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나은' 꽃이 아니다.
이십 대엔 안개꽃과 프리지어를 좋아했다. 안개꽃은 향기가 거의 없으니 당연히 생김 때문에 좋아했고, 프리지어는 '어느 날 문득' 이란 단어를 떠올리게 하는 향기가 좋았다. 고등학교 다니던 어느 봄날, 큰 맘먹고 프리지어 한 다발을 사서 자취방에 꽂아 두고 주말 내내 어찌나 기분이 좋은지 혹시라도 향기에 흠이 갈까 봐 김치도 꺼내지 않았다.
안개꽃은, 무척 좋아하면서도 이상하게 안개꽃만 산 적이 없다. 그 시절의 안개꽃은 마치 꽃다발의 공식인 듯 다른 꽃의 배경이 되는 꽃이었다. 그러니까 안개꽃은 메인으로 고른 꽃을 돋보이게 하려고, 혹은 포장 한 후에 더욱 풍성한 꽃다발로 보이기 위해서 섞는 꽃이었다.
스무살 무렵의 내 아이도 안개꽃을 좋아했다. 그런데 아이는 나처럼 배경으로서가 아니라 안개꽃만 한 다발 화병에 꽂는 걸 좋아했다. 그때 나는, 안개꽃을 새롭게 만났다. 더 이상 다른 꽃의 배경으로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나은' 꽃이 아니라 '오직 나'만 있어도 아름다울 수 있는 꽃이었다. 마음에 든 것에는 거의 반사적으로 감정이입이 되고 원래의 의미가 확장되는 걸 좋아하는 성향이라 그날의 안개꽃도 예외가 아니었음은 숨기지 않는 비밀쯤으로 둔다.
그래도 습관적인 취향은 단번에 바뀌지 않는지 아이는 늘 유리병에 안개꽃을 꽂고 싶어하지만 나는 행여 안개꽃이 부실해 보일까 봐 노란 화병에 앉힌다.
홀로
가냘픈 듯 야무지게
소박한 듯 화사하게
어지간히 시들어서는 티도 내지 않는
안개꽃 한 다발이 기특해서
하마터면 꼬옥 안아줄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