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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서 Sep 12. 2023

힘들어도 괜찮아, 네가 행복하면

아침형 인간이 되다 _ 걷고, 뛰고, 또 걷는다.



헌터는 얼굴도 점점 더 예뻐지고 살도 오르고 털도 보드라워져서 잘 생겼단 소리를 자주 듣는다고 했다. 특히 기계충 자국처럼 털이 없던 부분에도 새 털이 나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며 한국에서 먹이던 사료는 건강에 좋긴 하지만 거의가 식물성 재료로 만든 것이라서 헌터가 잘 안 먹었던 것 같아 고기 위주의 사료로 바꾼 후부 터는 밥도 잘 먹는다고 했다. 그런데 소화기 계통이 그리 튼튼한 것 같지 않아서 성견인데도 사료를 줄 때 물을 섞어서 조금 천천히 먹도록 유도하는 중이라며 이젠 엘리베이터도 잘 타고 산책 코스도 점점 넓어지고 있지만 마음을 굳게 먹고 임시보호를 시작했는데도 예상보다 너무 힘들다는 아이의 문자를 읽으며 나도 덩달아 심란했다. 

야행성이었던 아이는 헌터를 위해 새벽에 일어나 두시간쯤 산책을 시키고 돌아와 출근을 하는 아침형 인간이 되었고, 재택근무를 하는 중에도 한 두번 용변을 위해  짧은 산책을 나가고 퇴근 후에 또 함께 걸었다. 버스나 트럭, 갖은 소음, 어린 아이들의 목소리, 남자어른 등을 무서워하는 헌터와의 산책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길도 가려서 걸어야 하고 가끔 돌발적인 행동을 하거나 꼼짝 안 하겠다고 버티는 때가 있어서 힘과 간식으로 적당히 통제해야 한다. 그러다 청설모라도 나타나면 갑자기 급발진을 해서 함께 뛰느라 무릎까지 아프다면서도 다 괜찮은데 헌터가 아직 무서워하는 게 너무 많아서 잘 극복할 수 있을지가 가장 큰 걱정이라고 한다. 


아이가 사서 고생하는 것 같아서 속상하다가도 이내 헌터가 안쓰러워서 잘한 일이라고 아이를 칭찬한다. 아마 지금 가장 힘든 건 헌터일 것이다. 개농장에서 구조된 후에 보호소에 있다가 캐나다로 오기 전에 몇 주 동안 어느 댁에서 임시보호를 받았는데 어쩌면 그때 이제 그곳이 자기 집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비행기까지 타고 그 먼 곳으로 간 데다 보이는 것, 들리는 소리, 냄새까지 모두 낯선 곳일 테니 얼마나 무섭고 불안할지 상상이 되었다. 더구나 나쁜 기억 때문에 움츠려 있어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더 힘들 것이다. 그래도 이제는 캐나다에서 살아갈 테니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지금 있는 곳이 영원히 머물 집이 아니고 다시 다른 곳으로 입양을 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안쓰럽다. 아이와 더 정들거나 우리 집에 완전히 적응하기 전에 빨리 입양이 되었으면 좋겠다. 새로운 시작을 위해 잠시 머무는 시간은 짧을수록 좋으니까.


며칠 후, 밴쿠버로 돌아가기로 했다는 내 결정에 아이는 기뻐했다. 헌터는 3개월 정도면 입양이 될 줄 알았는데 그동안 아무런 연락도 없어서 확인해 봤더니 협업을 하고 있는 두 입양기관 사이에 무슨 착오가 있었는지 그동안 전혀 홍보가 안되고 있었다고 한다. 무책임한 것 같아 조금 당황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헌터를 방치하는 것 같아 화도 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이런 일이 생기니까 오히려 헌터가 더 안쓰러워서 한 번 더 쓰다듬어 주고 산책도 더 오래 하고 간식도 맛있는 걸 찾아보게 된다면서도, 사실은 입양이 되어도 걱정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내 그럴 줄 알았다. 벌써 정이 든 거지? 그래도 임시보호에 대한 필요성에 대해 공감해서 시작한 일이니까 욕심내지 않고 끝까지 잘 돌보다 좋은 집으로 입양 보낼 거라고 말은 하는데 기간이 길어질수록 실현 가능성은 줄어들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아이에게 말하진 않았지만, 사실 나는, 내가 밴쿠버로 돌아가기 전에 헌터가 입양이 되길 간절히 바랐다. 나는 여전히 큰 개가 좀 무서웠고, 털갈이를 하는지 날마다 어마어마하게 빠진다는 '털'은 내 청소정리 결벽증을 강력하게 위협했다.  아무리 상상력을 동원해도 헌터와의 생활이 가늠이 되질 않아서 마치 오래전에 이민을 갈 때처럼 막막했다. 새삼, 내 삶의 행동반경이나 다양성이 얼마나 부실했는지 깨닫는다. 늦었지만 바꿔야 할 때가 왔고, 어쩌면 헌터는 그 시작의 첫 번째 관문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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