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터.
한국에 머문 지 두어 달쯤 되었을 때였다.
날마다 주고받는 일상적인 이야기일 거라 생각하며 아이에게서 온 카톡 문자를 열었는데 ‘갑자기’ 한국의 보호소에 있는 강아지를 ‘임시보호’하기로 했다면서 엄마가 편한 시간에 통화를 하자고 했다. 바로 전화를 했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임시보호라니?
‘갑자기’는 아니고 오래 생각했던 거야. 전부터 가끔 보던 한국의 개 보호소 사이트가 몇 개 있었는데 그중 한 군데가 곧 문을 닫아야 한대. 근데 아직 입양되지 못한 애들이 몇 마리 있는데 외모나 트라우마 때문에 한국에서는 입양이 잘 안 되는 애들이라 해외입양을 보내려고 한다네. 좀 전에 통화했는데 어떤 강아지를 임시보호 하고 싶냐고 물어보는데 몇 마리 얼굴이 떠오르긴 했지만 갑자기 누굴 해야 할지 모르겠는 거야. 그런데 문득 한 이름이 떠올랐어. '헌터'라고... 이상하지? 사진으로 보고 그렇게 끌리는 강아지도 아니었는데 왜 그 이름이 생각 났는지 몰라. 하긴 어떤 애든 상관없긴 해. 그냥 단 한 마리라도 내가 도와주고 싶었을 뿐이니까.
헌터? 사냥개야?
나의 단순한 발상에 아이는 웃었다.
진도 믹스니까 사냥개 비슷하겠지? 아, 그래서 이름을 그렇게 지었나? ‘헌터’는 대개 백인들이 잘 생긴 아들한테 주는 이름이란 이미지가 있어서 한국에서 오는 강아지의 이름치곤 좀 웃기다고 생각했거든.
진도믹스? 그럼 엄청 큰 개잖아.
엄청 크긴... 그 정도면 미디엄 사이즈지.
사진 있어?
아이가 카톡으로 바로 보내준 사진에는 지금 2주째 헌터를 임시보호 하고 있는 어떤 여자분과 함께 찍은, 내 눈에는 정말 집채만 한 누렁이 한 마리가 있었다. 엉덩이 쪽이 도드라지는 카메라 앵글 때문에 더 그렇게 보일수도 있었지만 어쨌든, 정말 컸다.
헌터랑 같이 찍은 여자분이 체구가 무지무지 작으신 거겠지? 그렇다고 말해줘, 제발.
아이는 큰소리로 웃었다.
나는 갑자기 엄마답게(?) 온갖 걱정을 다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큰 강아지면 똥도 엄청 큰 거 쌀 텐데... 너 치울 수 있어? 유키는 우리 손가락만 한 똥을 쌌잖아. 그리고 혼자서 목욕은 또 어떻게 시키니... 이렇게 큰 개는 콘도보다는 하우스가 좋을 텐데.. 힘도 셀 텐데 산책시킬 수 있겠어? 그리고 왜 굳이 이 먼 한국에 있는 강아지야...그리고 무엇보다 몇 달이라곤 하지도 함께 살던 강아지를 다른 곳에 보낼 수 있겠어? 그동안 정들 텐데.. 그리고 혹시 밴쿠버에서 입양이 안되면 어떡해. 그럼 네가 계속 키워야 하는거잖아. 기타 등등...아이는 자기의 결정에 토를 다는 게 싫었는지 단호한 목소리로 내 말을 끊었다.
엄마. 내가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사지 말고 유기견을 입양하라는 말을 수도 없이 했어. 마치 입양이 최고의 선택이고 브리더는 최악의 직업인 것처럼. 지금도 이 마음엔 별로 변함이 없지만... 근데 가만 생각해 보니 나는 한 번도 강아지를 입양한 적이 없더라고, 유키도 막 태어난 강아지를 사 왔잖아. 아무리 좋은 일이라 해도 나는 하지도 않으면서 남한테만 권하는 건 좀 부끄러운 일이란 생각이 들더라. 유키 보내고 난 후에 아직까지도 다른 강아지를 입양할 마음의 여유는 없는데 나름 큰 결심을 한거야. 구조된 개들은 대개가 트라우마가 있어서 임시보호가 정말 중요하거든. 처음 해보는 거라 좀 떨리긴 하지만 임시 보호하는 동안 잘 보살펴서 좋은 곳으로 입양 보내면 꽤 보람있을 것 같아. 앞으로도 내가 강아지를 키우게 되어도 임시보호는 계속할 생각이야. 내가 알아서 잘 할게.
전화를 끊고 나서도 걱정이 앞섰다. 아직 아이에게 말하진 않았지만 처음의 계획과는 달리 다시 밴쿠버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는데 어쩌지... 헌터의 큰 몸집이 자꾸 떠올랐다. 나는 개를, 특히 큰 개가 정말 무섭다. 그나마 다행인 건 임시보호라니 제발 내가 돌아가기 전에 다른 곳으로 입양이 되길 간절히 바랐다.
구조된 후 보호소에 있던 헌터
캐나다로 출발하기 전날, 한국에서의 마지막 밤 산책을 하는 헌터. 보호소가 문을 닫게 되어서 임시보호를 해 주신 분과 2주정도 함께 살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