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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서 May 03. 2024

이 도시엔 곰이 산다.

아직은.



엄마, 이거 바꿔야 할까?


헌터의 큰 물병 때문에 늘 메고 다니는 슬링백에서 봉지가 쭈굴쭈굴해진 프로틴 바를 꺼내 유통기한을 확인하던 아이가 한 말이다.


글쎄... 곰도 유통기한을 확인하고 먹을까?


아이가 따라 웃는다.

어림없을 거라 짐작하면서도 산책하다 혹시 곰을 만나면 이걸 던져주고 껍질을 까는 동안 슬금슬금 뒷걸음질로 도망친다는 게 우리의 계획이다. 물론 그러는 동안 헌터는 짓지 말아야 하고 주제파악을 못해서 가소롭게 덤비지도 않아야 한다. 단 한 마디라도 대들면 무조건 끝장이라는 걸 헌터한테 설명할 방법이 없어서 그저 본능적인 감지 능력을 믿을 뿐이다. 산책할 때 어떤 개의 오줌은 덮으면서도 또 어떤 개의 흔적은 냄새만 맡고 슬그머니 지나가는 걸 보면 다행히 강자를 알아보고 꼬리 내리는 본능이 꽤 발달한 것 같긴 하다.


곰을 조심하라는 경고문은 숲길이나 산책로엔 아예 고정으로 붙어있지만 지나가던 낯선 사람이 저기 어딘가에 곰이 있으니 조심하라고 일러주는 일이 몇 번씩 되풀이되는 계절이 있다. 곰이 동면에 들기 전 후인 늦가을과 이른 봄이다. 12월 중순쯤에 동면에 들어가는 곰은 그전에 에너지를 비축하기 위해 돌아다니고, 동면에서 깨어나 배고픔을 끌어안고 세상으로 나오는 때는 삼월 중순쯤이다. 아직은 헌터와 산책하는 동안 직접 곰을 만난 적은 없지만 산책하던 이웃의 말을 듣고 길의 방향을 바꾼 적은 있다. 사실 곰을 '조심'하라는 건 그냥 인사말같은 것이고 최선의 방어는 곰을  만나는 것이다.


우리는 곰에게 아부하는 심정으로 유통기한이 지난 프로틴 바를 버리고 새것을 다시 가방에 넣었다. 사실 이건 곰을 위한 간식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부적 같은 것이다. 뭔가 아주 사소하고 하찮을망정 방비책을 준비했다는 별 쓸모없는 위안이다. 헌터의 목줄에 달린 연락처와 예방접종 상태를 기록한 작은 금속판 두개가 서로 부딪쳐 작은 소리로 짤그랑거리면 아예 소리가 크게 나는 방울을 하나 더 달을까 고민하기도 한다. 사실 예전보다는 곰에 관한 소식이 뜸해지긴 했다. 아마 도시가 커지면서 개인주택은 줄고 고층콘도가 늘어나니까 시끄럽고 복잡해서 그럴 것이다. 게다가 주택을 허물면서 잘린 나무들도 꽤 있다. 하지만 아무리 복잡한 지역도 멀지 않은 곳에 숲과 가장 늦게 돌아오는 '첨chum'이라는 연어가 지나다니는 크릭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여전히 곰과 함께 살고 있다. 두렵지만 친근하기도 한 이상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곰의 습성을 제대로 알게 된 후에, 곰처럼 미련하다, 곰처럼 느리다, 혹은 곰은 나무에 오르지 못한다, 라던 말들은 모두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길을 거슬러 튀어 오르는 연어를 순간적으로 낚아채거나 높은 나무에 오르거나 밤길을 질주하는 곰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외모만 보고 판단한 편견이었을 것이다.


아이들이 어릴 땐 곰이 자주 나타나는 시즌이면 어김없이 학교에서 안내문이 왔었다. 마당에 혹시 과일나무가 있으면 미리 따고, 텃밭도 정리하고, 음식물 버리는 걸 조심해라. 곰은 시끄러운 걸 싫어하니 산책할 때 혼자가지 말고 누군가와 함께 대화를 하거나 소리 나는 종 같은 것을 달고 다니면 도움이 된다. 혹시라도 곰을 정면에서 만나게 되면 절대 뒤돌아서면 안 된다. 등을 보이면 곰은 싸우자는 줄 안다. 뒷걸음질로 천천히 곰으로부터 멀어져야 한다.. 등등..


그리고 가끔 지역 신문에, 휴일 아침에 일어나서 아래층으로 내려갔더니 유리문 높이만 한 키의 곰이 집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며 독자가 제보한 사진이 일면에 실리고, 어느 레스토랑 뒷문 근처에서 음식 냄새에 홀려 방황하는 가출한 새끼곰의 목덜미를 난짝 들어 올리며 웃는 경찰의 사진이나 혹은 누구 집 주방에 놓아둔 파이를 곰이 들어와서 먹어치우고 갔다는 등의 기사가 났다. 산에서 곰의 공격을 받았다는 기사도 한 두 번밖에 보지 못했지만 특히 도시 근처에선 거의 일어나지 않는 일이다  하지만 모두들 곰의 위력을 잘 알기에 별 대책은 없지만 마음으로 늘 '조심'한다. 곰이 얼마나 두려운 존재인지를 우회적으로 표현한 농담이 있는데 곰을 만났을 때의 대처법에 관한 것이다.


If it's black, fight back.

If it's brown, lay down.

If it's white, good night


검은색(black bear)을 만나면 한 번 싸워보고, 갈색(grizzly bear)을 만나면 바로 드러누워 죽은 척하고, 흰색(Polar bear)을 만나면 그냥 죽기 전에 인사나 하라는 뜻이다. 물론 절대로 따라 하면 안 된다. 특히 그리즐리 베어를 만났을 때 누워서 죽은척하면 안 된다는 충고가 따라붙는 농담이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이솝 우화의 '곰과 두 친구'를 그저 지어진 이야기라기보다 곰을 만났을 때의 대처법으로 오해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코카콜라의 광고로 익숙해져서 순백의 예쁜 외모와 더불어 순하고 다정한 이미지를 남긴 북극곰이 사실은 곰 중에서 가장 사납다고 한다.   


지금은 고층콘도에 살지만 이전에 개인 주택에서 오래 살았는데 그때 서너 번쯤 가까이에서 곰을 본 적이 있다. 처음 본 건 이십여 년쯤 전이다. 연어가 올라오는 코퀴틀람 리버와 긴 트레일을 낀 숲이 바로 옆에 있는 오래된 동네였다. 숲에서 다섯 번째 집이 우리 집이었다. 그 해 추수감사절 전날이었다. '땡스기빙 디너'를 위해 터키를 구웠고, 저녁식사가 끝난 후 남은 터키의 살을 발라 냉장고와 냉동실에 나눠서 보관하면서, 이제 날마다 도시락이 터키 샌드위치가 되는 시즌이 왔다는 농담을 했던 것 같다. 꽤 부피가 큰 터키 뼈는 봉지에 꽁꽁 싸서 쓰레기통에 버렸다. 지금은 개인 주택도 시에서 일괄적으로 제공하는 잠금고리가 있는 철재 쓰레기통을 쓰지만 그때는 잠금고리 없이 커다랗고 둥근 뚜껑을 닫는 플라스틱 쓰레기통이 일반적이었다.


꽤 긴 저녁식사였고 잠자리에 들 때까지 기분 좋은 포만감으로 노곤했다. 아이들 방에서 차례대로 '굿나잇' 인사가 들려오고 나도 대답하며 막 자려고 하는데 갑자기 밖에서 우당탕탕 요란한 소리가 났다. 순간적으로 아드레날린이 치솟는다. 뭐지? 무슨 소리지? 분명 예사롭지 않은 소리였다. 벌떡 일어나 복도로 나가니 아이들도 이미 나와있었다. 벌써 계단을 뛰어 내려가고 있는 남편을 따라서 모두들 후다닥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겁도 없이 밖으로 나가서 살피려는 남편을 말리며 소리가 나는 쪽을 짐작해 보았다. 부엌창 아래에서 나는 소리였다. 발소리를 죽이며 창문 쪽으로 가서 블라인드를 살짝 걷고 밖을 내다보면서 나도 모르게 헉, 소리를 냈다. 속으론 으악~ 비명을 지르고 싶은데 입 밖으로 나온 소리는 진짜 삼키듯 뱉는 헉..이었다.


곰... 곰이다!


그때 살던 집은 좀 오래된 집이라서 문이 있는 차고가 아니라, 집과 연결되긴 했지만 벽과 지붕만 있는 카폿이었고 오른쪽 벽의 1/3정도는 뚫려서 뒷마당으로 가는 길과 연결되었는데 거기에 쓰레기통을 놓아두었다, 그런데 그 쓰레기통이 부엌창과 주차한 자동차 사이에 널브러져 있었다.


곰은 한 마리도 아니고 무려 세 마리였다. 엄마곰과 아가곰 두 마리,라고 말하면 무지 귀엽게 들려서 '곰 세 마리가 한 집에 살아...'라는 동요를 바로 떠올릴지 모르지만, 절대 그런 분위기가 아니다. 파헤쳐진 큰 쓰레기통은 나뒹굴고 있었고, 터키뼈를 공략하고 있는 아가곰들도 상상보다는 훨씬 컸을 뿐만 아니라 그 옆에 버티고 서 있는 엄마곰은 그야말로 첫눈에 사람을 얼어붙게 하는 압도적인 덩치와 포스를 지니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바닥에 철퍼덕 앉아있는 새끼곰의 엉덩이가 귀엽단 생각을 하다가 퍼뜩, 지금 이럴 때가 아니라는 자각을 했다. 세 마리나 되니 실수로 부딪치기만 해도 세워둔 차를 망가뜨릴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고 무엇보다도 그럴리는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곰발바닥 한 방이면 날아갈 것 같은 나무와 유리로 된 현관문도 신경이 쓰여서 쫓긴 쫓아야 할 것 같았다. 어떡하지..


문득 아이들 학교에서 온 안내문에서 읽은 내용이 떠올랐다. 곰은 시끄러운 걸 싫어한댔지! 어쩌자고 야구망방이를 찾아들고 있는지 모를 남편에게 얼른 자동차 리모컨을 가져오라고 했다. 리모컨을 계속 반복적으로 눌렀다. 문이 잠길 때마다 내는 소리는, 곰만 아니라면 그지없이 조용할 어둠을 갈랐다. 시끄러운 소리가 계속 나자 어미곰이 슬슬 움직이기 시작했고 새끼곰들도 따라갔다. 정말 무서웠는데도 식구들 모두 약속이나 한 듯 쏜살같이 거실을 가로질러 앞마당으로 난 창문 쪽으로 뛰어갔다. 길고 좁은 창이 여러 개 있는 긴 벽이었는데 마치 누가 지시라도 한 것처럼 각각 창을 하나씩 차지하고 서서 행여나 곰 하고 눈이 마주쳐서 화나게 만들까 봐 블라인드를 활짝 올리지도 못하고 틈새로 천천히 사라지는 곰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새끼 곰들은 보이지 않았고 큰길 한가운데를 직립보행으로 휘적휘적 걷고 있는 어미곰의 포스는 지금도 눈에 선하다.


우리는 그저 와우.. 와.. 소리만 반복했다. 곰은 이미 멀어졌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목소리를 낮추고 상기된 서로의 얼굴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와우... 그러니까 곰을 만나면, 아니 실제로 먼발치에서나마 보게 되면, 할 수 있는 말은 딱 두 마디다. 처음엔 헉, 나중엔 와우!


그때부터 지금까지, 동물로 인해 그렇게 놀랐던 적은 없었다. 아침이 되어서야 밖으로 나가 쓰레기통을 치우면서. 궁리 끝에 집에 있던 '번지 코드 bungee cord'를 가져다 쓰레기통의 양쪽 손잡이를 걸어서 뚜껑을 가로지르는 자물쇠를 만들었다. 그 집에서 10년을 살았는데 곰이 우리 집에 온 건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리고 포트무디라는 옆 도시로 이사 온 후에 집 앞의 드라이브 웨이에서 두 번인가 더 곰을 보았고, 대낮에 강아지를 산책시키다가 멀리로 지나가는 어린 곰을 본 적도 있다.



환절기마다 감기 조심하라는 말처럼 곰을 조심하라는 말이 일상 속에 있다 보니 곰을 친근하게 여기는 편이지만 곰이 화가 나면 발바닥의 일격으로도 사람을 해칠 수 있다는 걸 알기엔 경외심 비슷한 두려움도 늘 함께 있다. 혹시라도 내가 곰을 정면으로 만나는 불운을 피할 수 없게 되었을 때, 그 곰이 배가 고프지 않길 바랄 뿐이다. 나는 배고픔을 극복하기 위한 수단이 아닌 사냥을 극도로 싫어하지만 캐나다에는 곰사냥이 합법적이다. 그 많은 연어도 개인이 하는 연어잡이는 네이티브 인디언을 제외하면 라이센스를 사고 한정된 수량만 잡을 수 있는 것처럼 곰도 물론 라이센스가 필요하고 수량도 제한한다. 어느 해인가는 곰의 개체수가 너무 늘어서 한시적으로 수량을 늘렸다는 뉴스를 본 적도 있다.


사실 곰은 두려움보다는 친근한 동물이다. 아마 실물을 쉽게 볼 수 없으니 위력을 실감하지 못하는데다가 어릴 때부터 '테디 베어' 인형이나 동화 속의 귀여운 곰 그림과 이야기를 자주 대해서 그럴 것이다. 나도 아이들이 태어났을 때 작은 곰인형을 사주었고 처음으로 좋아한 인형이라서 아직도 보관하고 있다. 그리고 '테디 베어' 이외에 친근한 곰을 또 꼽으라면 아마 디즈니 애니메이션인 '위니 더 푸Winnie the pooh'에 나오는 '위니'일 것이다. 디즈니의 푸는 연한 주황색이지만 원작인 동화에서는 '블랙베어'다. 위에서 말한 농담으로 치자면 그나마 가장 순한 곰이다. '위니'라는 이름은 책의 모델이 된 곰이 캐나다 매니토바 주의 '위니펙'이란 도시 출신이기 때문에  디즈니에서 '위니'라는 이름을 주었다. 하지만 '위니 더 푸'의 본명은 '에드워드'다.


그리고 뺄 수 없는 또 한 마리의 곰, 색깔로만 보면 사납다는 그리즐리 베어지만 표정은 천상 순한 우리 집 '미남이'다. 어릴 때부터 유난히 인형을 좋아하던 작은 아이는, 열 서너살 무렵까지도 사람 크기만 한 곰인형을 너무 갖고 싶어 했다. 꽤 비싸기도 했고, 그 큰 덩치의 솜뭉치를 빨아 말리는 상상을 하며 계속 미루고 사주지 않았는데 친구들과 쇼핑몰에 간 어느 날 전화가 왔다. 자기가 갖고 싶던 곰인형이 70%나 세일하는 걸 발견했는데 용돈을 다 털어서 무조건 사 갈 거라는 경고성 허락을 원하는 전화였다.


한 시간쯤 후에 문을 열기도 전에 엄마~ 를 외치며 행복한 얼굴로 들어오는 아이의 등에는 아이보다 더 큰 갈색곰인형이 업혀 있었다. 두 팔을 아이의 목에 감고도 발이 땅에 끌릴락 말락 했다. 집안의 식물과 자동차에 까지 이름을 지어주던 아이는 이 곰인형을 '미남이'라고 불렀다. 잘 생겼잖아. 짐작건대 아마 당시의 이상형이 '곰돌이처럼 생긴 남자'였나 보다. 지금은 거의 반대로 바뀌었다. 얘야, 곰돌이 상이라도 좋으니 그 '딸의 남자 친구'라는 걸 구경이라도 해봤으면 좋겠다. 안 본 지 너무 오래됐잖아.


미남이와 유키의 다정한 한 때


그때 우리 집엔 '유키'라는 아주 작은 말티푸가 있었다. 아이를 유난히 따랐던 우리 집 첫 강아지다. 아이와 유키는 함께 자라 선 지 정도 유별났는데 미남이를 두고도 서로 마음이 통해서 유키도 미남이를 좋아했다. 앉아있는 미남이 주변을 돌며 발을 살짝 물기도 하고 냄새도 맡으며 혼자서도 잘 놀았다. 어느 날 아이가 학교에서 가는 여행으로 2박 3일 동안 집을 비웠을 때는 아이의 침대에 얹어놓은 미남이의 품에 들어가 잠을 자고 있는 걸 발견하기도 했다. 잔망스러우면서도 어찌나 귀엽고 예쁘던지.. (아직도 보고 싶고 마음을 아프게 하는 유키..) 미남이는 또 그런 유키를 그윽하게 내려다보며 보호하는 것처럼 보여서 이건 뭐지.. 하며 과잉감정이입을 하는 내가 웃기면서도 뭉클했었다.


세탁기에서 목욕후 다시 일광욕하는 미남이.. 털이 더 진해지는 것 같아.. ㅎ


이젠 미남이도 유키도 없다. 미남이를 말리며 일광욕을 시켜주고, 똑똑한 유키가 이사오자마자 지가 알아서 포르르 뛰어나가 볼일을 보던 키 큰 가문비나무 그늘의 뒷마당도 없다. 아이는 이제 인형을 탐하지 않는 어른이 되었고, 우리는 하루가 다르게 스카이 라인이 변하는 대도시의 콘도에 산다. 많은 것들이 변하는 중이고, 사라지는 것들이 미처 잊히기도 전에 새로운 것들이 밀려와 익숙해지길 재촉하는 세상이지만,


여전히 이 도시에는 이 산다.


발달된 도시보다는 자연 친화적인 취향인탓인지 자주 만나지는 않지만 이 도시 어딘가에 곰이 살고 있고, 가끔은 우리의 일상에 즐거운 실금을 내기도 한다는 게 자랑스럽다. 곰의 존재로 인해 내 삶의 터전이 한결 바람직한 곳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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