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햇살 속 블루베리
블루베리를 좋아한다. 사실은 과일이나 야채는 아삭하고 시원한 맛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리 선호하는 식감이나 맛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언제부턴가 갑자기 블루베리를 아주 좋아하게 되었다. 하지만 맛보다는 수형에 먼저 반했다. 그토록 묵묵하고 볼품없는 외양을 지닌 식물에서 나오는 열매 치고는 익어가는 동안 보여주는 빛깔의 변화와 묘한 향기, 경박하지 않은 달콤함이 더없이 매력적이다. 게다가 냉동실에 얼리면 한알 한알 얼음코팅이 되어서 일년내내 여러 용도로 맛볼 수도 있다.
유픽(U-Pick)하러 간 블루베리 농장에서 찍어온 사진들이 너무 예뻐서 그중 하나를 골라 그림을 그린적이 있다. 어릴 때는 거의 날마다 그림을 그렸는데 어른이 된 후로는 제대로 완성한 것으론 세 번째 그림이다. 이 그림을 위해서 새벽 네시 반까지 깨어있었다. 지나치게 조심스러웠다. 조심스러운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어디에 내놓을 것도 아니고 나 혼자 재미로 그리는 그림인데 왜?
그러다 어느 순간, 알아챈다. 내가 아직도 호불호, 혹은 애정의 정도에 따라서 정성의 깊이가 달라지는 공평하지 못한 사람이란 것을. 사소한 사물에도 이러니 사람에 관해서라면 말해 무엇하겠는가. 스스로 자신이 꽤 공정한 사람이라고 여겼던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었다. 물감을 너무 얇게 쓰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혹시 망칠까 봐 여전히 아꼈고, 사진 속에선 원경으로 아련하고 퍼진 뒷배경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 막막했다. 사랑하면 거침없이 믿고 교감을 기뻐해야 하는데, 사랑하므로 더욱 예민해진다.
그리고 그 예민함 때문에 뭔가를 망칠까 봐 자꾸 마음 끝을 감추며 뭉툭하게 만들려 한다. 하지만 이런 마음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어느 지점에 이르면 혼자만 아는 쓸쓸함이 다정함으로 치환되고, 슬그머니 평온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마치 변명을 하듯 고집불통인 일상이 근접할 수 없는 고요는 이래야만 만들어지고, 그 짧고 부실한 고요 덕분에 나는 모든 것에 제법 잘 순응하며 나이를 먹는다고 믿기로 한다. 다분히 자위적이다. 하지만 아직 더 좋은 방법을 찾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