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것들이 호명하는 추억

라면 한 그릇

by 윤서



# 자취생의 삼계탕

고등학교를 다른 도시에서 다니게 되면서 친구와 자취를 했다. 둘 다 우리가 먹을 반찬 정도는 어렵지 않게 만들 줄 아는 데다 친구의 집에서 넉넉하게 가져다 먹는 김치가 정말 맛있어서 자취생이라곤 해도 음식 때문에 크게 고생하진 않았다. 하지만 김밥 외에는 무엇을 만들어 먹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나마 이런 부실한 기억속에서도 꿋꿋하게 존재감을 나타내는 것은, 시험공부를 핑계 대며 몰려온 친구들과 함께 끓여 먹었던 삼계탕이다. 먹는 음식이 소박하던 때이니 자취생이 진짜 삼계탕을 먹었을리는 없고 그냥 우리끼리 부르는 이름이었는데 사실은 '양라면에 란'을 풀어 끓인 라면이다. 하고싶고 먹고싶은 것에 비해 늘 돈이 모자랐던 자취생들의 소망이 담긴 이름이라서 명칭의 센스만으로도 정신의 포만감을 채워주기 충분했다.


나에게 지금까지 먹었던 라면 중에서 가장 맛있게 먹은 라면을 말하라면, 이 시절에 먹던 ‘삼계탕’과 춘천 명동 지하상가에서 먹었던 떡라면, 그리고 대학 일 학년 때, 밤기차를 타고 가다 영주역에서 선 채로 먹었던 새벽의 컵라면이다. 모두 누군가와 함께 먹었던 라면이다. 그러고 보니 내게 라면은, 맛보다도 그때 함께 먹었던 사람과 그 시절의 추억 때문에 맛있는 음식일 수도 있겠다.


아직도 가끔 라면을 먹는다. 언제부턴가 라면을 먹고 나면 속이 편치 않았었는데 튀기지 않고 말린 면으로 만든 라면이 나오면서 한결 나아졌다. 지금은 풀무원의 꽃게라면만 먹는데 모처럼 한국슈퍼에 가도 없을 때가 많아서 당장 먹고 싶지 않아도 눈이 띄면 사다 놓는다. 예전엔 라면에 파만 넣고 끓여도 맛있고 배불렀는데 이젠 뭔가 좀 아쉬운 듯해서 거의 매번 달걀을 넣고, 새우나 콩나물, 숙주, 같은 것을 넣을 때도 있다. 슴슴하게 잘 익은 김치가 있으면 더 바랄 게 없지만 김치가 늘 있는 건 아니라서 얇게 썬 단무지와 먹을 때가 더 많다. 남은 국물에 밥을 한두 숟갈 말아서 먹어야 제대로 한 그릇을 다 먹은 것 같지만, 라면은 늘 첫 한 입이 가장 맛있다



# 아버지의 라면 한 봉지

아버지는 술을 좋아하셨다.

드시는 속도가 굉장히 빨라서 여러 사람이 모이는 자리에서 늘 가장 먼저 취하시곤 했는데 그러면서도 술을 시작하시면 적당히 드시는 적이 거의 없고 만취가 될 때까지 드셨다. 첫 딸인 나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주시는 특별한 혜택을 많이 받았다. 아버지께 스케이트를 배웠고, 인생 첫 햄버거도 아버지가 만들어 주셨고, 아버지의 서가에서 세로줄로 된 책들을 읽으며 자랐고, 둘이서만 바다여행을 간적도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취하신 아버지가 너무 싫어서 약주를 드신 아버지가 들어오시는 소리가 나면 어른 불을 끄고 자는 척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매번 안 자는 거 다 안다면서 불을 키셨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종이봉투에 넘칠듯 가득 들어있는 간식거리를 주셨다. 평소에도 빈 손으로 퇴근하신 적이 거의 없는 아버지는 약주가 과하신 날도 잊지 않았는데, 밤늦은 시간이라 떨이로 사 오셨는지 양은 많지만 다 식은 핫도그나 붕어빵 혹은 군고구마, 귤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이것들과 함께 꼭 사 오시는 게 라면 한 봉지였다.


집안에 라면 몇 봉지쯤은 늘 있었을 텐데도 혹시라도 떨어졌을지 모른단 생각을 하셨는지 당신께서 드실 것으로 두 봉지도 아니고 딱 한 봉지만 사 오셨다. 늦은 시간이니 라면이 몸에 좋을 리도 없는데 마치 아침 해장을 미리 당겨 드시는 것처럼 꼭 라면 한 그릇을 드셔야 주무셨다. 너구리라는 라면이 나왔을 때 무척 좋아하시며 꽤 오래 이것만 드셨던 기억이 난다. 나중엔 신라면으로 바꾸셨다.


요즘엔 캐나다에서도 다양한 종류의 라면을 파는데 특히 내가 예전에 한국에서 먹었던 라면들은 거의 다 있는 것 같다. 한국에 가면 못 보던 라면이 있긴하지만 라면과 추억이라는 카테고리에는 없는 종류라선지, 아니면 새로운 맛에 대한 호기심이 없어선지 그냥 지나친다. 어쩌면 새로운 것보다 익숙한 것을 좋아하는 성향때문일수도 있겠다. 그래서였을까? 그 많은 먹어본 적 없는 라면이나 과자들은 그냥 지나쳤는데 믿을 수 없게도 포장도 거의 바뀌지 않은 투게더 아이스크림 앞에서는 눈을 반짝이며 미소짓고 있었다.


투게더는, 술을 드시지 않은 날 아버지가 자주 사 오시던 간식이었다. 아버지가 투게더를 사 오시면 우리 네 형제는 숟가락을 하나씩 들고 모여 앉아서 경쟁하듯 빠르게 숟가락질을 하며 앉은자리에서 한 통을 다 먹어치웠다. 김해에서 한 달을 머무는 동안, 다행히 호텔방의 작은 냉장고에 냉동칸이 있어서 마치 유물을 발굴한 기분으로 투게더를 한 통 사서 넣어두고 날마다 조금씩 혼자 다 먹었다. 사실은 한 달 동안 세 통을 먹었다. 추억을 먹는 느낌이었다.



# 맛이 다른 신라면

이민 올 무렵 좋아하던 라면이 신라면이었다. 매운맛을 좋아하던 내겐 딱 맞는 라면인 데다 면발의 식감도 맘에 들었다. 이때부터 라면은 '농심'으로 굳혀진 것 같다. 이민 와서 한국마켓에 갔더니 거기에도 신라면이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바로 사다가 끓였는데 한국에서 먹던 맛이 아니었다. 나중에 친구에게 들었는데 수출용은 라인이 다르다고 했다. 그래서 면의 모양도 국내용은 네모고 수출용은 원형이라는 제법 구체적인 증거까지 댔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맛을 다르게 느낀 이유는 바로 조리하는 '불'때문이었다.


한국에선 가스레인지의 불로 라면을 팔팔 끓여서 먹었는데 이민 와서 처음 살던 아파트에는 코일로 된 전기스토브가 있었다. 아무래도 화력이 떨어진다. 불로 끓여 먹던 라면을 열로 끓였으니 잘 끓여졌을 리가 없다. 게다가 불(열) 조절에도 실패했던 것이다. 라면을 끓이려고 물을 올리고 불을 켰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물이 끓지 않았다. 이젠 그만 포기할까 싶을 만큼 아주 오래 기다린 후, 겨우 물이 끓어서 라면을 넣었는데 반을 끓고 반은 불으면서 익은 라면이 되었다. 그러니 맛이 다르게 느껴지는 건 당연했다. 나중에서야 알았다. 전기스토브로 그나마 라면 같은 라면을 끓이려면 가장 높은 max 에다 화력을 맞춰야 하는데 한국에서 가스레인지를 쓰던 습관대로 중간에다 맞췄으니 제대로 끓을 리가 없었던 것이다. 사소한 것부터 모든 것이 낯설고 어설펐던 이민 초기였다. 그야말로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의 이민사 중 하나다. 지금은 화력 좋은 개스 스토브가 있는 집에서 산다. 그런데 정작 이제는 라면을 자주 끓이지 않는다.



# 라면땅과 생라면

라면을 만들 때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튀겨서 과자를 만들어서 요샛말로 ‘대박’을 쳤다는 라면땅이라는 과자가 있었다. 손바닥 반만 한 쬐끄만 봉지에 들어있는 튀긴 라면 부스러기를 처음에는 손가락으로 집어 먹다가 나중에는 봉지째 입속에 대고 탁탁 털어먹었다. 누구나 다 이렇게 먹어서 더 재밌는 간식이었다. 참 이상하게도 입에서 살살 녹던 샤브레와 초코파이 같은 고급진(?) 과자보다도 라면땅이나 쫀드기 같은 불량식품으로 분류되기 쉬운 과자들이 더 신나는 목소리로 유년의 기억들을 호명한다.


아마 국민학교(네, 연식 대충 나옵니다. ^^) 5,6학년 때쯤인 거 같다. 아이들 사이에 생라면을 부숴 먹는 게 유행처럼 번졌다. 책상 서랍마다 라면 부스러기가 없는 아이들이 별로 없었고, 청소시간이면 그렇게 나온 라면 부스러기가 마룻바닥에 지저분하게 흩어졌다. 가끔 어떤 아이들은 공부시간에도 책상 아래에 손을 넣고 라면을 부시느라 뽀시락거리다 들켜서 선생님께 혼이 나기도 했다.

말수가 적고 소심해서 꽤 조용한 아이였던 나는 생라면은 집에서만 먹었다. 그런데 어느 날 짝이 주는 생라면 조각을 받아먹고 하루종일 속이 메슥거려서 고생을 한 적이 있다. 라면에 스프까지 뿌려진 건 처음 먹었기 때문이었다. 더 어렸을 때, 외가에서 이모가 미원을 넣고 만든 양념고추장으로 밥을 비벼먹었을 때와 맞먹는 불쾌감이었다. 이후로도 절대 스프는 뿌리지 않았지만 생라면 먹는 걸 좋아했다. 프라이팬에 살짝 구워 먹으면 더 바삭하고 맛있었다. 이민 온 후에도 끓는 물에 라면을 넣다가 살짝 귀퉁이를 잘라 먹어 볼 때도 있었는데 바삭하기보다는 눅눅할 때가 더 많았다. 게다가 요즘엔 말린 면으로 된 라면을 먹으니 마지막으로 생라면을 먹은게 언젠지 까마득하다.



# 내 아이의 첫 라면 한 그릇

아이가 어릴 때, 한동안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뭐냐고 물어보면 바로 나오는 대답이 라면이었다. 국수라면 잔치국수부터 스파게티까지 좋아하지 않는 게 없어서 집에서도 다양하게 자주 만들어 주었는데 인스턴트로 맨 처음 먹은 것은 짜파게티였다. 처음엔 짜파게티만으로도 너무 행복해하더니 슬슬 라면을 탐내기 시작했다.


식구들이 한창 먹성이 좋을때라 일이주에 한 번씩 한국마켓에 갈 때였는데 그때마다 라면 코너 앞을 서성이는 게 불쌍해 보일 지경이라서 진라면 '순한 맛'을 사다가 스프는 다른 냄비에 끓이고 라면을 삶아 건져서 스프 끓인 물에 넣어주었다. 라면 하나로 뭐 이리 유난을 떨었냐고 흉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햇아가 때부터 아토피가 심해서 가려 먹는 음식이 많았던 터라 될 수 있으면 인스턴트 라면은 안 먹일 작정이었는데 결국 이렇게 아이는 첫 라면을 먹었다.


라면 맛을 본 아이는 맛의 신세계를 발견한 표정이었다. 그래봐야 MSG의 맛이겠지만 사실 이것만큼 결정적인 맛도 드물다는 걸 인정한다. 게다가 라면 수프에는 글루탐산 나트륨말고도 오랜 연구결과에 의한 재료의 오묘한 결합이 만든 비장의 맛이 있지 않은가 말이다. 알러지때문에 유제품을 못 먹다 보니 이른 유아식으로 된장찌개와 호박부침을 먹고 자란 아이답게 대중적인 한국의 맛이라 할 수 있는 라면에 푹 빠졌다. 결국은 내가 져서 '딱 이번 한 번만'이 '한 달에 한 번'으로 바뀌면서 우리 집 공식 라면 먹는 날을 정했다. 일식집에 가도 초밥보다 씨푸드라멘을 먹는 아이를 위해서 우동을 끓여줄 때처럼 라면에 새우와 맛살, 야채를 조금씩 넣어 끓여주기도 했다. 이제 어른이 된 아이는 예전만큼 라면을 좋아하진 않는다. 일식집에 가도 라멘 대신 초밥을 먹는다. 그래도 가끔 집에서 끓여 먹는 라면엔 언제나 마지막 남은 국물에 밥을 만다.


내가 아직까지도 라면에 얽힌 추억들을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내 아이도 기억할 것이다. 맨 처음 먹었던 라면 한 그릇의 맛과 그 라면을 먹으면서 엄마와 함께 했던 농담과 웃음을. 그리고 살아가는 동안 가끔은, 라면 한 그릇처럼 흔하고 특별하지 않은 것들이 그 무엇보다도 따스한 추억이 되어 찾아올 때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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