하고 값나가는 작품도 아니었다. 그들은 단지 그것에 얽혀있는 기억과 가치가 너무나 소중했기 때문에 가격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던 것이다. (어느 하키 팬은 사인을 받은 유니폼을 액자에 넣기 위해 가져온 적도 있었다.)
이런 손님들 중에는 가끔 먼 여행지에서 사 온 거리화가의 그림을 가져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 그림 중엔 새 그림도 있었지만 대개는 끄트머리가 풀려있거나 약간 낡은 상태로 두루마리처럼 둘둘 말려 있었다. 아마 처음부터 액자가 없었거나 비행기를 탈 때 짐의 부피를 줄이기 위해서 기존에 있던 낡은 액자나 캔버스 프레임을 분리했을 것이다. 그들은 내가 물어보지 않아도, 예외 없이 그 그림을 샀을 때의 상황을 여행 경험담처럼 들려주길 좋아했다.
나라에 따라서는 환율의 차이가 커서 현지의 화가에게는 꽤 좋은 가격이지만, 그림을 사 온 사람에게는 놀랄 만큼 싼 것도 있었다. 그들은 떼로는 그림값보다 더 많은 돈을 액자 값으로 지불하고도 완성된 액자 속의 그림을 보면서 만족했다. 아마도 아직 채 가시지 않은 여행의 감흥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그보다는 가격조차도 박제화된 ‘유명’한 그림이 아니라 순전히 자신의 ‘끌림’에 의해서 '우연'히 만난 그림이기 때문에 더 그랬을 것이다. 게다가 '영행과 추억'이라는 멋진 출신성분을 갖고 있지 않는가 말이다. 분명 사진과는 또 다른 기억의 방식으로 두고두고 여행의 행복을 떠올리게 할 것이다.
사람마다 이미 끝난 여행의 추억을 연장시켜 주는 물건들이 각각 다를 테지만, 현지의 무명화가에게서 산 그림을 날마다 바라보는 즐거움만 한 것이 또 있을까 싶은 건 아마도 내 개인적인 취향일 것이다. 그때 나와 같은 취향을 지녀서 죽이 맞았던 손님들 덕분에 이런 생각을 했었다.
나는 부자가 아니니 비싼 그림을 사진 못할 것이다. 하지만 만약 내가 풍요롭지 않은 나라로 여행을 가서 우연히 거리의 화가를 만나게 되거나 로컬 작가들의 작품이 걸린 작은 갤러리를 보게 되면 꼭 그림 한 장을 사 와야겠다. 그 지역의 이름난 기념품이나 특산물 같은 것에 솔깃하지 않고, 그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지난한 삶과, 끝내지 못한 꿈과, 닿지 못한 곳을 향한 동경이 스며있는 그림을 한 점 산다면 얼마나 멋진 일일까.
내가 그림값으로 지불한 많지 않은 돈이 화가의 가난한 생활을 바꿔놓을 순 없다 해도, 기분 좋게 화구박스를 챙기며 하루를 마무리하고, 오랜만에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사 먹거나 신세 진 친구에게 큰소리치며 술 한잔을 사 줄수도 있을 테고, 혹은 좀 비싸서 자꾸 다음으로 미뤘던 '코발트블루'나 '카드뮴 레드'같은 물감을 살 수도 있고, 더 운이 좋다면 친구와 함께 쓰는 허름한 작업실의 밀린 집세를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단 상상 또한 나를 즐겁게 한다.(어쩌면 지나친, 혹은 시대에 역행하는 발상일지도 모르겠지만...)
일상의 누더기를 입고 있는 예술은 눈물겹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일상은 그런 예술로 인해 위로받는 시간이 분명, 있다. 그래서 이렇게 숨 찰 정도로 빠르게 급변하는 세상의 기계화 속에서도 아직까지 우리가 예술을, 예술가를 존중하는 것이리라.
물론 풍문처럼 떠도는 유명세에 이끌려 남이 가니까 나도 간다는 식의 관광을 선호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우리가 수많은 사람들이 이미 다녀온 여행지를 찾아가는 이유는 그들과 같은 것을 느끼기 위해서는 아니다. 설령 같은 풍경과 조형물을 보고 비슷한 음식을 먹더라도 거기엔 분명 나만이 느끼고 감동할 수 있는 무엇인가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낯설지만 어딘가 익숙한 삶의 결들이 얇은 홑이불처럼 펄럭거리는 어느 골목 끝, 혹은 사람 많은 공원의 틈새에서, 낡고 지저분한 화구를 펼쳐 놓고 그림을 그리던 이름 생소한 화가에게서 산 그림을 보여주면서, 이 그림을 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최대한 길게 설명하는 동안 비로소 나의 여행이 끝나가는, 그런 설렘을 간직하고 싶은 것이다.
P.S.
장소와 화가의 이름은 잊었는데 여행에서 돌아온 손님이 가져왔던 그림. 동남아시아 쪽 어디였던 것 같다. 어딘가 서툰 듯하면서도 자꾸 마음이 가는 그림이어서 우린 서로의 의견에 맞장구를 치며 꽤 오래 이야기를 나눴다. 왜 좋은지 정확하게 말하긴 힘든데 그냥 참 좋다는 내 말에 그는 자기도 딱 그 마음이었다며 즐거워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