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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한 눈금의 거리

예찬 _ 고슴도치

by 윤서



#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

가시 투성인 고슴도치도 부모에겐 *보드랍고 반지르르하다, 는 말로 설령 남들이 못났다고 생각하더라도 제 자식은 귀하고 예쁘다는 뜻의 속담이다. 나는 날카롭거나 뾰족한 것을 보면 불안해지는 성향이 있어서 고슴도치는 편하게 볼 수 있는 동물이 아니었다. 게다가 조그만 녀석이 얼굴은 산전수전공중전까지 다 거친 묘한 포스를 풍긴다. 사실, 고슴도치를 직접 본 적도 없고 그림이나 사진으로만 봤는데도 그랬다. 그러다 한 영상에서 고슴도치도 새끼는 털이 하얗고 보드랍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속담이 적절한 표현이 아니란 생각을 했다. 고슴도치의 새끼는 정말 예뻤다.



# 고슴도치 외 따 지듯

우리 민화 중에 고슴도치가 오이를 훔쳐서 등에 붙이고 가는 그림이 있다. 그리고 "고슴도치 외 따 지듯'(고슴도치가 오이를 따서 지고 가듯)이란 표현도 있다. '이곳저곳 남에게 빚을 많이 지고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서양에도 비슷한 그림들이 있다고 해서 찾아보니 제 몸만 한 사과를 등에 지고 가거나 라즈베리를 다닥다닥 붙이고 가는 사진도 있었다. 고슴도치는 워낙 먹성이 좋으니 먹기 위해 서기도 하겠지만 과일의 '산' 성분이 소독 효과가 있어서 가시나 몸에 있는 벼룩이나 기생충을 없애주기 때문이라는 추측도 있다. 고슴도치 가시는 털갈이하듯 빠지고 다시 나오는데 결대로(머리에서 아래쪽으로) 쓰다듬으면 전혀 따갑지 않다고 한다.



# 고슴도치 딜레마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소품과 단편집'에서 유래한 심리학적 표현이다. 추운 겨울밤 고슴도치 두 마리가 서로 체온을 나누며 추위를 견디기 위해 몸을 기댔는데 너무 가까이 대면 가시 때문에 상처를 입고 서로 떨어지면 추워서 결국엔 얼어 죽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에 빠진 상황을 심리학적 용어로 '고슴도치 딜레마'라고 한다. '고슴도치 딜레마'는 철학적 의미로 출발했지만 개인의 심리, 성격 혹은 사회와의 관계 등을 설명할 때도 자주 인용된다.


고슴도치는 평균 1만 6천여 개의 가시를 지니고 있는데 사실 이것은 털이 변형된 것이다. 평소에도 그렇지만 특히 고슴도치가 긴장하거나 화가 나면 가시를 곤두세우기 때문에 그 누구도 쉽게 접근할 수 없어 보인다. 그래서 '고슴도치 딜레마'라는 용어가 생겼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서로 의지하고 짝짓기를 하고 새끼를 낳아 기를 수 있는 건, 가시의 각도를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서로의 몸이 다치지 않을 만큼만 가까이 가기 때문이다.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으로 준다는 옛말은 단지 착하디 착한 전설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대신 요즘엔 내 기쁨은 질투가 되고 슬픔은 약점이 된다는 말이 떠돈다. 어쩌면 우리의 무의식도 이런 변화에 적응하며 진화 중이라서 점점 더 자신의 상처나 슬픔을 숨기고 살아가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가끔,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고 상처를 내보인다. 딱히 공감이나 해결을 바라서는 아닐 것이다. 그저 혼자서만 품고 있기엔 너무 무거워서 대화로 객관화시킬 때의 잠깐의 휴식이 필요해서다. 마치 일시적인 공중부양 같은.


하지만 만약 상대방에게 내 상처에 대한 배려와 자존감에 대한 예의가 없다면 모든 게 엉망이 된다. 이제 그들에겐 잃을 것만 남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는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욱 마지막 한 눈금의 거리는 지켜주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하나라는 뜻이 아니라 서로 이해해주기로 마음먹은 다른 둘, 혹은 여럿이 모여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 꼭 필요한 것이 적당한 거리다. 이 거리의 다른 이름이 배려와 예의다.



# 볼바시옹(volvation)

여름날 시골 길바닥 여기저기에 구두흙털개 같은 작은 조각들이 피투성이가 되어 널려 있는 광경은 얼마나 참담한가. 전적으로 야행성 동물인 고슴도치는 밤마다 뛰어나와서 이곳 저곳을 미친 듯이 돌아다니는데 그 편력이 그 짐승에게든 흔히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온다.(중략) 원래 걸음이 매우 더딘 고슴도치는 조그만 위험만 닥쳐도 즉시 걸음을 멈추고 공처럼 동그랗게 몸을 움츠린다. 이런 반사적 행동은 그들이 길을 건너가다가 자동차가 달려올 경우에는 명백한 자살행위가 되고 마는 것이다. 이렇게 몸을 둥글게 움츠리는 것을 가리키는 아주 멋진 단어가 바로 '볼바시옹(volvation)'인데 이 말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미셀 투르니에 [예찬] 중에서.


'볼바시옹'은 사람들과 접촉하기를 꺼리고 마음을 터놓지 않는 사람의 반사적 행동을 비난할 때 비유되곤 한다. 작가가 '볼바시옹'에 비유한 자동차로부터의 위험에 대처하는 고슴도치의 반사적 행동은 결국은 죽음이었지만 이건 인간이 만든 위험이기 때문이다. 자연 생태계에서의 이런 행동은 그야말로 '수비가 최대의 공격'이 된다. 뱀도 고슴도치를 이기지 못한다. 몸을 동그랗게 말고 가시를 세운 고슴도치는 밤송이 같아서 뱀이 삼킬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반사적인 공격성이 거의 없는 사람이라 뒤늦게 혼자 후회하고 화를 누르는 경우가 많다. 그때 이 말을 했어야 하는데, 그때 내가 눈치챘다는 걸, 기분이 나쁘다는 걸 표현했어야 했는데... 등등. 좀 변하고 싶지만 타고난 천성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늘 타이밍을 놓친다.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수비만으로도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혹은 상대가 아예 공격하지 못하게 하는 고슴도치의 가시 같은 무기가 있어야 한다. 내가 장착할 수 있는 그런 무기는 무엇일까,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세상과 관계 속에 내가 있다는 게 참 유감이지만 이왕 이렇게 된거, 어쩌면 아직 내 존재의 골방속에 남아있을 지도 모를 긍정과 가능의 에너지를 끌어올려 보자는 소심한 결심같은 걸 해 보는 12월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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