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커피 한 잔에는 사연이 있다.

Every cup tells a story

by 윤서


Every cup tells a story

애칭으로 '티미'라고 부르는 "Tim Hortons'의 커피광고의 카피다. 꽤 오래 전의 카피지만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는 이유는 이 카피가 사용되던 시기의 광고가 유난히 좋았기 때문이다. '팀 호튼스'가 어떤 곳인지를 쉽게 말하자면, 미국에 스타벅스가 있다면 캐나다엔 '팀 호튼스'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여러 해 전에 '팀 호튼스'가 미국의 기업에 팔렸다는 소식이 발표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놀라움과 함께 배신감을 느꼈을 만큼 오래도록 사랑을 받는 캐나다의 대표적인 커피 레스토랑이다.


팀 호튼스는, 유명한 아이스하키 선수였던 '팀 호튼(1930-1974)'이 선수생활에서 은퇴한 후 Ron Joyce와 함께 1964년 온타리오주의 해밀턴이란 곳에서 처음 만든 커피집이다. 불행하게도 그는, 사업이 어려운 고비를 넘기고 어느 정도 성장해서 40여 개의 점포를 가지게 되었던 1974년에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그 후 그의 동업자는 더욱 사업을 확장해서 2000년 12월에는 2000번째 팀 홀튼을 열게 되었다.(매장이 4,600여 개정도일 때를 기억하는데 이젠 오히려 줄어서 현재 캐나다에는 3,382개, 미국에 633개가 있다고 한다.)


커피뿐 아니라 도넛과 간단하게 요기를 할 수 있는 수프와 샌드위치를 파는 곳인데 가격 대비 맛이나 질도 좋아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 가게 안에서는 격식 없이 적당한 가격에 따뜻한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어서 특히 노인분들이 많이 오시고, 휴일아침엔 가족단위로, 점심시간엔 직장인들도 즐겨 찾는다. Drive Thru는 늘 줄이 길다.


고백하자면 나는 이제 팀 호튼스의 커피를 거의 마시지 않는다. 조금 더 호사스러운 커피에 길들여진 내 입맛이 팀호튼스를 배신했다. 하지만 여전히 '팀 호튼스'는 간판을 보는 것만으로도 괜히 마음이 편하고 따뜻해지는 곳이고, 가끔은 '메이플 딥' 도넛에 블랙커피 한 잔이나 혹은 달콤한 프렌치 바닐라 커피가 생각날 때도 있다. 그리고 예외 없이 함께 먹었던 사람들, 혹은 혼자 차 안에서 마셨던 이른 아침이나 비 오는 밤의 커피가 생각난다.


꽤 오래전이니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을지도 모르지만, 가족들과 록키 여행을 하고 난 후에 내가 자주 하던 말이 있다. 만약 캐나다에서 '로드 트립'을 할 계획이라면 꼭 기억해야 할 것이 두 가지가 있는데, 차에 개스가 넉넉하단 생각이 들더라도 주유소가 나타나면 무조건 가득 채우고, 팀 호튼스가 나타나면 배고 고프지 않아도 먹을 것을 사고 화장실을 꼭 들리는 것이었다. 캐나다는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숲으로 숲으로 이어지는 이동거리가 무척 긴 것에 비해 주유소가 띄엄띄엄 있고, 24시간 문을 열어두고 따뜻한 요리와 뜨거운 물이 나오는 화장실까지 쓰게 하는 곳으로는 '팀 호튼스'가 유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개의 커피 광고들이 그렇듯이, 내가 기억하는 ‘팀 홀튼스’의 광고도 늘 정답고 감동적이었다. 글을 시작하면서 쓴, Every cup tells a story 라는 카피가 사용될 때는 일반인들의 커피 한 잔에 얽힌 사연을 공모했었다. 그 사연을 바탕으로 티브이 광고를 만들었다. 한 마디로 '이것이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는 우리 일상의 소소하지만 뭉클한 장면들이 나올 때, 화면 어느 한 구석, 혹은 누군가의 손에 팀 호튼스의 종이컵이 들려있다. 그리고 자막과 함께 들리는 말, Every cup tells a story. 모든 커피 한 잔에는 사연이 있다. 아마 나를 포함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도 유효한 말일 것이다. 커피는 맛보다 향기가, 향기보다는 분위기가, 분위기보다는 추억이 맛있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평생 다정한 친구처럼 함께 살아온 커피를 맨 처음 마신 건 열 한살 여름이었다. 그해 여름엔 바닷가 땡볕에 등이 타서 물집이 잡히고 허물이 벗겨지며 가려워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겨우 하룻만에 이 지경이 되었냐고 내 시원찮은 피부에 혀를 차시며 아버지는 찬찬히 껍질을 벗겨주셨다. 그리고 그 여름밤, 처음으로 냉커피를 마셨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나는 아버지께, 처음으로 '술'이 아닌 '커피'를 배운 것이다. 그 후로 아버지는 내게 다시 커피를 주시지 않았지만 그 맛을 못 잊어서 몰래 커피를 타보기도 했는데 적당한 분량을 몰랐던 탓에 늘 너무 진하고 쓰기만 해서 죄를 짓는 기분으로 버리곤 했다. 어쩌면 아버진 슬쩍 커피 향만 나는 설탕물을 내게 주셨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냉커피 한 잔이 내겐, '내 인생의 첫 커피'다.


여고생이 되어서 조금 더 큰 도시로 나온 나는 자취방 한쪽에 아주 고급스러운 장식품을 놓듯 커피와 프림과 설탕통을 놓아두곤 뿌듯했다. 커피 한 스푼에 프림 둘, 설탕 하나 반, 물의 양이 관건이었다. 나만 아는 아주 미세한 차이로, 나는 커피를 가장 맛있게 타는 친구로 등극했다. 전기 주전자에서 물이 끓기 시작하는 소리를 사랑했고, 겨울이면 외풍이 심해서 늘 이불을 둘러쓰던 그 작은 자취방에 폭폭 한 김이 서리는 게 좋았다. 같이 사는 친구와 시험공부하면서 먹자고 한 접시 가득 예쁘게 말아서 잘라놓은 김밥을 이불속에서 손만 내밀어 집어 먹으며 커피를 홀짝거렸다. 어묵국물의 뒤를 이어서 김밥과 가장 어울리는 건 사이다나 콜라인 줄 알았던 우리는 커피와 함께 먹는 김밥의 맛에 감동했다. 지금도 평소엔 잘 마시지 않는 커피믹스를 김밥과 함께 먹을 때가 있다. 여전히 맛있다.


그저 향긋하고 설레는 추억으로 남아있던 커피 향이 가끔 그 빛깔만큼 진하고 씁쓸하게 다가오기 시작했을 때, 내가 디딘 세상의 첫발에서 제법 멀리, 꽤나 아픈 일들을 겪으며 떠나왔음을 알았다. 소리 낼 수 없는 슬픔이 차올라 어설픈 흉내를 내듯 술이 마시고 싶을 때면 망설임 없이 찻물을 끓이고 커피를 마셨다. 커피는 혹시라도 후회할 내 어리석은 모습을 미리 지켜주었다. 그러다 고단한 이민자가 되어 일주일에 한 번씩 장을 보러 갈 때면, 이름도 멋들어진 갖가지 원두커피가 들어있는 투명통 앞에서 그 향기만으로도 행복했고, 조금씩 덜어낸 원두커피를 갈아서 종이봉투에 담으면서, 질기고 어렵기만 한 이민살이가 원두처럼 부서져서 내 삶의 질 좋은 향기가 되어줄 거라며 나 자신을 위로했다.


커피는 언제나 내 곁에 가까이 있어서,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내가 얼마나 커피를 좋아하는지 금세 알아버리는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 어떤 날은 커피가 그저 한낱 사물이나 기호품이 아닌 오래오래 내 마음을 함께 한 친구처럼 생각되어 마시던 커피 한 잔을 물끄러미 내려다볼 때도 있었다. 이른 아침, 맨 처음 마시는 커피는 다시 하루를 시작할 기운을 주고, 늦은 밤, 밀린 일을 하거나 글을 쓰면서 마시는 커피는 내 피곤을 찬찬히 걷어 가기도 한다. 직장동료가 내 머그에 나눠주던 자판기 카푸치노는 좀 떨어지는 맛과는 상관없이 지친 내게 따스한 위로가 되고, 맛있는 밥을 먹고 느긋하게 마시는 커피는 사는 게, 행복이란 게 뭐 별거겠냐고 호기를 부려도 흉이 되지 않는 그런 맛이기도 하다.


이렇게 좋아하고 즐기는 커피지만, 이상하게도 몸이 탈이 나려고 하면 가장 먼저 입맛이 떨어지는 음식이기도 했다. 그래서 커피 맛이 평소와 다르거나 아예 생각이 없으면 감기나 몸살에 잡힐 거라는 신호라 여기면서 몸을 미리 챙겼다. 언젠가는 위가 탈이 났는지 커피만 마시면 속이 쓰려서 몇 달 동안 끊은 적이 있었는데, 결국은 아예 끊지 못하고 농도와 양을 조절해서 조심스레 다시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가장 만만한 음료수로 커피를 마시다가 횟수를 줄이고, 묽게 만들고도 약간 긴장하며 천천히 한 모금씩 마시게 되자 평범하던 커피 한 잔이 뭔가 각별해졌다.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그것이 주는 평안을 오래도록 간직하려면 지나치지 않아야 한다는 걸 새삼 다시 깨달았다. 하지만,


이제 커피와의 평화협정은 완전히 깨졌다. 그토록 좋아서 늘 끼고 살던 카페인에게 배신당하고 디카프는 커피도 아니라고 입방정을 떨었던 날들을 사죄하기에 이르렀다. 급기야 온갖 디카페인 커피를 전전하면서 디카프도 커피라고, 알고 보면 카페인이 아주 쪼금은 들어있다고, 세뇌와 합리화를 거듭한 결과 맛이 아니라 습관으로 커피를 마시게 된 것이다. 그나마 '일리illy'의 디카프가 나를 살렸다. 사실은 요즘도 아주 가끔 카페인 든 진한 커피를 마신다. 밤새 꿈 많은 선잠에 시달리고 집채만 한 후회에 짓눌린 아침을 맞을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을 때만.


그래도 여전히 커피는 사랑이고, 내가 느꼈던 모든 감정을 낱낱이 기억하고 있는 가장 오래되고 입이 무거운 내 '곁'이다.






keyword
윤서 여행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출간작가 프로필
팔로워 1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