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천득 수필 _ 인연
간혹 책이나 영화 속에 등장하는 소품이나 장소 같은 것들이 압화처럼 남아서, 내용과 등장인물보다도 먼저 그 작품을 떠오르게 하는 매개체가 되기도 합니다. 제겐 '스위트피 sweet pea'도 그런 것들 중 하나입니다. 설령 꽃을 보진 못했어도 '스위트피'라는 단어만 만나도 바로 피천득 선생님의 수필, 인연을 생각하는 사람이 비단 저뿐만은 아닐 것입니다.
내가 간 이튿날 아침, 아사꼬는 '스위트피'를 따다가 꽃병에 담아 내가 쓰게 된 책상 위에 놓아주었다. '스위트피'는 아사꼬같이 어리고 귀여운 꽃이라고 생각하였다.
오래전 어느 여름, 마당 한 켠에 스위트피가 많이 핀 적이 있습니다. 그로서리 쇼핑을 하다가 갑자기 꽃씨가 사고 싶어서 명함 크기만 한 작은 봉지의 '스위트'피'를 샀어요. 딱히 꽃을 보겠다는 바램보다는 그저 꽃씨를 사고 그걸 심는 행위만으로도 뭔가 조그맣고 포근한 위로를 받을 것 같았거든요. 몸이 많이 아팠던 겨울을 막 통과한 직후였어요.
너른 마당은 잔디밭이 다 차지해서 측백나무 담장 아래에 조금 남은 빈 땅에 씨앗을 훌훌 뿌리고는 예년보다 자주 오는 비에게 모든 걸 맡겨놓고 별로 돌보지도 않았는데 스위트피는 놀랄 만큼 빠르게 자라며 제 영토를 넓혀가더니 여름 햇살이 쏟아지 듯 와르르와르르 꽃이 피었습니다. 색깔대로 조금 꺾어다 유리병에 꽂아두었더니 오가며 볼때마다 저절로 미소 짓게 되더군요.
스위트피는, 수필 속의 비유처럼 꽃만 보면 여리고 귀엽지만 튼튼한 줄기와 가늘게 고불거리는 덩굴손은 번식력도 뛰어나고 억세고 거침이 없습니다. 피천득 선생님은 아마 스위트피의 이런 생장의 변화를 염두에 두고 글을 쓰진 않으셨을 것입니다. 어리고 귀여운 꽃의 이미지만으로 스위트피와 아사코의 첫 모습을 연결시켰겠지요.
그가 아시꼬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소녀였습니다. 여자의 삶에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가장 쉽게 부서지고 사라지고 마는 한 시절이지요. 하지만 마지막으로 그녀를 만났을 때, 그녀는 여자였습니다. 그것도 결혼한 여자. 시대적인 정황만 보더라도 결코 순탄하고 곱지만은 않았을 것 같은 아사코의 삶, 게다가 세월이 지났으니 당연히 외모도 달라졌겠죠. 아마 그런 그녀를 보며 아쉽고 마음이 아팠을 것입니다.
살다 보면, 차라리 그때 만나지 않았더라면.. 차라리 그 사실을 몰랐더라면... 혼자 후회하고 아파하는 시간이 있습니다. 그 순간부터 그것들은 더는 내 현재와 동행이 될 수 없습니다. 다만 상처 입은 추억으로 남을 뿐이지요. 그래서 그의 글을 읽는 우리는 곧잘 이 마지막 문장에 걸려 넘어져서 잠시 먼 곳을 응시하며 내 기억 속의 아사꼬, 혹은 스위트피를 떠올립니다.
아사꼬와 나는 절을 몇 번씩 하고 악수도 없이 헤어졌다.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