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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풍경 여행 15화

세계에서 가장 높은 Arch

The Gateway Arch @ St. Louis. Missouri

by 윤서



며칠 전에 인스타에서 누군가 올린 사진을 보면서 생각이 났습니다. 2006년이니 정말 오래되었네요. 이민 온 지 9년째,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일 년쯤 쉬고 있던 때라서 가끔 가족여행을 다니긴 했지만 여행지로는 계획에 없는 곳이었지요. 그래도 누군가 '보고싶다'며 자기가 사는 곳으로 와달라고 자꾸 타전을 보내면 가야지요. 그래서 '세인트 루이스'에 대한 정보는 전혀 없이 여행이라기보다는 '친지 방문'의 목적으로 떠났습니다.


중간에 미네아폴리스에서 비행기를 갈아타야 하는 번거로움, 고속버스보다도 못한 미국 국내용 소형 비행기의 흔들림과 소음, 보플이 난 카디건을 입고 승객들과 수다를 떨던 할머니 스튜어디스, 차창밖으로 툭하면 불쑥 나타나던 끝이 안 보이는 옥수수밭과 강한 햇볕, 아침에 현관문을 열면 마치 세상의 매미는 모두 몰려온 것처럼 귀를 먹먹하게 하던 매미 소리, 뜻밖에도 미주리 식물원에서 만난 치훌리(Dale Chihuly)의 유리공예 작품들, 장미 정원에서 정체불명의 벌레에게 쏘여서 손바닥만 한 크기로 빨갛게 부어올랐던 팔, 이탈리안 가족의 비법이라며 만들어준 미트볼 스파게티와 바베큐, 이 정도면 충분하다 생각했는데 돌아오기 전날, 다른 주에서 살고 있는 조카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


센 루이스에 와서 이걸 안 보고 간다고요?'


그래서 또 끌려 나갔습니다. 저는 더위와 에어컨과 매미 울음과 숲이 없는 환경에 지쳐서 거의 쓰러지기 직전이었거든요. 조카가 말한 세인트 루이스의 랜드 마크는 The Gateway Arch였습니다.


우선 압도적인 높이에 놀랐고, 깔끔한 디자인이라 여백이 많은 그림을 보는 느낌도 들었지만 안쪽을 통해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습니다.





역사적으로 '서부의 관문'이었던 세인트 루이스를 상징하는 게이트웨이 아치(The Gateway Arch)는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들어진 높이 630피트(192m)의 조형물입니다.


1935년 12월 21일부터 미연방 정부와 세인트 루이스는 30 밀리언 달러를 공동 투자하여 Jefferson National Expansion Memorial Park을 조성하기 시작했습니다.(홈페이지를 찾아보니 지금은 공원의 이름이 'Gateway Arch National Park'으로 바뀌었네요.) 이는 1803년에서 1890년 사이의 미국 서부 쪽의 성장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죠. '게이트웨이 아치'는 이 공원 입구에 있는 환경 건축물인데 1947년~1948년에 걸쳐서 시행된 디자인 공모에 당선된 작품으로 작가는 핀란드계 미국 건축가 에로 사리넨Eero Saarinen(1920-1961)입니다.


하지만 공모에 당선된 후에 바로 공사를 시작하진 못하고 각 분야의 전문가로 구성된 팀이 예술성과 안정성을 겸비한 건축물이 되도록 설계를 계속 보완하는 과정을 거치다가, 15년 만인 1963년 2월 12일에 공사를 시작해서 1965년 10월 28일에 완성됩니다. 하지만 일반에게 공개된 건, 아치 속의 트램이 완성된 1967년 7월 24일입니다. 안타깝게도 디자인을 한 '에로Eero'는 아치가 완성되기 4년 전에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나서 자신의 디자인이 실현된 것을 보진 못했습니다.




아치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공원을 걷다가 음악 소리가 들려 찾아갔더니 미시시피 강으로 막 떠나는 작은 Riverboat Cruise가 보였습니다. 선상에서 간단한 식사를 즐길 수 있고 결혼식 같은 행사를 하기도 한답니다. 바람결따라 들리는 재즈 연주를 들으며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밴쿠버와는 완전히 다른 환경인 데다 집 떠난 지 여러 날이라 은근히 지쳐있었는데 모처럼 공원 안의 나무 그늘 아래를 걷고, 강바람을 만나니 살 것 같았습니다. 이대로 그냥 있고 싶었지만 혼자 온 여행이 아닌 데다 일부러 여기까지 온 목적이 있으니 아치의 입구로 향합니다.



날이 흐린 데다 워낙 높아서 사진으론 잘 나타나지 않지만 맨 꼭대기의 가운데 부분에 까만 점처럼 보이는 것들이 전망대의 창문입니다. 저 창문을 통해서 세인트 루이스의 시가 전경을 볼 수 있습니다. 아치의 로비에는 공사과정에 대한 기록과 센이트 루이스의 역사를 사진과 글로 설명해 둔 공간이 있어서 미리 둘러보고 트램을 타러 갔습니다.



정상의 전망대로 올라가는 둥근 캡슐처럼 생긴(왼쪽 사진) 트램은 아치의 안쪽을 통과해서 올라가는데 각각 한쪽마다 40칸이며 한 칸에 다섯 사람이 앉을 수 있고 정상까지 대략 5분 정도 걸립니다. 처음에 아이들과 몸을 붙이고 앉았을 때는 재밌기도 하고 마치 뽀얀 배추 속에 들어앉은 것 같았는데, 막상 출발하자 진동이 심하게 느껴져서 조금 무서웠습니다. 올라가는 동안 작은 유리창 너머로 계단(1,076개)이 보였는데 정비할 때와 비상구로만 사용한다고 합니다. 오른쪽 사진은 전망대에 설치되어 있는 표지판으로 여기가 해발 630피트(192미터)라는 걸 알려줍니다. 혼자 여행을 오셨는지 한 남자분이 이 표지판의 글씨가 잘 보이도록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셔서 찍어드린 기억도 나네요.


저는 사실 높은 곳으로 올라오긴 해도 절대로 아래를 내려다보진 못하는 모지리라서 전망대 창문밖의 풍경은 잘 보지 못했지만 그래도 용기를 내 창문으로 조금 다가가서 팔만 쭉 뻗어서 후딱 한 장 찍었습니다. 나중에 사진을 보고 조금 놀랐어요. 세인트 루이스의 시가지 모습인데 나무가 없어선지 어찌나 삭막하고 더워 보이던지...(지금은 좀 달라졌을까요?) 그래도 용케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old courthouse(오른쪽 끝)가 찍혔네요. 제가 살고 있는 도시가 아름다운 자연과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 새삼 깨달으며 고마운 마음이 들더군요. 여행의 의미 중 하나는 당연하게 생각했던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의 장점을 발견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게이트웨이 아치'는 양쪽에서 나란히 시작해서 맨 꼭대기에서 서로 만나는 방식의 건축물인데 2mm 정도의 오차가 있다고 합니다. 사소하다고도 할 수 있는 2mm라는 수치는 지상 192m 위에서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지만 반대로 그 정도의 오차밖에 나지 않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노력을 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시속 20마일 정도의 바람이 불면 0,5~1인치 정도 흔들리는데 최고 46센티미터까지 흔들려도 안전하다고 합니다. 기분 탓인지 정상의 전망대에 올랐을 때 실제로 미동을 느낀 순간이 있습니다.



표면은 스테인리스로 만든 구조물이지만 가까이서 들여다보고 만져 본 느낌은 재질 특유를 차가움 보다는 뭔가 든든하고 따뜻한 침묵이 느껴졌습니다. 아마 오랜 시간 동안 이 조형물에 정성과 시간을 쏟은 사람들의 꿈의 결과물이라서 그렇겠지요. 이런 종류의 조형물을 만나면 늘 한 번쯤 드는 생각은, 적지 않은 돈(1965년 당시 1.3밀리언 달러)을 들여 이런 구조물을 세우는 게 과연 가치 있는 일일까?입니다. 그 돈을 보다 실질적인 방법으로 인간의 삶을 도와주는 데 쓰는 게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은 거죠. 하지만 한 도시의 관광 자원이나 일자리 창출이란 의미를 빼고라도 인간은 배만 부르면 살 수 있는 동물이 아니므로 예술이라 부르는 행위를 멈추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뜨거운 여름 햇볕 속에 당당하면서도 고요하게 서 있는 게이트웨이 아치 The Gateway Arch를 마지막으로 다시 바라보면서, 어쩌면 저는 인간의 모험과 꿈을 떠올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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