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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서 May 29. 2024

고흐의 부치지 않은 편지

빈센트Vincent _ 던 맥클레인Don Mclean


빈센트 반 고흐에 관한 영화 중에 '러빙 빈센트 Loving Vancent(2017)'라는 영화가 있다. 영국, 폴란드 합작의 애니메이션 독립영화인데, 백여 명의 화가들이 10년에 걸쳐 고흐의 화풍을 그대로 재현하며 그린 세계 최초의 유화 장편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에서 개봉 전부터 주목을 받았다.


영화의 내용은 고흐가 죽은 지 1년 후에 집배원 룰랑의 아들 아르망이 아버지의 부탁으로 고흐의 마지막 편지를 테오에게 전해주는 과정에서 고흐의 죽음이 타살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품으면서 전개되는 영화다. 영화에서는 평소에 고흐를 싫어하며 괴롭혔던 동네의 아이들 중 한 명이 총을 쏘았고 치명상이 아니었음에도 테오에게 더 이상 부담을 주기 싫어서 치료를 거부했다는 닥터가쉐의 증언으로 끝나면서 자살을 숨긴 타살이라는 어정쩡한 결말로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아직도 고흐의 죽음에 대한 논란이 남아있는 이유는 당시의 정황을 자세히 알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신이 지닌 가능성을 다 펼치지도 못하고 요절한 화가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안타까움은 그림과 사람에 대한 그의 열정, 연민 등을 알아갈 수록 더욱 커진다. 이런 그림을 그린 사람이 자살할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아마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도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이 영화 덕분에 오래전에 고흐에 대해서 썼던 글이 떠올라서 파일을 찾아보니 거의 병적인 내 정리벽에도 불구하고 두 개중 하나가 용케도 아직 보관되어 있었다. 2008년 5월 15일에 지금은 사라진 블로그에 올린. '반 고흐, 영혼의 편지(신성림 옮김)'라는 책의 리뷰다. 사실은 '빈센트'라는 노래를 올리려고 시작했는데 옛글을 거풍시킬 욕심에 글의 방향이 좀 달라졌다.


살아있는 동안 고흐는 여러사람에게 쓴 수백 통의 편지를 남겼다. 그가 남긴 편지글을 읽다보면 고흐는 문학을 했어도 좋은 작품을 남겼을거란 생각이 든다. 이 책은 고흐가 죽고 6개월 후에 동생 테오까지 죽은 후, 테오의 아내인 요한나가 고흐가 테오에게 보낸 편지(663통)를 정리해서 발간한 책의 번역본이다. 요한나는 홀로 아이를 키우면서도 죽기 직전까지 자신에게 남겨진 고흐의 그림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전시회를 여는 등 많은 노력을 했고 또한 고흐의 편지를 영문으로 번역하는 작업까지 했다. 고흐가 '아몬드꽃이 핀 가지'를 그려서 출생을 축하해 주었던 테오와 요한나의 아들은 나중에 고흐의 그림들을 네덜란드 정부에 기증해서 1973년에 '반 고흐 미술관'이 세워졌다.


'러빙 빈센트'에서는 고흐의 죽음이 타살일지도 모른다는 주장으로 시작했지만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고흐가 자살한 이유를 내 나름대로 정리했었다. 고흐의 마지막 편지라고 알려진, 그가 사망할 당시 지니고 있었던 편지는 사실 마지막 편지가 아니라 테오가 받았던 마지막 편지 이전에 쓰인 것으로 추측한다. 두 편지의 첫 부분의 내용이 거의 같은 것으로 보면, 아마도 고흐는 자신이 간직하고 있던 편지를 먼저 쓰다가 보내기에 적절하지 않다 생각해서 끝내지 않고 바로 다시 편지를 쓴 것 같다. 고흐가 테오에게 부쳤던 편지는 이렇게 시작한다.(요약)

 


테오에게.

편지와 동봉한 50프랑의 수표 고맙게 받았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그럴 마음이 사라져 버렸다.

그렇게 해 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은 온통 그림에 대한 생각만 하지만

화가들이 점점 더 궁지에 몰리는 느낌이다....

화가공동체는 끝내 불가능한 건가?...

몇몇 화상들의 개인적 노력으로 인상파 화가들의 입지가 나아지진 않을 것 같다....

고갱이 브르타뉴 지방에서 그린 그림은 정말 아름다웠다…

도비니 정원을 소재로 그린 작품을 다시 스케치한 것을 동봉한다.

내가 가장 세심하게 생각해서 그린 작품 중 하나다. (1890.7.24)



죽기 한 달쯤 전인 6월 말에, 직장문제로 심각한 고민에 빠진 테오가 걱정이 된 고흐는 파리로 동생을 찾아갔지만 금전적인 문제로 테오와 다투었다고 한다. 그 후 오베르로 돌아와 그린 그림이 '오베르의 교회'와 '까마귀가 나는 밀밭'이다. 7월 29일 고흐가 사망할 당시 지니고 있던 편지의 내용은 테오가 받은 마지막 편지와는 내용이 조금 다르다.



테오에게.

다정한 편지, 그리고 50프랑 고맙게 잘 받았다.

네게 하고 싶은 말이 아주 많지만 다 쓸데없는 일이라는 느낌이 드는구나.

그 사람들이 네게 호의적이기를 바란다...

늘 내가 말해왔고 다시 한번 말하건대,

나는 네가 단순한 화상이 아니라고 생각해 왔다.

너는 나를 통해서 직접 그림을 제작하는 일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최악의 상황에도 그 그림들은 남아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처한 위기 상황에서 너에게 말할 수 있는 건,

죽은 화가의 그림을 파는 화상과

살아 있는 화가의 그림을 파는 화상 사이에는 아주 긴장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 내 그림들. 그것을 위해 난 내 생명을 걸었다.

그로 인해 내 이성은 반쯤 망가져버렸지.

그런 건 좋다.

하지만 내가 아는 한 너는 사람을 사고파는 장사꾼이 아니다.


 

[죽은 화가의 그림을 파는 화상과 살아 있는 화가의 그림을 파는 화상 사이에는 아주 긴장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이다.] 이 문장에서 멈칫, 한다. 올바른 가치관을 지닌 화상이라면 그림 값이 높은 죽은 화가들의 그림을 파는 일보다는 지금 가난과 싸우면서도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의 그림을 팔아주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말일수도 있지만 한편으론 자신의 자살에 관한 암시처럼 읽히기도 했다. 이제 막 호평을 받기 시작했지만 아직 그림이 잘 팔리지 않는 요절한 화가가 됨으로써 자신의 그림을 보관하고 있는 동생에게 물질적인 보답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건 아닐까.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 당시에도 살아있는 동안 자신의 그림을 팔아서 큰돈을 버는 화가들은 흔치 않았다. 더구나 고흐는 제대로 그림을 배운 적도 없고, 좋은 가문 출신도 아니니 어떤 형태로든 든든한 배경이 없었고 오직 끊임없는 습작을 통한 독학으로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화가였다. 지독하게 가난했고, 동생을 사랑하고 고마워하면서도 늘 마음의 짐이 컸다. 설령 이것이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유일한 이유는 아니라 하더라도 그가 남긴 편지들을 읽고, 까마귀 떼가 나는 바람 부는 밀밭에 앉아있는 그를 상상하다 보면 불현듯 그의 죽음은 스스로 불러온 것이란 생각이 드는 것이다. 마지막 편지 이외에도 동생에게 경제적 부담을 주는 것을 무척 괴로워했다는 것을 다른 편지의 내용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

편지와 돈 고맙게 받았다. 설령 성공을 거두더라도 그림을 그리는 데 든 돈을 고스란히 되찾지 못할 거라 생각하면 우울해진다.

*

그림 한 점을 완성해서 돌아온 날이면, 이런 식으로 매일 계속하면 잘 될 거라고 혼자 중얼거리곤 한다. 반대로 아무런 성과 없이 빈손으로 돌아와서는 그래도 먹고 자고 돈을 쓰는 날이면 나 자신이 못마땅하고 미치놈이나 형편없는 망나니, 혹은 빌어먹을 영감탱이 같다는 생각이 든다.

*

이따금 그림이 아무리 돈을 들여도 결코 만족시킬 수 없는 정부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래서 혹시라도 그럭저럭 쓸만한 그림이 나온다면 다른 걸 더 많이 살 수 있을 거라고 혼자 중얼대다 보면 가슴이 몹시 아프다.

*

너는 내가 보내는 그림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또 그것이 너에게 진 빚을 갚아주는 것으로 받아들인다고 했지. 그러나 나로서는 너에게 1만 프랑 정도를 가져다줄 수 있게 되는 날이 와야만 마음이 편해질 것 같다.

*

나를 먹여 살리느라 너는 늘 가난하게 지냈겠지.

네가 보내준 돈은 꼭 갚겠다.

안 되면

내 영혼을 주겠다.



그의 그림을 보고 편지글을 읽으면서 내가 느낀 고흐는 누구보다도 삶에 대한 의욕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고흐에게 그림은 이상이나 꿈이 아니라 일상이자 삶, 그 자체였지만 세상이 만들어 놓은 구조속에서는 너무나 막막한 길이었기 때문에 서서히 무너졌을 것이다. 그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생동감과 소재에서 전해오는 삶에 대한 깊고 진지한 탐색은 그가 얼마나 치열한 열정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었는지를 가늠하게 한다. 관념적인 그림을 그리기보다 보고 느끼는 정직한 아름다움과 삶의 부피를 고스란히 표현하고 싶어 했던 고흐, 그런 그가 자살을 했다면 그건 분명 현실도피의 수단은 아니었을 것 같아서, 영혼이라도 주고 싶었던 테오를 위한 죽음은 아니었을까, 슬픈 추측을 했었다.


붉은 포도밭_1888년_유화_73x91cm

 

고흐는 살아있는 동안 드로잉과 스케치를 포함하면 2,000여 점의 그림을 그렸지만 '센트'숙부의 주문으로 헤이그의 풍경을 스케치한 20점의 드로잉을 20길더에 판 것과 붉은 포도밭이란 단 한 점의 유화를 400프랑에 판 것이 전부다. 자신을 위해서는 그림을 통한 어떤 정점에 이르고 싶은 열망뿐이었을지 모르지만 동생 테오가 자신의 그림으로 돈을 벌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끝내 그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고흐도 그의 지극한 조력자였던 동생 테오도 세상을 떠난 지금, 쉽게 가늠하기도 힘든 숫자의 그의 그림값이 어이없고 부당하단 생각마저 드는 건, 비단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아무리 독립된 높은 정신과 예술을 갈망하며 살아간다 해도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우리는, 몸을 움직여 일을 하고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생활을 꾸려나가야 할 책임이 있다. 어쩌면 인간은 이 팍팍한 삶의 질서로 인해 자연의 생명체중에서 가장 독특하고 끝내 가장 아름다울 수밖에 없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 누구보다도 이것을 잘 알았고, 지난한 삶 속에 숨어있는 인간적인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표현할 줄 알았던 고흐에게 예술적 성취감과는 상관없이 경제적으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에서 느끼는 생활인으로서의 고통은 남달랐을 것이다. 그로 인해 37살이란 젊은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지만 고흐의 그림 속에는, 그가 지녔던 삶에 대한 치열한 경외심이 생생하게 살아있어서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그의 그림을 사랑하는 것이리라.



몇 년 전에 대부분의 책을 정리하면서도 남겨둔 그에 관한 책이 아직 한 권 있다. 고흐의 편지글과 평론등이 함께 실린 화집이다. 오랜만에 다시 꺼내본다. 세월이 가도 변함없는 것들을 세월이 흘러 변한 내가 다시 만나는 기분이다.


그림으로 글로, 그의 쓰디쓴 고통의 열매를 달게 맛볼 때면 미안한 생각마저 들기도 하지만 어쩌면 결국 그가 원했던 것이 이런 것이리란 합리화로 염치없게 위로받는다. 이 노래를 들을 때도 같은 마음이 된다. 그의 삶과 그림을 향한 사랑이 고스란히 전해져서 눈은 금세 촉촉해지지만 동시에 오래도록 미소 짓게 되는 아름다운 노래다. 리메이크한 가수들이 여러 명 있지만 그래도 오리지널인 '던 매클레인Don Mclean'이 부르는 '빈센트Vincent'가 가장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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