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하루 남았다 _ 치열한 새벽산책
긴 겨울 우기가 끝나고 찾아오는 밴쿠버의 햇살은 매번 감탄스러울 만큼 투명하고 싱그럽다.
남향으로 난 넓은 창으로 길게 들던 햇볕이 천천히 더 북쪽으로 걸음을 옮기면 안으로 드는 햇살은 꼬리가 짧아지고, 볕이 줄어든 집안은 새 계절에 조금 더 맞춤해진다. 여름이 오는 중이다, 순도 높은 햇살과 결이 보드라워진 바람이 종일토록 거리를 쏘다니면 도시 안팎으로 갖가지 색들이 자라고, 밤 열 시가 되어도 하늘엔 여전히 푸른 기운이 가득하다.
오래 전 한 지인에게서, 지금껏 밴쿠버에 사는 사람들 중에서 우기에 대해 불평하지 않는 사람은 처음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여전히 나는 수생식물처럼 비가 오면 안온함을 느끼지만 봄과 여름의 교차점에서 만나는 이 뽀송하고 달큰한 계절은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조석으론 아직 꽤 쌀쌀하지만 헌터와의 새벽 산책에서 돌아오면 집안의 모든 유리문을 연다. 맑고 찬 아침 공기가 밤새 뭉근하게 데워졌던 집안 구석구석을 깨운다. 낮은 걸음으로 들어서는 아침 바람이, 마음벽의 잔주름을 하나하나 쓰다듬는다. 까실하던 표피가 이내 맨질맨질해진다.
수십 년을 야행성 인간으로 살아온 나를 아침형 인간으로 변화시키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우리 집 시고르자브종께서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바로 발코니로 나가 자기 자리에 조신하게 앉아 나를 기다린다. 아침 산책의 마무리는 발코니에서 털을 빗는 것이기 때문이다. 발바닥은 한바탕 술래잡기를 해야 닦게 해 주면서 털 빗는 건 너무 좋은지 빙구미의 극치를 이루는 표정에다 반사신경마저 작동해서 한쪽 다리를 들고 그야말로 개다리 춤까지 춘다.
이번 주 내내 전쟁 같은 새벽이었다. 동거인이 일본에 간지 8일째다. 그래서 그저 따라다니기만 했던 새벽 산책이 온전히 내 몫이 되었기 때문이다. 함께 산책을 한다해도 헌터처럼 큰 개는 하네스 줄을 잡는 사람과 잡지 않는 사람의 차이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힘으로나 걸음 속도로나 턱없이 모자라는 나는 방해요소와 우발적 상황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 날마다 새벽 5시에 집을 나가 한 시간쯤 걷는다.
헌터의 걸음 속도가 빨라서 나는 거의 뛰다시피 하느라 허벅지와 무릎이 비명을 지른다. 그래도 잘 버텼다. 지금 이 순간 가장 감사한 건, 예상과는 달리 그동안 은둔생활을 해 준 청설모다. 만약 우리가 마주쳤다면 나는 하네스 줄을 사수하지 못했을 것이며 그 후의 일은 상상하기도 싫다.
동거인은 내일 돌아온다. '아침 9:30 밴쿠버 공항 도착'이란 문자를 보며 야호!....라고 소리 지를 힘도 없다. 아직 하루나 더 남았잖아.
정체성을 의심해야 하니? 도대체 왜 고양이 장난감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그냥 갖고 노는 게 아니라 거의 사냥 수준이라 잡히면 끝장이다. 생쥐 여러 마리 보내드리고 찾은 리본이 달린 고양이 장난감, 이건 아직 무사하다. 어느 날 놀다가 머리 위에 얹혀졌는데 그대로 얼음 땡! 사진 찍으라고 봐주는 거야? 그런데 이 아련한 눈빛은 또 뭔데? ㅎ
이 사진을 볼때마다 알아듣지도 못하는 녀석을 놀리며 우리끼리 웃는다.
Do you feel... Bonita?
패밀리 가이Family Guy'라는 티비쇼에 나오는 대사인데 '보니따'는 아름다운 여자라는 뜻이지만 이 문장은 남자가 여자처럼 예쁘게 꾸몄을때 하는 농담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