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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샘 Jan 05. 2019

시부모님의 돈, 받지 않겠습니다.

살가운 며느리로 살지 않기 위한 노력

0원.

우리가 양가 부모님께 결혼 과정에서 받은 돈의 액수이다.

양가 부모님께 돈을 받지 않은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한 가지는 더 이상 각 부모님에게 돈을 달라고 말할 염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양가 부모님은 네 분 모두 현직에서 계신다. 남편의 어머님은 공직생활을 30년 넘게 하셨고, 아버님도 은퇴 후 재취업 하셨다. 우리집 부모님은 지방에서 각자 개인 사업을 하고 계시고 사업장 건물은 부모님 소유다.


나와 남편은 각자 부모님 아래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 없이 순탄하게 자랐다. 겉보기엔 모두 자녀 결혼에 흔쾌히 돈 몇 천, 몇 억 내어줄 것 같은 50대 베이비부머 중산층이지만 또 다른 둥지까지 만들 여윳돈은 없다.


아주 뻔하게도 자녀들 양육과 대학 등록금, 취업준비 등으로 큰돈들이 사르르 녹았다. 자녀뿐이랴. 아직 정정하게 살아계신 그들의 부모도 부양 중이시거니와 본인들의 현 상태를 간신히 유지하기 위한 주택담보대출금, 보험료, 생활비 등을 매달 충당하기 위해 오늘도 삶의 전장에 계신다. 자녀들이 홀랑 집어간 노후대비자금은 지금이라도 힘닿는 데까지 벌어놔야 한다고 결의를 다지는 중, 장성한 자녀의 결혼소식을 들은 기분은 놀랍고 기쁜 한편 심장이 쿵 내려앉는 그런 심정은 아니었을까?


물론 우리가 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대학원 공부와 실무를 병행하는 와중이었고, 남편은 지금 다니는 회사에 들어가고 나서 2년 뒤 결혼식을 올렸으니 말이다. 월마다 차곡차곡 모아 놓은 돈이 있긴 하였지만 서울에서 전세라도 얻기엔 당연히 무모한 수준이었다.

돈이 부족하여 결혼 준비에 애 먹는 아들 딸 들의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부모님은 급기야 집이나 상가를 팔아서라도, 빚을 내서라도 결혼 시키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우리는 결단코 거절했다. 그리고 회사 근처 빌라에서 월세 살이 부터 시작했다. 왜냐하면 나와 남편이 꾸리는 가정은 집안과 집안이 만나 파생 되는 작은 가정이 아니라 부모님에게서 떨어져 나와 완벽하게 독립된 별개의 가정이길 원했기 때문이다. 그런 가정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 가정에 부모님의 지분은 없어야 했다.


우리는 반드시 독립된 형태의 가정이어야 하고 부모님께 몸만 큰 어린애들이 아닌 경제활동을 하는 어엿한 성인으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의견은 내 입김이 훨씬 컸다.


결심의 가장 큰 이유는 ‘살갑고 착한 며느리’가 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날 낳아준 제 부모 돈도 뻔뻔하게 받지 못하는 주제에 여태 고작 두 어번 정도 마주한 시부모님의 돈을 받고나면 더 큰 부채감에 시달릴 게 뻔했다. 그리고 그 부채감은 너무 강력한 것이어서 나를 ‘며느리 도리’라는 틀 안에 옥죌 수 있다는 직감이 들었다.


나에게 며느리의 역할이란 시부모의 아들과 서로 배려하고 함께 성장하며 행복하게 사는 것이고 나머지는 모부수적인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선 며느리의 역할과 남편 및 시부모의 바람이 구분되지 않고 쓰이는 경우가 너무 많다. 역할과 바람, 이것이 모두 뭉뚱그려져 ‘며느리 도리’로 통용 되곤 한다. 사교성 있고 애교 많은 성격에 시부모에게 연락도 자주 드리는 것은 물론 시부모 생일에는 생일상과 미역국을 자처해서 끓여내고, 시가 집안 행사를 군소리 없이 치러내는 것. 나의 기준에선 이건 내 역할이 아니라 나 아닌 다른 이의 바람일 뿐이다. 그 바람에 부응하려 본연의 내가 아닌 채 몇 십년의 삶을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사실 시부모님은 결혼 과정에서 경제적 지원을 주고받는 것과는 별개로 이건 나의 도리라 생각 하실지 모른다. 그 기대는 시부모님의 것이기 때문에 내가 건드릴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 내 역할과 타인의 바람을 정확히 구분 짓는 것. 내 역할을 다 하고 있음에 만족하고 바람에 부응하지 못했음에 괴로워하지 않는 것. 나 아닌 다른 모습으로 살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 것.


이걸 실현하기 위해서는 나의 자존이 단단해야 했고 그 자존을 지키기 위해 조금이라도 의존하고자 하는 생각을 버렸다. 이렇게 우린 결혼과 동시에 완벽한 독립을 선언했다. 경제적인 것, 정신적인 것 모두.


내가 직접 쓴 결혼식 청첩장 문구. 부모님 지원 없이 결혼 준비를 겨우 마치고 공식적인 독립선언을 했달까?

우리 부부가 아이없는 결혼생활을 하는 부분도 이런 배경을 떠나 설명 될 수 없다. 주위를 둘러봐도 경제적인 것이든 육체적인 것이든 부모의 지원을 빌리지 않고 육아를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맞벌이 부부는 그들 부모의 노동력이 필요하고 외벌이 부부는 경제적 지원이 절실한 것이 대부분이다.

결혼으로 잘난 척 독립선언 했으나 결국 내가 낳은 자식 좀 봐달라며, 이 아이 그 집안 손주 아니냐며 무엇이든 감당할 테니 어떤 것이든 지원을 바라게 될 내 모습을 상상하면 괴롭다.


그래서 우린 우리가 전적으로 책임질 수 없는 일은 하지 않기로 하였다. 그게 무엇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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