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 _ Dunkirk Ave. Coquitlam
연둣빛 이파리에 도톰하게 살이 오르더니
계절은 날마다 자라서 라일락 꽃 피는 오월이 되고
아득한 향기에 갇힌 바람은 풀밭에 주저앉는다.
비는 오지 않고 흐리기만 했던 날의
저녁은,
조금 무겁다.
담장을 넘지 못하는 바람처럼 서성대는 꽃향기는
삶의 어디쯤에 두고 온 추억을 닮았다.
잡히지도 않고 가늠할 수도 없는 마음처럼
이토록 아련해서 오히려 찬사를 아낀다.
그저,
그윽한 향기 속에 서서
일부러 무심하게 툭,
한 마디 떨어뜨린다.
참 좋다.
오월의 길어진 해는 흐린 날에도 오래도록 풍경을 빚어내지만 저녁 바람은 아직 차다. 벗었던 카디건을 다시 껴입으며 조금 식은 차를 마신다. 도망치듯 달아나던 하루도 라일락 그늘 아래에 눕는다. 아쉬워 뒤돌아보면서도 결국은 떠났던 것들이 더는 그리움이 되지 못하는 계절,
올해도 라일락이 피었다.
아침산책을 하다 올해 첫 라일락을 만났다. 라일락은 수형보다 향기로 먼저 존재감을 드러내는 나무다. 그래서 늘 라일락에 대한 글을 쓸 때면 그냥 라일락이라고 쓰다가도 라일락'꽃'이라고 나를 설레게 하는 향기의 근원을 밝혀야 할지 망설이며 몇 번을 고쳐 쓰기도 한다.
좋아하는 정원수인데도 내 집 마당 안에서 키워 본 적은 없고 대부분 길을 걷다가 문득, 주변의 공기가 아득해서 걸음을 멈추면 라일락꽃이 보였다. 그래서 내게 라일락의 꽃말은 첫사랑이나 추억이 아니라 내 맘대로 지은 '뜻밖의 위로'다.
그렇다고 라일락이 향기가 선명한 꽃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꽃은 아니다. 아직 겨울인 줄 알았는데 문득 찾아오는 '히아신스', 여름밤 산책길에 만나는 '허니 서클', 여고생일 때 자주 사던 '프리지어', 피천득의 인연을 떠올리게 하는 '스윗피'의 향을 더 좋아하지만, 라일락꽃 향기를 맡으면 후각보다는 감성이 먼저 반응하고 잊고 살았던 한 시절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등 뒤에 선다.
해마다 오월의 라일락을 만나면 바로 흥얼거리게 되는 노래처럼 '라일락 꽃향기 맡으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라일락 나무 세 그루가 있다. 집을 사서 이사할 때까지 렌트로 꼬박 10년을 살았던 옛집의 오월은, 라일락 향기가 가득했다. 하지만 그 라일락 세 그루는 우리 집 마당에서 자라는 나무가 아니었다. 내 키보다 조금 높은 나무 담장을 사이에 두고 나눠져 있는 뒷집의 정원에서 자라는 나무였다.
뒷집의 라일락은 넓은 정원 맨 안쪽에 있어서 정작 주인은 가까이 가는 일이 드물고 가끔 바람결에 실려오는 향기만으로 존재감을 확인하는 나무였다. 하지만 우리집 쪽 담장 아래는 바로 잔디밭이었다. 라일락은 가지가 휘도록 만개한 보랏빛 꽃을 등처럼 매달고 담장을 넘어왔다. 라일락 이파리의 맨 얼굴이 꽃만큼 사랑스럽다는 것도 이때 알았다.
패밀리 룸에 편하게 앉아서 라일락이 만든 풍경을 유리문을 통해 내다보는 것만으로도 호사스러운데 뒷마당으로 나서면 꽃도 잎도 향기도 모두 내 감탄사와 섞여 문장이 되었다. 이상하게도 일터에서 유난히 힘들었던 날에는 라일락 향기를 맡으면 신발이 벗고 싶었다. 마치 흥에 겨워 난입한 관객처럼 맨발로 잔디밭을 돌아다니다 라일락 꽃그늘 아래에 서면 발바닥이 조금 넓어졌다. 까칠했던 하루가 라일락 꽃향기로 위로 받으며 맨질맨질해진다. 라일락에게 아무 것도 해 준게 없이 받기만 해서 미안했지만, 오월이었으므로 나는 고마움만 기억하기로 한다.
어느 해인가, 담장 아래를 낮은 포복으로 통과해 우리 집 쪽으로 줄기 하나가 뻗어 나왔다. 해를 거듭하며 줄기는 흡사 어린 나무처럼 자라기 시작하더니 제법 실한 꽃송이까지 매달아 나를 우쭐하게 했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원래부터 내 땅을 딛고 당당하게 서 있던 나무의 곁가지로 자라며 내내 나무가 되는 꿈을 꾸다가, 더 자라지 않는 발돋움에 한 여름쯤 슬퍼하며 측은한 꿈을 땅속에 묻었을 것이다. 하지만 속이 무른 흙들이 그 소망이 측은해서 어느 포근한 봄밤, 여린 가지를 밀어 올려 한적한 우리 마당 쪽으로 보내 주었을 것이다. 그렇게 내게 왔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닮은 얼굴이었을 것이다.
나의 라일락은 여전히 옛집에 머물지만, 해마다 오월이면 찾아와 안부를 묻는다. 민망하게도 꽃향기 그윽했던 먼 오월의 어느 저녁이 아직도 유효한 위로가 되면, 나도 잊었던 노래를 다시 부른다.
가로수 그늘아래에 서면 _ 이문세, 이영훈
라일락에 관한 노래는 아닌데 라일락 향기를 만날 때마다 바로 흥얼거리는 노래다.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면서 가수보다 만든 사람을 먼저 떠올리는 경우가 그리 흔하진 않은데 이문세의 노래를 들을 때면 늘 이 노래를 만드신 이영훈이 더 진하게 떠오른다. 안타까운 나이에 돌아가시기도 했지만 마지막으로 알려진 모습이 병과 가난으로 남아서 더욱 그런 것 같다. 봄의 왈츠처럼 풋풋하고 두근거리는 이야기를 시작할 것 같던 전주가 갑자기 슬픔의 언저리에 닿은 듯 시나브로 사라지며 시작되는 첫 소절, '라일락 꽃향기 맡으면...' 순식간에 마음은 추억을 더듬고 세상은 텅 빈 듯 향기로운 오월이다. 그가 만든 노래들은 어쩌면 그리도 한 곡도 빠짐없이 그토록 좋은지... 우리가 사랑했던 것들... 내가 사랑한, 그대는 아나... 때로, 슬픔은 아름다움과 동의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