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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서 Sep 26. 2023

그래도 사냥 본능이라고 하자.

청설모와 밀당하며 노는 중.



만약, 내가 어른이 되었다는 걸 스스로 인정하는 어떤 계기가 있었다면 그중의 하나는 콩이 든 송편을 골라내지 않고 먹기 시작한 때일 것이다. 이후로 내 입맛의 절대적인 우위에 있던 팥은 콩에게 절반의 지분을 양보해야 했다. 이렇게 어린 사람들은 아주 사소한 습관을 바꾸면서 저 혼자 어른이 되었다고 인정하기도 한다. 나는 콩과 호박과 가지와 함께 어른이 되었다. 커피를 추가하려다가 그만둔 이유는 어쩐지 커피는 다른 장르의 성장기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하윤에게 이런 경험은 분명 개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건 첫 강아지였던 유키가 똥을 싸다 털이 더러워졌는데 마침 엄마는 외출 중이어서 직접 목욕을 시켰다며 자신이 너무 기특해서 견딜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내게 말하던 때 일수도 있고, 오랫동안 마음속에 있던 생각을 드디어 실행에 옮겨 헌터를 임시보호하기로 결정한 순간일 수도 있다. 그땐 이미 어른이 된 나이였지만, 살면서 가끔 만나게 되는 내가 ‘진짜 어른’이라는 안도감은 숫자와는 상관없이 찾아온다.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하윤이 혼자서 한국에 간 적이 있었다. 마침 대학에 들어가면서 알게 된 유학 온 친구들이 방학 동안 서울로 돌아가 있던 터라 만나서 함께 기차를 타고 가평까지 가서 다시 택시로 어느 펜션으로 가는 중이었다. 차창 밖으로 작은 농장 같은 것이 있고 그곳에 꽤 많은 개들이 모여있는 것이 보였다. 언제 어디서든 개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하윤은 귀엽다고 감탄하며 친구들에게 당연한 동감을 기대했지만 별 반응이 없었다. 그때, 세상물정 모르는 어린 손님이 딱했는지 별말씀이 없이 운전만 하시던 기사 아저씨가 한 마디 하셨다.


쟤들 먹는 겁니다.


어쩌면 그날의 충격 때문일 수도 있다. 캐나다엔 유기견이 많지도 않고 입양이나 임시보호 절차가 까다롭긴 해도 하필 왜 그 먼 한국에서 강아지를 데려오려고 하냐고 친구들이 물었을 때, 딱히 명확한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다. 하지만 무의식의 어느 부분엔 그날의 기억이 문신처럼 남아서 마치 상처를 치유하듯 이런 결정을 내리게 했을 수도 있다. 헌터도 식용으로 키워지던 개농장에서 구조되었다.


개고기를 먹는 식습관에 대해서 말하자면 옛날 가난했던 시절부터 시작해서 전체적인 육식까지 포함하면, 꽤 긴 갑론을박이 되겠지만 저마다 다른 입장과 생각은 접어두더라도 최소한 가축을 키우는 환경만이라도 적절했으면 좋겠다. (이렇게 쓰면서도 개나 고양이는 절대로 그 '가축'에 들어가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육식을 자주 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먹는 가축들이 알면 불공평하다고 따질지도 모르겠다. 생각이 이렇게 확장되면 심각하게 고민할 때도 있다. 채식주의자가 되어야 하나..


헌터가 구조되기 직전에 찍은 사진을 처음 보았을 때 너무 마음이 아팠다. 지금은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데도 아직도 이 사진을 보면 속상하고, 화가 나고, 여전히 마음이 아프다. 가끔, 아주 귀여웠을 게 분명한 강아지 때의 헌터 모습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더욱 그렇다. 어떤 사람들은 어릴 때 사진이 한 장도 없다던가 겨우 몇 장뿐이라는 것으로 자신의 유아기나 유년기가 사랑받지 못했다고 추측하기도 하는 것처럼, 사진 한 장 남아있지 않은 헌터의 강아지 시절은 또 다른 측은함을 불러온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큰 안타까움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시간 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헌터의 행동으로 짐작할 수 있을 때다.


헌터처럼 큰 개들에겐 먹는 것만큼 산책이 아주 중요하다. 하지만 밴쿠버에 온 다음 날 아침에 동네로 산책을 나가자마자 좌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민을 온 헌터에겐 소리와 냄새, 눈에 보이는 것까지 모든 것이 낯설 테니 좀 당황할 거라 예상하긴 했지만 생각보다 심각했다. 일단 소리에 너무 예민해서 잘 놀랐다. 지나가는 버스나 트럭, 새된 소리를 지르며 다가오는 어린아이들, 멀리서 들리는 농구공이 바닥을 치는 소리, 스카이트레인이 지나가는 소리, 목소리가 크거나 갑자기 인사하자고 손을 내미는 사람들, 특히 동양 남자어른들을 무서워했다.


이런 것들과 만날 때마다 무서워서 우리 뒤로 숨거나 아예 오던 길로 되돌아 뛰려고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난감한 상황은 '지금부터는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겠다'는 의지로 똘똘 뭉친 엉덩이를 깔고 주저앉을 때였다. 대책 없이 길 한가운데에 삼십 분을 우두커니 서 있었던 적도 있다. 그나마 인도를 걷는 중이면 괜찮은데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딱 중간쯤에 버티고 앉으면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사람들은 차를 멈추고 웃으며 기다려주지만, 아! 헌터야. 이건 민폐야. 아무리 달래도 움직이지 않아서 그 무거운 녀석을 올려 안아야 했다. 


이렇게 안고 꽤 걸어야 할 때도 있었다. 뭐가 다른지는 모르겠는데 같은 길인데도 초입에선 주저앉아 있다가도 어느 지점에 데려다 놓으면 또 잘 걷기 때문이었다. 이런 일이 몇 번 되풀이되자 온 동네에 소문이 났는지 전혀 모르는 할머니 한 분이 지나가시다가 말을 붙이기도 했다. 이제 니네 개 잘 걷니?

안겼을 때는 거의 득도한 표정으로 가만히 있던 헌터는 속으론 자존심이 상했는지 그런 날엔 산책에서 돌아와서도 밥도 먹지 않고 우울한 얼굴로 엎드려 있었다. 너 삐졌구나?


헌터가 온 후로 아이는 인터넷으로 개에 대한 꽤 많은 것들을 공부했다. 다행히 다양한 경험을 가지고 친절하게 강아지의 심리나 함께 사는 요령을 가르쳐 주는 사람들이 많아서 퍽 도움이 되었다. 덕분에 헌터가 갑자기 움직이지 않겠다고 버티는 건, 치즈로 고쳤다. 무염은 기본이지만 모짜렐라 치즈가 가장 칼로리가 낮아서 좋다고 한다. 그래서 작은 스틱처럼 생긴 모짜렐라 치즈를 사서 비상용으로 가방에 넣고 다녔다.

지금은, 치즈도 약빨이 떨어졌다. 사실은 쓸 일이 거의 없어졌다는 게 맞는 말이겠다. 그렇다고 산책 도중에 슬그머니 주저앉아서 먼 곳을 응시하는 버릇이 아예 없어진 건 아니지만 딱히 치즈가 아니어도 해결이 될 만큼 의사소통이 업그레이드되고 있는 거라고 해석한다. 어쨌든 '치즈 테라피'는 성공적이었지만 헌터가 좀 더 편하게 오래 걷게 하려면 아침에 일찍 나오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새벽 5시 반에 집을 나선다. 다행히 초여름이라 어둡지 않고, 워낙 공기가 좋은 곳인데도 불구하고 새벽녘의 푸르스름한 공기는 더할 수 없이 상쾌했다. 헌터가 아니었으면 몰랐을 즐거움이었다. 차도 사람도 거의 없으니 헌터도 잘 걷고, 빈 운동장에서 목줄을 풀고 마음껏 뛰어놀기도 했다. 이렇게 날마다 두 시간쯤 걷고 집에 들어오면 발코니에 나란히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하윤이가 '산책일기'라고 부르는 이 시간은 당연하게도 하윤 혼자 수다 떠는 시간이다.


하지만 헌터도 얌전하게 앉거나 서서 털을 빗겨주고 목덜미와 얼굴을 쓰다듬어 주면 반사적으로 한쪽 다리를 들고 빙구처럼 좋아했다. 덕분에 얼굴을 만져주면 좋아하고 안심한다는 것도 알아서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으려던 습관도 고쳤다. 재택근무라 9시에 컴퓨터 앞에 앉기만 하면 되니까 일기를 쓰고, 각자 밥을 먹고, 사과를 반쪽씩 나눠 먹은 후 헌터는 잠이 들고 하윤은 커피와 함께 출근을 했다. 가끔 까마귀를 잠깐 쫓거나 온갖 냄새는 다 맡으려는 듯 해찰이 심하고 걸음이 빠르긴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평화로운 산책은 보장받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산책을 방해하는 강적이 나타났다. 평소에도 흔하게 보는 녀석이고 사람들과도 친숙한 편이라서 헌터와 이럴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헌터의 잠자던 사냥 본능을 깨운, 좀 빠르긴 해도 눈치 없고 오두방정을 잘 떠는 녀석들.... 바로 청설모다.


가끔은 개라는 신분을 망각하고 고양이도 무서워하던 쫄보 헌터가 유일하게 첫 만남부터 깔보던 존재다. 사실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본능적으로 사냥하는 폼을 잡는 게 좋은 건지, 진짜로 잡아서 우리에게 전리품으로 바치려고 쫓는 건지, 아님 그저 같이 놀자고 온몸으로 신호를 보내고 있는 건지.... 우리는 마지막 가능성에 오백 원을 걸고 '모든 청설모의 그녀화'를 추진했다. 산책을 하다 헌터가 갑자기 멈춰서 먼 곳을 보거나 킁킁거리며 분주하게 코로 바닥을 쓸기 시작하면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헌터를 놀린다.


왜? 어디선가 익숙한 그녀의 향기가 나?


이젠 우리도 안다. 어디가 청설모의 밀집 지역인지, 어떤 나무가 적어도 한 마리 이상의 청설모가 상주하고 있는지, 청설모가 쏘다니는 시간이 언젠지... 그래서 어떤 때는 헌터보다도 먼저 이런 기색이 감지하고, 나는 하윤에게 끌려가면서 다치지 않게 조심하라는 하나마나한 말을 하고, 하윤은 하네스의 줄을 단단히 잡고 헌터의 움직임을 주시한다. 헌터는 꽤 오래 청설모의 기척을 살피다가 줄이 살짝만 느슨해져도 마치 신호를 포착한 것처럼 뛰어나간다. 헌터가 맘먹고 뛰어나가면 도리없이 같이 뛰어야 한다. 너무 빨라서 줄을 아예 놓고 싶지만 뜸하긴 해도 동네엔 어디에서 차나 사람이 나올지 모르기도 하고 혹시라도 헌터를 잃어버릴까 봐 걱정이 되어서다.


아직 한 번도 청설모를 잡은 적은 없다. 처음엔 무작정 돌진하더니 요즘은 멀리서 꽤 오래 지켜보며 청설모의 움직임대로 살금살금 한 발씩 내딛는 폼이 제법 '동물의 왕국'의 출연자 같다. 하지만 청설모가 아무것도 모르고 한가하게 놀 때는 가만히 있고 도망가기 시작하면 쫓아가는 걸 보면, 아무래도 사냥본능이 아니라 놀이본능 같다. 시고르자브종답다. 그래도 우리, 사냥본능이라고 하자. 그게 더 폼 나잖아.



저 앞, 잔디밭 위에 있는 청설모 보이시나요? 사진이라 보이진 않는데 집중해서 천천히 살금살금 한 발씩 떼는 모습을 보면 꽤 멋있답니다. 겨우, 청설모 잡으려고 그러는데 뭐가 멋있냐고 하시면 할 말은 없지만. 

청설모에 집중하면 거의 무아지경. 꽃잎이나 나뭇잎 하나만 떨어져도 화들짝 놀라 털면서 이렇게 큰 솔방울을 올려놔도 그대로 있다. 심지어 떨어뜨리지도 않는다.

'닭 쫓던 개'가 아니고 '청설모 쫓던 개' ㅎ

가자, 헌터야.

가만있어봐요. 어디선가 그녀의 향기가 난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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