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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타의 두 사람

인생책

by 윤서



누군가 어떤 것에 대해 의견을 물어올 때, 그것이 관심사이든 아니든 내 생각을 말하는 것에 그리 어려움을 느끼거니 당황하지 않는 편이지만 유난히 내가 싫어하는 종류의 질문들이 있다. 가격이 얼마인지 맞춰보라는 것과 '가장'의 수식어가 붙는 것들이다. 이를테면 가장 좋아하는 책, 영화, 음식, 그림, 음악, 같은... 내게, 흔히 말하는 결정 장애가 있는 것일 수도 있고 어딘가 우유부단한 성격이 숨어 있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경험치가 많을수록 선택은 더 어려워진다.


게다가 완벽하게 다 좋은 것을 만나기란 종류를 막론하고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호불호는 비율로 나눠지고 좋은 쪽의 비율이 높으면 선택되는 것인데 그것 또한 숫자로 명확하게 표시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경우에 따라선 좋았던 것이 싫어하는 것이 될 수도 있어서 '그때그때 달라요.'의 함정에 빠지기도 해서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줄임말이나 유행하는 말을 그리 좋아하지 않고 의식적으로 사용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런데 '가장'과 '유행어'가 한꺼번에 떠오르고, 나도 모르게 그 말을 하고 말았다.



그리스인 조르바

난생처음으로 가장 좋아하는 인생책이 되었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두 번째 읽고 난 후였다. 아니 두 번째는 오디오북이었으니 들었다고 해야겠다. 뜨개질을 할 때면 오디오북을 듣는다. 맘에 드는 목소리를 찾기가 쉽지 않은데 다행히 좋은 곳을 찾아서 최재천 교수님 이후로 유튜브에서 구독하는 두 번째 채널(책 들려주는 창가)이다. 주로 고전이다.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이어 몇 개의 단편을 거쳐 얼마 전엔 제인 에어를 들었다. 거의가 한 번쯤 읽었거나 읽다 만 것들이었지만 지나간 세월이 꽤 두터워선지 새롭게 다가왔다. 무엇보다도 돋보기를 끼는 게 너무 싫어서 전자책으로 가능하지 않으면 책을 멀리했었는데 덕분에 구원받은 느낌이다. 고전의 가치를 새롭게 배우고 있는 것도 덤이라면 덤이다.


다시, 조르바.


내가 '난생처음으로 가장 좋아하는 인생책'이 된 조르바는, 더구나 소설이다. 나는 소설의 묘미를 마흔이 넘어서 겨우 깨닫고 읽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는 부분적으로라도 두 번 이상 펼치지 않는 책을 사진 않았고 그게 소설류였다. 그래서 더욱, 내 첫 번째 인생책이 소설이 되리라곤 생각한 적이 없었다. 물론 앞으로 변할 수도 있겠지만 어쩐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니코스 카찬차키스의 자전적 소설이다. 조르바는 그가 만난 실제 인물이다. 그가 자신의 인생에 영향을 준 인물로 호메로스, 니체, 베르그송에 이어 조르바를 놓은 이유를 알 것 같다. 자신에겐 없는 부분을 상대에게서 발견하고 그걸 밀어내거나 무시하지 않고 그지없이 사랑하고 존경하는 두 사람의 관계는, 흔히 두 가지 형태로 대립되는 삶의 무수한 양방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나는, 부딪치는 두 가지 중에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자체발생적인 압력을 받으며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표면적으로는 이분법을 그토록 싫어한다고 말하면서도 결국에 그 함정에서 완전히 빠져나오지 못했다. 마치 삶에 대한 대답이 '예', 와 '아니오'밖에 없는 것처럼.


하지만 이 책은 생각의 부피를 늘여서 더 갈등하게 만드는 책이 아니다. 카잔차키스의 사려 깊고 우아한 문장과 그를 통해 살아나는 단순 명료하면서도 단호한 조르바의 말들은 내가 불필요한 생각과 가치를 너무 많이 눌러 담고 살았다는 걸 깨닫게 했고, 책이 끝날 무렵엔 전에 없이 가벼웠다.


종이책이었다면 밑줄을 긋거나 인텍스 테이프를 너덜너덜하게 붙였을 것이다. 아마 그랬으면 너무 자주 흐름이 끊겨서 물살을 타듯 책을 마음에 담진 못했을 것 같다. 오디오북이라 더 좋았던 점이다. 하지만 끝내, 다시 되새기고 싶은 부분들을 잊지 못해서 책을 꺼냈다. 처음으로 읽었던 '그리스인 조르바'는 누구의 번역이었는지 기억나지 않고, 지금 갖고 있는 건 '이윤기' 번역이다. 나는 오래전에 읽었던 이 분의 단편소설 '나비넥타이'가 인상적이라 성함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번역도 많이 하신걸 한참 후에 알았다. 이미 읽은 책이지만 소장하고 싶어서 몇 년전에 한국에 갔을 때 새 책으로 사왔었다.


몇 시간 전에 오디오북 듣기를 끝냈고, 다 아는 내용이고 기억하는 문장인데도 종이책의 첫 장을 읽으면서 또 설렌다. 기발한 은유나 놀랄만한 상황의 묘사도 없는데 가슴이 두근거린다. 아, 나는 정말 이 책을 사랑하는구나… 나는 바로 책을 덮었다. 오디오북으로 들은 카잔차키스와 조르바의 물결이 잠잠해질 시간이 필요했다. 조르바가 영혼의 교감으로 사랑했던 산투르 연주를 찾아 들었다.


곧, 세 번째로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을 것이다.



한국어로 번역된 그리스인 조르바는 모두 두 개 이상의 언어를 거친 중역번이었는데 2018년 5월에 유재원 번역으로 그리스어 원전 번역본(문학과 지성사)이 출판되었다고 한다. 기회 되면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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