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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서 Sep 15. 2023

프롤로그

헌터가 오기 전



나는 동물을 무서워하는 편이다. 그렇다고 좋아하는 동물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고, ‘가장’ 좋아하는 동물은 고래라고 말할 수 있을만큼 몇몇 동물을 좋아하지만 그건 내가 그 동물들을 멀리서 보았거나 주로 영상으로만 만났기 때문에 무서워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어쨌든 나는,


개가 무섭다.


어릴 때 부터 무서웠고 아직도 무섭다. 하지만 개들은 나를 좋아하는 것 같다. 길에서 만나는 -심지어 처음 본- 개들이 내게로 곧장 다가와서 꼬리를 치고 앞발을 들며 반가운 척을 한다. 미치겠다. 아마도 내가 지들을 무서워하는 걸 본능적으로 알아채고 만만해서 그런 것 같다..어릴 때 부터 무서웠고 아직도 무섭다. 하지만 개들은 나를 좋아하는 것 같다. 길에서 만나는 -심지어 처음 본- 개들이 내게로 곧장 다가와서 꼬리를 치고 앞발을 들며 반가운 척을 한다. 미치겠다. 아마도 내가 지들을 무서워하는 걸 본능적으로 알아채고 만만해서 그런 것 같다..


그런데 하늘도 무심하시지... 이런 내가, 사람보다 개가 좋다는 말을 서슴지 않고 하는 아이를 낳고 말았다, 그래서 17년째 우리 집 어딘가엔 네 발 달린 선한 생명체가 살고 있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그 생명체와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그래도 이젠 간신히 우리 집 개는 '무섭다'의 범주에서 제외시킬 수 있게 되었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지금도 가끔은, 녀석의 어떤 행동에 순간적으로 겁을 먹는다. 나의 이런 꼴을 절대로 놓치지 않는 아이는 그때마다 세상에서 가장 재밌는 스탠딩 코미디를 본 것처럼 웃는다. 나쁜 지지배...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아이가 일곱 살쯤 된 어느 날, 수업시간에 쓴 편지인데 엄마가 우체통에 넣어달라면서 봉투를 하나 내밀었다. 마덜스 데이도 아닌데 갑자기 무슨 편지?라는 생각을 하며 받아 든 봉투에 적힌 수취인의 이름을 보면서 아이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음을 참았다. 봉투에는 아주 정성스럽게 꾹꾹 눌러쓴 게 분명한 필체로 이렇게 쓰여있었다.


To :

Santa Clouse

North Pole

H0H 0H0

Canada


물론 이 주소는 선생님과 우체국이 짜고 치는 고스톱이다. 누구의 발상일까? 우편번호가 압권이었다. 산타의. 웃음을 표현하는 ho~ho~ho를 이용해서 만든 것이다 .(캐나다의 우편번호의 조합은 세 자리씩 나뉘는데 알파벳+숫자+알파벳 / 숫자+알파벳+숫자, 로 되어있다.)


아이가 쓴 편지에는 한 해동안 자기가 한 착한 일과 반성하는 일, 선물로 무엇을 받고 싶은지 왜 그 선물이 필요한지가 적혀있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조마조마했다. 혹시라도 선물로 강아지를 받고 싶다고 썼으면 어쩌나 하고.. 근데 없었다. 왜 안 썼지? 아무리 졸라도 강아지는 안된다고 하고선 이 궁금증은 또 뭐란 말인가? 괜히 휴화산을 건드는 꼴이 될까 봐 물어볼 수도 없었다.

아이는 산타에게 감기 조심하시라는 마지막 인사를 하면서 미세스 산타에게도 안부를 전해달라고 했다. 나도 꽤 늦게까지 산타의 존재를 믿는 아이였는데 한 번도 그 양반에게 부인이 있을거란 생각을 한 적은 없었다. 내 어린 시절과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라고 있는 아이들 덕분에 소소한 새로운 것들을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던 참에 또 하나가 추가 되어 즐거웠다.


아이는 이렇게 삼 년 동안 편지를 보냈고 매번 답장을 받았다. 우체국에서 하는 이벤트라는 걸 짐작하긴 했지만 답장까지 올 줄은 몰랐다. 프린트가 되어서 오는 답장 아래엔 손글씨가 한 줄, 첨가될 때도 있었다.


루돌프는 건강하니 걱정하지 마세요.


루돌프가 아프면 불을 밝힐 수 없어서 산타의 썰매가 집을 제대로 찾지 못할까 봐 걱정된다고 쓴 편지의 답장이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산타에게 강아지 선물을 부탁하지 않은 건 엄마가 개를 너무 무서워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근데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거의 날마다 나를 고문했다. 음식을 주면 손을 쓰지 먹고 입으로만 핥듯이 먹고, 디즈니 캐릭터인 달마시안 인형의 목에 끈을 묶어서 하루종일 끌고 다니고, 갑자기 달려와 안겨서 왜 그러냐고 물으면 말은 안하고 낑낑대는 강아지 소리를 냈다. 소리는 또 얼마나 진짜같은지 혹시 얘가 전생에 강아지였을지도 모르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안돼! 엄마는 무섭단 말이야. 그리고 강아지는 아가 한 명 키우는 거랑 똑같아. 이제 겨우 연년생인 너랑 언니 키워놓고 좀 편해졌는데 또 갓난 아가를 키우라고? 그것도 강아지를? 못해! 안 해! 싫어~~


산책할 때 보면 동네 강아지들은 다 엄마 좋아하는데 엄만 왜 싫어해? 엄마, 그럼 나쁜 사람이야!


뭐래니.. 엄마가 나쁜 사람이면 좋~겠다.


내가 제 또래인 것처럼 유치하게 나가자 아이는, 어느 드라마에서 본걸 흉내 내는 게 분명한 표정과 말투로 내 어깨를 잡았다. 엄마, 강아지를 데려오기만 하면 내가 산책도 시키고 밥이랑 물도 주고 똥 치우고 목욕시키는 것까지 모두 할게. 마치 필요하다면 혈서라도 쓰겠다는 기세로 나를 설득하려 했지만 나는 가소롭다는 듯 피식 웃으며 한 마디 했다.


퍽이나..


애원이나 결심 따위론 내 마음을 돌릴 수는 없다는 걸 알았을까? 그해 크리스마스가 한 달쯤 남았을 때 산타에게서 답장이 왔다. 뭔가 불길했다. 분명 올해는 산타에게 편지를 안 쓰겠다고 했는데... 친구 '알버트'가 이빨요정이나 산타는 우리를 착하게 만들려고 부모님들이 다 꾸며낸 거라는 폭탄을 교실에 투하해서, 지니는 울고, 노아는 거짓말이라고 화를 냈지만, 자기는 거짓말인지 아닌지 생각하는 중이라서 편지를 쓸 수가 없다고 했었다.


아이가 의기양양하게 내민 산타의 답장 맨 아래엔 손글씨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넌 이번 크리스마스 선물로 강아지를 받게 될 거야. 아... 이건 거의 빼박이다... 도대체 무슨 감언이설로 우체국 아저씨들을(아니 산타 할배를..) 꼬셨기에 이토록, 지나치게, 열심히 일하시는 겁니까?


결국 크리스마스에는 강아지 선물을 주지 못했다. 나는 진심으로 강아지를 어디서 데려와야 할지도 모르겠고, 데려오면 또 어쩌자는 건지도 난감했다. 대신 너무나 갖고 싶어 하던 씨디 플레이어를 사서 크리스마스트리 아래에 몰래 두었다. 아이는 강아지 얘기는 하지도 않고 나름 선물에 만족하는 듯싶었지만 어쩐지 이제는 알버트와 같은 생각을 할 것만 같았다.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었으니 차라리 잘 됐다 싶으면서도 한편으론 서운하기도 했다.


이젠,

물어볼 때마다 매번, 산타의 썰매를 끄는 아홉 마리의 레인디어의 이름을 다 기억하지 못하는 엄마를 앉혀놓고 잘난 척하는 귀여운 모습도 못 볼 테고, 크리스마스 전날 자러 가기 전에 산타 할배의 엉덩이가 뜨거울까 봐 꺼진 벽난로를 몇 번씩 확인하고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쿠키 세 개와 우유 한 컵을 놓아두는 제법 어른스러운 모습도 다신 못 볼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얼마후 어느 일요일 오후, 다 같이 모여서 점심을 먹은 후, 아이들은 거실로 가고 나는 모카포트에 거피를 끓이며 감을 깎고 있었다. 보글보글 끓는 소리와 함께 맛보다 더 우아한 커피 향이 퍼지고 있을 때, 신문을 읽던 남편이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가자!


순간적으로 위기를 감지한 나는 외쳤다.

뭐? 어딜? 왜?


그는 읽던 신문을 접어서 들고는 아이들을 불렀다. 강아지를 사러 가시겠단다. 신문에 낳은 지 7주 된 강아지들을 분양한다는 광고가 났던 것이다. '미션'이라는 약간 외곽의 도시에 있는 농장이었다. 브리더는 아니고 키우던 개가 새끼를 낳았는데 여러 마리라서 몇 마리는 딴 곳으로 보내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이민 온 후로 처음 구한 귀한 단감을 깎으며, 이게 도대체 얼마만이냐, 내가 단감을 얼마나 좋아하고 그동안 얼마나 먹고 싶었는지를 신나서 말하려던 참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한 손엔 과도, 다른 손엔 껍질을 깎다 만 단감 한 조각을 쥔 채로 서서, 그 어떤 상황에서보다 신속하게 움직이는 같은 성씨를 가진 한통속들을 쳐다보았다.


아, 잊고 있었다. 남편은 결혼 전에 '호동이'라는 이름의 '차우차우'를 키우고 있었지.


커피를 두 잔 째 마시면서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지만 앞으로 무조건 하게 될 그 구체적인 일들을 상상하며 점점 불안해지고 있었다. 게다가 아이가 아무것도 묻지않고 신나서 따라간 걸 보니 산타 할배의 정체도 들통난 게 분명하다.


몇 시간 후, 드라이브 웨이로 차가 들어오는 소리가 났다. 현관문을 여니 아이들이 평소와는 달리 말도 없이 조용하게 차에서 내리는 게 보였다. 맨 앞에 선 작은 아이는 마치 조심하지 않으면 깨질 물건을 든 것처럼 두 팔을 앞으로 모으고 조심조심 걸어오고 있었다. 하지만 표정은 더할 수 없이 환했다. 아이가 내 앞에 가까이 섰을 때서야 알아보았다. 아이의 품에는 하얗고 조그만 털뭉치 하나가 들려있었다. 아이가 흰색 패딩을 입고 있어서 잘 안 보였던 것이다.


엄마, 아빠는 좀 크고 난리 치며 노는, 얘 오빠를 데려오자고 했는데 내가 얘를 골랐어. 강아지가 많았는데 그 중에서 제일 작고 힘이 없어서 다 같이 밥을 먹는데 뒤로 밀려서 먹지도 못하잖아.


이렇게 우리 가족에게 첫 강아지가 생겼다.




한창 일본어 배우기에 재미를 붙이고 있던 아이는 마치 눈처럼 하얗고 예쁘다며 이름을 ‘유키’라고 지었고, 지극히 아끼고 사랑하며 함께 컸다. 말티푸 중에서도 아주 작은 편이었던 '유키'는 다 커서도 몸무게가 5파운드를 넘은 적이 없다. 밥도 조금씩 자주 먹었다. 예민한 만큼 똑똑하고 애교도 많고 사람을 좋아해서 잘 안기는 사랑스러운 강아지였다.


그렇게 15년을 함께 살며 아이가 어른이 되어가는 걸 지켜보며 나와 함께  늙어가던 유키는, 재작년 가을에 우리 곁을 떠났다. 유키는,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이별이란 게 어떤 것인지, 슬픔이 얼마큼 깊고 오래갈 수 있는 감정인지를 아이에게 가르쳐주고 갔다. 지금도 많이 보고 싶고, 미안하다.


보내고 나니 잘해주고 즐거웠던 기억보다 마지막에 많이 아팠던 시간과 더 잘해주지 못해 아쉬운 것만 생각이 나서 자꾸 미안하다. 아마 아이와 나, 모두 몸과 마음도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유키를 보내서 더 그런 것 같다. 나는 유키를 통해서 ‘측은지심’은 상대방을 가엾게 여기는 감정이라기보다는 그저 미안한 감정이란 걸 알았다.


나는, 다시는 개를 키우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아이는 시간이 좀 필요하긴 하겠지만 자기는 다시 또 개를 키울 거라고 했다. 어디서 누구와 무얼 하며 살든 개가 없는 자신의 삶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 했다.



안녕, 유키~ 거기서 잘 지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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