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와 객석 사이

세월의 풍파로 뭉근하게 끓여진 삶의 질료들

by 윤서


옛날 영화를 많이 해주는 AMC 채널에서 뮤지컬 영화 '아가씨와 건달들(Guys and Dolls, 1955)'을 봤다. 아이들이 하이스쿨에 다닐 무렵 함께 보고 다시 보는 영화인데 여전히, 프랭크 시나트라는 금방 알아보면서도 '스카이'역의 말론 브란도는 '대부'의 그와 연결이 되지 않았다. 오래된 영화라서 말투나 행동이 좀 어색한 부분도 있지만 그것마저도 매력적이었다. 어떤 종류든 고전은 존경받을 만한 가치가 있고, 한 번 명작은 영원한 명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러닝타임 2시간 30분, 끝날 때까지 즐거웠다.



연년생으로 두 아이를 키우다 보니 은근히 재미있는 현상들이 많았다. 열 살 정도까지는 첫째 아이가 가졌던 관심이나 했던 일들을 다음 해에 둘째가 비슷하게 따라 했다. 그러다 사춘기가 시작되면서부터 각자의 취향에 따라 시도하는 일이나 골라서 보는 책과 영화의 종류가 갈라졌다.


좀 의외로 일상적인 면에서는 첫째 아이가 훨씬 의젓하고 속이 깊은데, 책이나 영화에서는 둘째 아이가 더 다양하고 성숙한 취향을 지녔다는 걸 알았다. 오래된 뮤지컬 영화를 먼저 좋아한 것도 둘째였다. 영화나 책을 또래에 비해 꽤 다양하게 많이 본 아이인데도 누군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가 뭐냐고 물어보면 전혀 망설임 없이 '남태평양, 오클라호마, 로마의 휴일' 등을 꼽을 정도였다. 지금도 아이와 함께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일은 놓치고 싶지 않은 내 즐거움 중의 하나다.


그런데 둘째가 이렇게 다양한 영화나 뮤지컬을 '보는'일을 즐기는 동안, 영화 보기에서 관심이 멀어진 것 같던 첫째가, 어느 날 갑자기 학교 뮤지컬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때 10학년이었던 아이가 학교에서 수강하는 과목 중에 Musical Theater가 있었는데, 수업과정의 마지막은 뮤지컬 하나를 무대에 올리는 것이었다. 노래는 그런대로 보통보다는 잘하지만, 춤이나 연기에는 특별한 재능이 있는 아이가 아니라서 수강 신청한 시간표를 보여주었을 때, 내색하진 않았지만 어쩌려고..라는 생각을 잠깐 하곤 잊고 있었는데 막상 공연 준비에 들어간다고 하니 걱정과 호기심이 번갈아 들었다. 그 해에 선정된 뮤지컬은 The Wedding Singer였다.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이 꽤 엉뚱하면서도 스스로 정한 옳고 그름의 기준에선 타협을 못하고, 고집은 세면서도 순진하고 여려서 상처도 잘 받는 아이인데 잘해 낼지 걱정스러웠다. 어릴 때와는 달리 아이는 자라면서 점점 더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하거나 주목받는 일을 즐기는 것 같아서 좀 의외이기도 했다. 게다가 혼자 하는 일은 꼼꼼하게 잘하지만 여러 사람과 함께 할 때 필요한 눈치나 융통성이 부족한 아이라서 잘해 낼 수 있을지 갑자기 잔걱정이 많아졌다. 하지만 무엇으로든 자신의 가능성을 시험해보고 싶고, 또 그래야 하는 나이라는 걸 알기에 조용히 지켜보기로 했다.


기본적인 수업을 마친 후에 뮤지컬 공연을 위해서 자체 오디션을 했는데 전원이 다 함께 하는 코러스 파트를 빼고 맡은 역할이 세 개의 단역이었다. 10학년부터 12학년까지가 함께 하는 클래스이니 당연한 결과였다. (물론 10학년에도 재능이 있어서 비중 있는 역할을 하는 아이가 있다.) 솔직히 말해서 엄마의 욕심으로 친다면 아이의 배역이 비중 있는 역할이 아니라서 조금 섭섭했다. 하지만 주인공이 아니어도 내가 좋아서 즐기면 그만이라는 큰아이의 판단이 무조건 옳은 것이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지켜보며 소품 구하는 걸 도와주는 일뿐이었다.


몇 년 전부터 예전과는 달리, 학교를 위한 정부지원이 에술계통보다는 싸이언스 쪽으로 기울어서 불만이 꽤 많던 참이었다. 그래서 여러 학교의 밴드부가 약속한 시간에 같은 곡을 연주하는 식의 소극적인 항의를 하기도 했지만, 국민성 자체가 이미 결정된 일은 일단 받아들이는 편이라서 이런 행사가 있을 때면 자급자족해야 하는 부분들이 많았다.


밴드나 연극, 뮤지컬 등의 학교 공연을 위해서 학생들이 티켓을 판매하고, 학부모들의 도네이션으로 비용을 충당한다. 이번에도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한다는 게 기본 방침이라서 공동으로 들어가는 비용은 티켓과 인터미션을 위한 커피와 도넛을 팔아서 충당하기로 하고 일단은 선생님께서 자신의 크레딧카드로 먼저 지불하셨다고 했다. 그리고 의상과 소품도 학교에 있는 것들로 충분치 않아서 각자 자신의 것을 준비하기로 했다.


배경이 1980년대니까 절대로 새것을 사진 말고 중고품 가게나 집에 있는 엄마나 아빠의 옷과 신발들 중에서 해결하라는 선생님의 말씀대로 아이는, 15년쯤 된 내 원피스 두 개의 밑단을 줄이고, 5년쯤 신은 내 가죽 샌들을 가져갔다. 샌들은 좀 컸지만 끈을 조이니 신을만했다. 공연 날짜가 다가오자 수업이 없는 토요일에도 학교에 모이고 일주일에 두세 번은 밤 10시까지 연습을 했다. 아마도 아이는 그 시간의 절반 정도는 자기 연습은 없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집에 오면 피곤해서 끙끙거리면서도 그 피곤한 활력을 은근히 즐기는 게 보기 좋았다. 내 아이가, 아이에서 '젊음'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기분이었다.


공연은 저녁에 학교 강당에서 열렸다. 무대 위에서 노래하고 춤추며 뒤엉킨 아이들은 모두 다 예뻤다. 장면이 바뀔 때마다 어둠 속에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스스로 무대를 정리하고 다시 채워 넣고, 순식간에 옷을 갈아입고 머리와 화장을 바꾸며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보니 고생했을 게 쉽게 상상이 되어서 기특했다. 무대 바로 아래에 앉아 연주를 하는 12학년 밴드부 학생들도 정말 훌륭했다. 그리고 특히 여주인공은 돋보였다. 전에도 콰이어 공연에서 독창하는 걸 본 적이 있는데 금발의 인상적인 외모나 노래와 연기, 모두가 나무랄 곳이 없는 학생이었다. 이 아이가 학교를 졸업하고 어떤 일을 하게 될지 모두들 같은 짐작을 했을 것이다.


그 외에도 무대 위에서 반짝거리는 아이들이 서너 명쯤 더 있었다. 내가 아무리 고슴도치 엄마라 해도 내 아이가 그 속에 끼지 못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조금 부러웠지만 대신 아이는 그림을 잘 그리고 남을 도와주는 걸 좋아했다. 그리고 무대에 서지 않고 스텝으로 일하는 아이들도 많았다. 이 작은 무대에서도 세상을 계속 유지하기 위한 다양성이 자라고 있었다. 내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 뮤지컬 무대에 서는 일을 하진 못하겠지만 자기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스스로 찾아갈 것이다. 오늘의 이 무대를 즐거움으로 추억하면서.


전원이 춤추고 노래하는 장면을 빼면, 구레나룻이 있는 이상한 아줌마, 검은 고양이(작은 아이가 눈물을 머금고 빌려준 아끼는 인형 '지프')를 끌어안고 있는 사이코 여자, 술 취한 사람이 아이의 역할이었다. 모두 비중 있는 역할은 아니었지만 그중에서 바에서 술 취한 사람의 역할은 정말 썩 잘해서 박수와 웃음을 많이 받았다. 코미디라서 망가지며 많이 웃기는 게 잘하는 것인데 제대로 망가지는 녀석을 보면서 나는 엉뚱하게도 아이가 많이 성숙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어떻게든 예쁘게만 보이려고 하지 않고, 고지식할 정도로 캐릭터에 충실하는 아이가 대견하면서도 재밌어서 많이 웃었다.


아이는 앞으로도 수많은 삶의 무대와 객석을 오갈 것이다. 스스로 흡족한 배역과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때도 있고, 길을 잃은 사람처럼 객석에 앉아서 초초하고 억울할 때도 있고, 남보다 느린 걸음임에도 불구하고 느긋하고 행복할 때도 있을 것이다. 어느 곳에 속해 있든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가치 있고 귀한 것인지를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공연이 끝나고, 주차장에서 아이를 기다렸다. 뒷정리를 하고 조금 늦게 나온 아이의 얼굴이 기쁨과 만족으로 환했다. 아이가 이렇게 조금씩, 될 수 있으면 크게 다치진 말고, 세상을 알아가길 바랐다



아주 오래전, 아직 아이들이 태어나지도 않았을 때, 한국에서 '아가씨와 건달들' 공연을 간 적이 있다. 아마 춘천 시립 문화회관이었을 것이다. 서울에서 온 공연팀이었다. 지방의 한 극단 소속이었던 친구와 함께였다. 그때까지 친구 덕분에 연극은 몇 번 봤지만 영상이 아닌 실제로 뮤지컬 공연을 본 건 처음이었다.


비록 이젠 모든 것이 가물거리는 기억이 되었지만 그날 저녁 내가 만났던, 영화나 드라마에서 느낄 수 없었던 생생한 날것의 몰입과 열정은 여전히 내 피돌기의 한 구석에 지문처럼 남아있다. 무대와 객석이라는 전혀 다른 두 공간 중에 지극히 수동적인 한쪽에 내가 있다는 게 느껴지지 않을 만큼 즐겁고 흥분되어 가슴이 두근거렸다. 공연이 끝나고 손바닥이 아프도록 박수를 치고 나오다 만난, 나트륨 등을 뽀얗게 켜고 기다리던 어둠과 극장 앞의 긴 계단 위로 불어오던 꼬리 긴 휘파람같은 바람도 아직, 기억한다.


그때 우린, 파릇하고 순수했다. 우리가 품고 있는 삶에도 저런 열정과 환희로 내가 만족하는 만큼 세상을 기쁘게 해 줄 수 있는 무엇인가가 있을 거라고 믿었던 시절이었다. 삶을 굳이 '무대와 객석'으로 나눈다면 어떤 형태의 삶에서든 우린 당연히 무대 위에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땐 알지 못했다. 객석의 삶이 품고 있는 눈물겨운 아름다움에 대해서 혹은, 주목받지 못한 삶의 너그러움을 대해서. 그런 건 무대에 오르지 못한 자의 변명이나 자기 위안이라고 단정할 만큼 어렸을 때였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설령 이후로도 꽤 오랫동안, '가끔은 주목받는 생이고 싶다'는 광고 카피가 우리의 삶을 더 고단하고 외롭게 만들었다 해도, 무대와 객석의 구분은 공간의 구분이나 성취도가 아니라 세상엔 없는 지표로 그려지는 스스로의 만족도로 나뉜다는 것을. 몇 번의 주목받는 경험을 거치고 난 후의 깨달음이니 내겐 나름 검증된 결론이다,


그날 함께 뮤지컬을 보았던 친구와 나는 각자 품었던 꿈으로 끝장을 보진 못했지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던 그 시절로 인해 지금 이만큼이라도 자족하며 사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거쳐온 경험과 생각들이 싱싱하게 형태를 유지하고 있진 못해도 그 모든 것들이 세월의 풍파를 견디는 동안 뭉근하게 끓여지고 잘 으깨진 삶의 질료가 되어서 그런대로 자신만의 맛과 멋을 지닌 인생이 된 거라고 믿는다. 이 믿음마저도 없다면 우린 또 얼마나 여러 번, 아직 남아있는 시간의 숲에서 길을 잃고 헤맬지 알 수 없는 거니까... 인생은 연식이 오래되었다고 더 익숙해지거나 쉬워지는 건 아니니까.


오래 연락하지 못한 친구가 그리우면서도 선뜻 먼저 안부를 묻지 못하는 요즘, 그런 줄 알겠거니 하는 마음으로 혼잣말 같은 인사를 한다.


알아.

아직도 가끔 우리는, 무대와 객석 사이의 그 눅눅하고 방향 없는 길을 헤맨다는 걸. 하지만 이렇게 살아가는 것 말고 또 무슨 방법이 있겠어. 우리가 사랑했던 어느 시인의 표현처럼,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중얼거릴 때도 있지만 우린 이미 알잖아. 이게 인생이란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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