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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샘 Jan 10. 2021

시가족들은 아무도 내 이름을 묻지 않는다.

이름은 모르지만  ‘아무튼 가족’이라니.

약 열흘 전, SBS 방송국 시상식에서 봉태규는 아내를 ‘하시시박 작가님’이라고 지칭하며 고마움을 표했다. 난 봉태규가 평소 얼마나 애처가인지 자상한 아빠인지 자세히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공개석상에서 아내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만으로도 짐작이 갔다.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잊지 않게끔 독려하는 남편이구나라고. 그동안 아내가 쌓아온 업적, 그리고 정체성을 존중해주는 사람이라는 걸 단 두 단어로 느낄 수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겨우 이름 불러준 것 가지고 그러느냐고 말할 수 있다. 좋은 남편 되기란 참 쉽다 핀잔할 수 있다. 결혼 뒤, 내 이름을 사수하려 고군분투해본 입장에선 당분간 오래 기억에 남을만한 두 단어였다. ‘하시시박 작가님’.


 

코로나는 술 이름에 불과하던 때의 일이다. 남편의 시사촌형 결혼식에 갔을 때였다. 그 해 결혼계획이 없었던 형의 갑작스러운 결혼식이었다. 어두운 식장에 화촉이 점화되고, 신랑 뒤를 따라 신부가 입장했다. 남편은 비로소 실감 난다는 듯 읊조렸다. “모르던 사람과 갑작스레 가족이 되다니. 기분이 좀 이상해.” 나는 남편의 말을 듣고 풋 웃으며 물어봤다. “가족? 당신, 저 신부 분 이름은 알아? 식장 앞에 있었잖아.” 남편은 우물쭈물했다.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럼 우리 결혼 4달 전 결혼한 사촌  형수님 이름은?” 역시 기억하지 못했다. 두 형수의 이름을 내가 대신 말해주며 얘기했다. “가족이라며? 세상에 이름도 모르는 가족이 어디 있어? 저 형수님도 당신을 가족이라고 생각할까?”


남편과 시사촌형제들을 비롯한 시댁 가족들은 1년에 최소 두세 번 만남을 한다. 일곱 명의 시사촌형제 모두 매달 가족 행사를 위한 곗돈까지 붓고 있을 만큼 유대가 끈끈하다. 나는 일곱 명의 시사촌형제의 이름을 모두 알고 있다. 남편이 그들을 이름으로 지칭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사촌형제들은 내게 이름을 물은 적이 없다. 내 이름을 몰라도 의사소통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시사촌형의 결혼식이 있던 그 날, 결혼식 뷔페에서 점심을 먹고 있을 때였다. 맞은편에 앉은 시이모님은 날 보더니 말씀하셨다. “아까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다 했는데 ‘OO(남편이름)이 옆에 있으니 알겠네. OO이 아내였지 참~”  결혼한 지 3년이 되었을 때였다. 나는 그 모임에선 단 2명에 불과한 조카며느리 중 1명이었다. 시사촌형 결혼식은 내가 참석하는 6번째 시가족 행사였다. 시이모님의 발언은 시가족들에게 내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였다. 나는 남편의 결혼 여부를 증명해주기 위해 이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이구나.  


이 계기는 결국 문제의 발단이 되었다. 남편과 다음 시가족 모임 참석 여부를 두고 대화를 할 때였다. 목소리 높여 말했다. "솔직히 나는 그런 모임까지 가야 된다 생각 안 해. 결혼했다는 이유로 갑자기 그 집안 가족이 된 것도 아니잖아. 어른들은 나보고 왜 자꾸 가족이니 당연히 오라는 거야? 난 가봤자 존재감도 없잖아. 어른들이나 사촌형제들은 내 이름조차 묻지도 않고 관심도 없잖아!" 뜬금없이 눈물이 콸콸 쏟아졌다.


가벼운 성질만 내려고 했는데 나도 모르게 툭 터진 눈물이었다. 서러움이나 서운함 같은 치기 어린 감정이 아니었다. 그건 분하고 치욕스러움이었다. '누구의 아내' 혹은 '어느 집 아들 며느리'로 내 모든 정체성이 설명되는 모임. 내 이름 따위 아무도 몰라도 소통하는 데 문제가 없는 관계. 아주 기초적인 유대감조차 느껴보지도 못한 사람들과 갑자기 가족이 되고 책임을 부여받다니. 도저히 수용하기 힘든 일이었다.


나조차 예측 불가한 순간에 뜨겁게 터지던 열망을 느끼며 다짐했다. 앞으로 내 이름을 최우선으로 지키며 살겠노라고. 누구의 아내나 며느리, 엄마 등 타인의 이름을 앞세우고 나를 뒷전에 두진 않겠다고. 나는 그냥 내 이름 석 자로 불려지겠노라고. 여전히 누구 집 며느리 이름은 궁금하지도 않은 이들이 다수라면, 내 이름이 궁금할 필요도 없이 얼굴 보면 내 이름부터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고. 결혼은 이름에 대단한 집착을 낳게 만든 계기였다. 이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었다. 그럴 필요도 없었다. 나는 어딜 가도 이름으로 불리던 사람이었으니까. 결혼 후 이 정도로 이름에 집착하지 않으면, 어느새 내 이름은 아무도 불러주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을 뿐이다. 




나는 내 이름 석 자가 적힌 것을 늘려가기로 했다. 글이든 책이든 그림이든 논문이든 뭐든 상관없다. 세상 온갖 것들에 내 이름을 새겨 넣으며 살 것이다. 굳이 누군가에게 ‘꽃’까지 되지 않아도 좋다. 다만 나는 언제나 내 이름을 우선으로 말해야 하는 그곳에 있을 것이다.


이미지 출처

작가 이름 Phan Phan

브런치: http://brunch.co.kr/@phanp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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