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서 Jul 16. 2022

국수 한 그릇 먹고 싶은 날

국수에 관한 추억들




몇 달 동안 계속되던 겨울 우기(雨期)가 끝났다는 신호는, 알람 소리에 잠이 깨는 아침마다 어둑하던 방 안이 환해진 것으로 시작됐다. 보송해진 바람에 업혀 자라던 햇살은, 어느새 포실포실 여물어서 오랜만에 나가 본 뒷마당은 달큰했다.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긴 우기의 기억은 슬그머니 사라지고 늘 이렇게 화사한 날씨가 계속되는 곳에서 살고 있다는 착각마저 들게 하더니 오랜만에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


이제는 비가 와도 기온이 내려가거나 여린 꽃잎이 상하진 않지만 집안은 마치 필터를 갈아 끼운 듯 금세 어둑해진다. 밝은 햇살은 그것대로 언제든 반갑고 좋지만 그래도 이 옅은 회색의 조도가 익숙하고 다정하다. 하지만 날이 궂으면 어깨에 내려앉는 무지근한 통증을 무시할 수가 없다. 해도, 나는 아직 비 오는 날이 좋다.


메이플 시럽과 레몬 두 조각을 넣은 뜨거운 홍차를 홀짝거리며 창가에 앉는다. 뒷마당이 끝나는 담장 옆에 서 있는 '로도덴드론(Rhododendron)' 두 그루는 이 정도의 비는 아랑곳없다는 듯 붉고 연한 꽃을 뭉클뭉클 피워내며 앞장서서 계절을 끌고 간다. 빗속에서도 가뿐하게 부푸는 꽃들을 보고 있자니 마음마저 점령당한 무거운 몸은 은근히 주눅이 든다. 나는 근육통을 털어내기 위해 스트레칭을 하듯 팔을 뻗어 전화기를 든다.


월남국수 먹으러 갈래?


일 년의 절반 정도가 '우기'인 곳에 살면서도 비 오는 날엔 유난히 국수 한 그릇이 생각난다고 말하면 이상하게 들릴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국수가 먹고 싶은 날에 내리는 비는 마음에 내리는 비라고 불러도 좋겠다. 국수를 그리 즐기는 편이 아니라서 그랬는지 국수를 끓이거나 누군가와 국숫집에서 만날 약속을 한 적이 많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국수를 찾아 먹는 건, 맛보다는 마음에 끌려서일 것이다. 그 마음 안에는 추억도 있고, 아픈 기억도 있다.


지금도 여전하시지만 내가 어릴 때 아버지는, 하루에 한 끼를 국수로 먹지 않고 밥만 세 끼를 다 드시면 신경질이 난다고 농담을 하실 만큼 국수를 좋아하신 분이라 집에선 자주 국수를 끓였다. 무더위 속에서도 반죽을 하고 밀대로 밀고 착착 접어서 가지런하게 칼질을 하면 국수가 생긴다는 게 신기했던 대청마루의 한여름, 혹은 마른국수를 사러 동네 국숫집으로 심부름을 가서 본 발처럼 주렁주렁 걸려있던 국수가 끊어지지 않는 게 신기했던 기억들이 아직도 파릇하지만, 나는 같은 밀가루 음식이라도 언제나 국수보다는 빵을 선택하는 편이었는데, 처음으로 스스로 국숫집을 찾아간 건 친구와 함께 자취하던 여고시절 때였다.


늘 소박하고, 때론 좀 부실하게 끼니를 해결하던 우리는 각자의 집에서 생활비가 오는 날이면 춘천 명동 입구에 있던 '삐삐 스낵'으로 칼국수를 먹으러 갔다. 감자를 큼지막하게 썰어 넣고 뭉근하게 끓여낸 칼국수 한 그릇과 굵게 썬 깍두기만 있으면 어린 두 여자에겐 진수성찬이었다. 배가 볼록하도록 국물까지 싹싹 먹은 후엔, 파장이 가까운 시장에서 떨이로 수북하게 얹어주는 과일 한 봉지를 샀다. 봉지에 든 사과나 자두 따위의 과일을 깨물면서 시내버스의 맨 뒷자리에 앉아, 아직 오지 않은 시간에 대해 소곤거리다 강원대 후문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낡고 조그만 자취방으로 가던 그 밤길을 우린, 사랑했다.


삼 년 내내 꽤 자주 칼국수를 먹었는데 그 중 가장 맛있게 먹었던 때는 여름 장마가 한창이던 어느 날이었다. 각자 가진 돈을 다 털어도 조금 모자라서 결국은 칼국수를 한 그릇만 시켜서 나눠먹었다. 우산을 썼지만 눅눅하게 젖었던 옷과 신발이 국수를 먹는 동안 말라가는지 발가락이 간지러웠다.

그때 함께 국수를 먹던 친구는 지금, 비가 흔하지 않은 LA에서 산다. 어쩌면 이제 친구에겐 '비 오는 날의 국수 한 그릇'이란 말은 생소하거나 나와는 다른 의미일 것이다. 기후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도 친구와 함께 맛있게 먹던 칼국수 한 그릇과 지금 내가 먹는 월남국수 한 그릇 사이에는 나 혼자만 겪은 진한 세월이 끼어들었기 때문이다.


밴쿠버에 사는 한인들이 가장 즐겨먹는 음식 중 하나가 월남 국수일 것이다. 비엔남 사람이 직접 만드는 꽤 유명한 국숫집 간판에는 아예 한글로 '포 호아'라고 적혀있을 정도다. 세계에서 다양한 음식 문화가 발달한 곳으로 손꼽히는 밴쿠버에서 소박하고 평범한 음식이랄 수 있는 월남국수가 유난히 한인들에게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는, 어쩌면 한국인의 정서 속에 숨어있는 '비 오는 날은 부침개'같은 등식이 '비 오는 날은 월남국수'로 변형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기후와 음식이 서로 무관할 수 없음은 당연한 일인 데다, 기본적으로 숨어있는 음식에 대한 정서, 혹은 연상작용까지 거들어주는 셈이니 월남 국숫집 간판에서 한글을 읽는 일은 오히려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내가 처음으로 월남 국숫집에 간 건 이민 온 지 3년쯤 되었을 때, 막 새 직장으로 옮긴 직후였다. 많지 않은 한국인 동료들 중에 누군가가 국수를 사겠다고 해서 퇴근길에 네 명이 함께 갔었는데 나는 가장 작은 그릇으로 주문하고도 반 이상을 남겼다. 실란트로(고수)라는 향료 풀 때문이었다. 그날 함께 간 사람들은 실란트로를 너무 조금 준다고 투덜대는 사람들이라서 내 입맛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줄지 않는 내 국수 그릇이 보기 딱했는지, 눈 딱 감고 '삼세번'만 참으면 맛을 알게 될 거라며 웃었다. 이민생활이 이삼십여 년쯤 되는 고수들답게, 삼 년정도만 지나면 사는 것도 훨씬 수월해질 거라는 격려도 잊지 않았다. 그녀들과 두 번째로 국숫집에 갔을 때 국수는 더 맛이 없었다. 이제는 먹을 수 있을 거라며 내 국수에 강제로 실란트로를 넣었기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실란트로의 향이 싫었고 삶도 여전히 서툴고 고달팠다. 월남 국수를 세 번만 먹으면 맛을 알고, 삼 년만 지나면 사는 게 훨씬 나아질 거라는 그녀들의 말을 놓칠까 봐 움켜쥐고 있는 내 부실한 희망은 외로웠다.


6년 남짓 그 직장을 다니는 동안 나는 몇 번이나 월남국수를 먹었을까? 밀가루가 아닌 쌀국수라서 자주 먹어도 질리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정확히 기억할 수 없다는 것은 일상의 일부가 될 만큼 자주 먹었다는 뜻이기도 하겠다. 몇 번째부터였는지는 기억할 수 없지만 언제부턴가 월남국수의 맛을 즐기게도 되었고, 국물에 들어간 실란트로는 여전히 싫지만 가끔은 샐러드를 만들 때 살짝 다져 넣을 만큼 그 향료 풀이 주는 묘한 풍미도 알게 되었다.


돌아보면 아프고 힘들었던 기억들이 너무 많이 잠복해 있는 시절이라 그때와 무관할 수 없는 월남국수, 아니 월남 국숫집의 간판만 보여도 고개를 돌릴 것 같았는데 지금도 나는 가끔 월남국수를 먹으러 간다. 이젠 대부분 그냥 국수가 먹고 싶어서 가지만, 가끔은 심란하거나 헛헛해서 습관처럼 월남국수를 찾기도 한다. 삶의 모양이 바뀌었어도 여전히 뜨끈한 국수 한 그릇이 생각나는 축축하고 막막한 날은 있기 마련이니까. 그럴 때, 국숫집에 앉아서 콧잔등에 땀이 송송 맺히도록 뜨거운 국수를 한 그릇 비우고 나면, 쉽게 연마되지 않는 삶의 각진 모서리나 까칠했던 사소한 감정쯤은 대충 풀어지고, 삶은 공평하다는 생각이 든다. 겉으로야 어떻게 보이든간에 들춰보면 모두들 자신만의 힘겨움을 끌어안고 살아갈 테니까 말이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빗물이 번지는 차창 너머로도 또렷하게 보이는 국숫집 간판 위의 '포 호아'라는 한글을 읽는다. 자주 대면하는 일상의 것이지만, 시간의 흐름에도 무뎌지지 않고 여전히 아릿한 기억의 통증을 불러오는 것이 있다. 내겐 월남국수가 그런 것이다. 하지만 이제 나에겐 세월도 메꾸지 못했던 실금 같은 기억을 덮어주는 사람이 있어서 오늘 같은 날은 국수 먹는 시간이 안온하다.

약속 시간이 오 분쯤 남았는데, 먼저 와 국숫집 창가에 앉아있는 그녀가 보인다. 차에서 내리는 나를 봤는지 손을 들며 환하게 웃는다. 어느새 여름꽃처럼 싱그럽게 자란, 나와는 다르게 아가 때부터 국수를 너무 좋아하는, 하지만 그것 말고는 안팎으로 나를 많이 닮은, 내 아이다.


아이는 오늘도 국수를 먹기 전에 '스프링 롤'을 먼저 먹자고 할 것이다. 그러면 국수를 먹고 난 후에 배가 너무 부르다고 투덜대면서도 나는, 파삭하게 튀겨진 스프링 롤을 부스러기를 흘려가며 스윗칠리 소스에 찍어 먹는 상상만으로도 미리 즐거울 것이다. 그리고 스프링 롤을 먹으면서 뜨거운 국수 한 그릇을 기다리는 동안, 어쩌면 비는 이미 그쳤을 것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묵묵한 행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