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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서 Oct 05. 2023

싸던 짐을 다시 푼다.

괜찮아, 헌터야.


입양신청자는 밴쿠버의 다운 타운에 사는 젊은 남자였다. 서류 심사로는 다 통과한 모양이었다. 최종 결정을 하기 전에 헌터를 직접 만나보고 싶다고 해서 주말에 우리 집 근처로 오라고 했다. 직접 만나기 전부터 하윤은 그 사람의 환경이 헌터한테 맞지 않는 것 같다며 불안해했다. 헌터는 아직도 동양남자를 무서워하고, 마당 있는 조용한 주택가였으면 했는데 복잡한 다운타운 쪽이었고, 다른 가족도 있었으면 했는데 작은 스튜디오에서 혼자 사는 사람이고, 강아지를 키워본 적도 없다고 했다.


입양은 임시보호를 하는 사람의 의견을 가장 존중한다고 해서 하윤이가 말했던 조건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상황이었다. 아무래도 헌터가 입양신청이 너무 안 들어오니까 기회가 왔을 때 큰 문제가 없으면 보내려는 것 같았다. 입양될 때까지 계속 임시보호를 해 주겠으니 좋은 입양처를 찾아달라고 했는데 그리 흡족하지 않은 조건인데도 서두는 것 같아서 괜히 야속했다. 우리도 생각했듯이, 임보가 길어지면 입양이 되어도 적응하기 힘들다고 생각해서 그럴 거라고 이해하면서도 마음은 편치 않았다. 어쨌든 일단 만나보기로 했다.


나는 집에 있고 하윤과 헌터만 그를 만나러 내려갔다. 로비에서 만나서 잠깐 대화를 하고, 헌터와 함께 걸어보고 싶어 하는데 거리로 나가는 건 아무래도 불안해서 이층에 있는 중정을 함께 걸었다. 그렇게 30분쯤 만나고 돌아온 하윤의 표정이 밝지 않았다. 자기가 바랐던 조건과 너무 안 맞기도 하고, 헌터에 대해 조심하거나 걱정스러운 부분을 이야기해도 별로 귀담아듣는 것 같지 않고 모든 걸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다고 했다. 헌터의 외모만 보고 마음에 입양을 결정한 것일까 봐 걱정됐다.


우리는 이때까지 밴쿠버에서 입양을 담당하는 사람이 따로 있다는 걸 몰랐다. 그분과 다시 연락을 해서 이런 마음을 이야기했더니, 입양하려는 사람을 만나 본 후의 하윤의 결정에 따르겠다던 처음의 말과는 달리 헌터한테 가장 중요한 건 환경보다는 주인과의 유대라면서 우리의 모든 의견을 일축했다.


뭔가 이상해서, 벌써 입양절차가 끝났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다. 시간상으로 헌터를 만나고 돌아가는 차 안에서 입양신청을 끝낸 것이었다. 아니면 헌터를 만나기 전에 이미 끝났는데 우리에게 말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었다. 우리는 뭔가 켕기는 마음을 없애려고 노력했다. 우리의 걱정이 편견이길 바랐다. 그동안 많이 사랑했고 낯선 것들에 적응하게 하려고 함께 애썼으니 우리가 헌터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은 다 한 거라며 아이를 위로했다.


입양하기로 한 사람은 2주 동안 캘리포니아로 휴가를 가는데 다녀와서 헌터를 데려가겠다고 했다. 그럴 거면 아예 휴가를 다녀와서 바로 입양절차를 시작하지 이건 또 무슨 경우인가 싶으면서도 우리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그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헌터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다른 사람이 입양할까 봐 그랬을 거야. 혼자 사니까 헌터를 어디다 맡기고 가는 것보다는 그래도 우리한테 있다 가는 게 나을 테니 잘 된 거야. 그 사람도 휴가를 다녀오면 뭔가 삶의 전환점을 찾기 위해서 개도 입양하기로 한 걸 거야.. 등등. 이러면서도 뭔가 맘에 안 들고 불안했다.


특히 하윤은 그동안 한국에 있는 입양기관 사람들과는 서로 믿고 좋은 관계를 유지했는데 어쩐 일인지 밴쿠버에 있는 사람과는 말이 잘 섞이지 않아서 매번 감정이 상했다. 마지막엔 마치 헌터와 헤어지기 싫어서 우리가 입양할 것도 아니면서 입양을 방해한다는 뉘앙스의 말을 해서 억울하기도 하고 화도 났다. 모든 게 헌터를 위한 일이 아니라며 정말 조목조목 따지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쨌든 결정은 났고, 우리는 헌터를 보낼 준비를 했다. 하윤은 헌터에 관한 모든 것을 적고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의 리스트를 만들었다. 나는 헌터의 물건들을 세탁해서 정리를 했다. 섭섭한 마음이야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처음 계획한 대로 된 거니까 잘된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약속한 2주가 되었다. 날짜를 딱히 정한 건 아니지만 언제 휴가를 떠났는지 알고 2주라고 했기에 우리는 날짜 계산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예상한 날짜보다 3일이 지나도록 아무 연락이 없었다. 입양하기로 한 사람뿐만 아니라 한국이나 밴쿠버의 입양관리자들로 아무 연락이 없었다. 아무래도 이상해서 하윤이가 한국으로 연락을 했다가 뜻밖의 말을 들었다.


입양을 취소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아무도 연락을 안 해 준 것이다. 더구나 한국에 계신 분의 말씀이 밴쿠버 담당자에게서 연락이 왔는데 하윤이가 입양을 하기 위해서 가족들과 의논해 보기로 했다고 해서 안 그래도 연락을 기다리는 중이었다며 어떻게 하기로 했냐고 오히려 묻는 것이었다. 너무 어이가 없고 화가 나서 하윤은 그동안 그 사람과 주고받았던 문자까지 다 보내주었다. 입양이 취소된 것도 알려주지 않고 게다가 하지도 않은 말로 이런 상황을 만든 걸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한국에 계신 분은, 아무래도 대화 중에 뭔가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며 지금이라도 입양 생각이 있으면 진행할 수 있다고 했다. 뭔가 말려든 것 같은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때부터 하윤의 고민이 시작되었다.


안 그래도 꾹 누르고 있던 생각이었는데 도화선에 불을 댕긴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달라진 것이 별로 없는 상황이니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냥 계속 임시보호를 하자는 쪽이었고 하윤은 아무래도 헌터가 쉽게 입양되지 않을 것 같다며 어찌해야 될지 몰랐다. 나와는 수도 없이 대화를 했고 마치 투표를 하듯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의견을 구했다. 모두 하윤의 상황이나 헌터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모두들 헌터보다는 하윤을 위한 충고였고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들 입양은 하지 말라고 했지만 하윤에게 설득력 있는 대답은 없었다.


그때 해미와 살고 있는 '비키'의 말이 결정에 도움을 주었다. 사실 우리가 걱정하는 것 중의 큰 부분이 주거 환경이었다. 지금 살고 있는 도심 한가운데의 고층 아파트는 헌터에게 그리 좋은 환경은 아니라서 가능하다면 바꿔주고 싶었지만 당장 그럴 수는 없어서 새벽마다 긴 산책을 하는 중이기에 개에게 가장 중요한 건 환경이 아니라 주인과의 유대라는 맞는 말도 완전히 수긍할 수 없는 상태였다.


이런 마음을 아는 비키가 말했다. 아무리 환경은 이차적인 문제라고 해도 만약 헌터가 어느 좁고 낡은 베이스먼트에서 산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어떨지 상상해 보라는 것이었다. 좀 극단적인 표현이긴 했지만 하윤이 마음을 정하기엔 충분했다. 앞으로 헌터의 미래, 적어도 십 년 정도의 시간을 어디에서 살지 결정하는 일이었다. 하윤은 자신이 생각하는 가장 좋은 환경이 나타날 때까지 임시보호를 계속하기로 결정했다.


우리의 생활은 달라진 건 하나도 없는데 마치 날아온 돌멩이가 창문을 조금 깨뜨려서 가끔 바람이 들어오는 것처럼 감정으로 흔들릴 때도 있었다. 왜 그런지 명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그저 희망을 가지고 입양을 기다리며 임시보호를 하던 때와는 조금 다른 마음이었다. 그리고 헌터가 모르니 망정이지 만일 이 모든 사실을 안다면 얼마나 속상할까 싶어서 불쑥 다시 화가 날 때도 있었다.

나는, 당장은 쓰지 않는 물건들을 골라 미리 싸두었던 헌터의 가방을 다시 풀었다. 다행도 불행도 아닌 뭉클한 무엇인가가 내 속 한 구석을 뜨겁게 했다. 그새 많이 늘어난 헌터의 물건들을 원래의 자리에 다시 놓아두면서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괜찮아, 헌터야. 


내색은 안 했지만 아이가 아직도 입양에 대해서 계속 고민 중이란 걸 눈치챘다. 나도 이젠 뭐가 헌터에게 가장 좋은지 잘 모르겠어서 우리가 말했던 1년이란 기간에게 모든 걸 맡겼다. 그래도 헌터가 여전히 잘 먹고, 잘 자고, 산책도 잘하고 새친구도 사귀면서 행복해 보여서 마음 상했던 껄끄러운 기억들은 다 잊기로 했다.



가끔 이허게 창밖을 보거나 발코니에 나가 앉아 먼 곳을 바라본다. 철학자 같다. ^^

조금 더우면 찾아가는 자리, 시원한지 여기서 잘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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