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죽었다.
내 사랑 관우, 관운장이 죽었다.
아무리 죽은 후에 거의 신격화되었다 해도 그 죽음이 너무 허무해서 이래도 되나 싶었는데 뒤이어 잔머리에 능한 간사하고 나쁜 사람인 줄 알았는데 딱 정치에 필요한 사람이고, 무엇보다 조언을 잘 수렴하고 인재를 귀하게 여기는 매력이 있던 조조도 죽고, 힘세고 의리밖에 없는 장비도 죽고, 슬퍼서 울고불고하던 유비까지 연달아 죽었다. 어찌 보면 유비는 '도원결의'때문에 죽었다는 생각이 든다. 한날한시에 죽자는 너무나 비능률적이고 소모적인 결의를 해서 두 아우가 황망하게 떠나고 나니 거의 화병으로 죽은 듯하다.
그래도 유비의 유언은 사람됨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제갈공명에게 자신의 아들들이 그리 뛰어나지 못하니 계속 도와주다가 자식의 재주가 영 모자라면 나라를 취하라고 한다. 요즘이라도 쉬운 일이 아닌데 그 옛날에 그랬으니 대단한 사람이긴 하다. 사실 유비는 혈통의 덕을 많이 본 사람이다. 인자하고 선함은 으뜸이지만 뛰어난 지략이나 판단력은 부족하다. 그리고 그도 여포처럼 여러 번 배신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포가 삼국지의 배신의 아이콘으로 남은 반면 유비는 덕이 높은 사람으로 칭송하는 이유는 여포가 개인의 욕심 때문에 배신을 했다면 유비는 오직 나라와 백성을 위해서라는 대의명분으로 움직였기 때문이다. 의도가 무엇이었냐에 따라서 행동의 평가가 달라지는 것은 때론 찬반의 여지가 있지만, 나는 경우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는 걸 전제하더라도 대의명분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쪽으로 조금 기우는 것 같다.
삼국지, 이제 절반쯤 지난 것 같은데 알고 있던 인물들이 연달아 죽고 나니 급격하게 흥미가 떨어진다. 하지만 아직 조자룡과 공명이 있으니, 두 사람에게 정 붙여 듣다 보면 안타깝게 죽은 방통이나 순욱같은 그윽하게 향기를 남기는 사람들을 더 만날 수도 있으리란 기대도 해본다.
아직 스웨터가 완성되지 않았으니 듣긴 들을 텐데 집중도는 확 떨어졌다. 삼국지 오디오북, 과연 끝까지 들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