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가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는 뜻을 밝혔을 때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다. 처음에는 다소 상대방의 감정을 상하게 할 수도 있는 말을 어쩜 저리도 해맑게 할 수 있을까 놀라웠다. 하지만 나보다 더 놀란 듯 토끼 눈을 뜬 표정엔 비아냥거림이나 악의가 있어 보이진 않았다. 대부분은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한 남녀의 결혼’을 순수하게 궁금해 했다. 성인 남녀 두 명이 아들과 딸을 품에 안고 웃고 있는 그림 혹은 교과서 표지. 초등학생 때부터 교과서에 보던 그 이미지들의 각인 효과를 이렇게 절감하게 되다니.
EBS 다큐프라임 <부부는 무엇으로 사는가-"1부 부부의 탄생"> 우스갯소리가 아니고 우리가 생각하는 보편적인 가정 형태 그 자체는 아닐까
아이 낳지 않기로 한 우리 부부의 결혼 이유를 찾기에 앞서 어째서 각자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는지 먼저 생각해보았다. 어떤 부부든 으레 그렇겠지만 우리부부도 ‘자기, 왜 나랑 결혼했어?’ 라는, 이미 답을 들어 놓고도 며칠 후에 또 물어보고 싶어지는 그 질문을 몇 번씩이나 하고 놀았다. 남편이 물어볼 때마다 나는 매번 다른 대답을 했는데 그래도 남편은 나의 첫 번째 대답을 잊지 못한단다.
“당신이 다른 여자랑 연애 못하게 하려고.”
평소 성취욕과 경쟁심 많은 내 성격을 단 번에 드러낸 말이라나 뭐라나.
그다지 낭만적인 대답도 아니고 결혼한다고 하여 반드시 다른 이성과 연애를 못하는 것도 아니지만(?) 내가 결혼을 결심한 이유를 함축적으로 담고 있는 말인 것은 분명하다.
연애시절 일주일 중 딱 하루 만났던 우리는 만남 뒤 헤어져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 또다시 통화나 문자 메세지로만 서로를 확인하는 것이 늘 아쉬웠다. 하루 종일 모든 일정을 함께 하지는 못하겠지만 매일 얼굴을 보면서 대화를 하고 싶었고 차가운 핸드폰이 아닌 상대방의 온기로 서로를 확인하고 싶었다. 맵고 짠 자극적인 바깥 음식이 아닌 어설프지만 손수 만든 음식을 함께 나눠먹고 싶었고, 직접 깨끗이 세탁한 포근한 이불에서 둘이 잠을 자고 싶었다.
이 같은 미래를 상상할 때, 다른 남자와는 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었고 그의 옆에 있는 여자도 꼭 나여야만 했다!!
이런 욕망을 실현하고 상대방에게 배타적 권리를 행사하기 위한 방법은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결혼’이 유일했다. 그렇게 남편과 나는 부부로 살게 되었다.
결혼을 하고나서는 아침 출근시간이 달라 아직 잠이 덜 깬 나는 바삐 나가는 남편과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친 채 입술만 쪽 마주치고 하루를 시작한다. 저녁 퇴근길은 같이 손을 잡고 들어와 저녁식사로 먹을 한 그릇 식사를 차려 먹으며 서로의 하루를 공유한다. 정리를 마치고 느긋하게 쇼파에 엉켜누워 책을 읽거나 좋아하는 게임을 한다. 각자의 시간을 보내다가 서로 하는 일이 궁금해져 하는 일을 빤히 쳐다보거나 왜 나를 보지 않느냐며 떼를 쓰기도 하다가 어느새 잠이 든다.
가끔은 그의 부모님과 만나 내가 몰랐던 어린 시절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웃는 것도 재미있고, 나의 부모님과 만나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친밀한 관계를 맺게 되는 과정도 참 즐겁다.
우리는 아이 없는 부부이다. 그렇지만 일상의 즐거움과 행복까지 없는 부부는 아니다.
흔히들 아이의 탄생과 함께 부부도 ‘진짜 결혼생활’을 겪는다고 한다. 아이가 태어나기 이전의 삶은 진짜가 아닌 것처럼 말한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차원이 다른 기쁨과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이라면서. 그렇다면 아이 없는 지금 내가 느끼는 즐거움과 행복, 그리고 내 일상은 모두 차원이 낮은 감정이고 가짜의 삶이라는 건가. 아이도 없거니와 아직 살날이 훨씬 더 많이 남은 나로서는 종국에 무엇이 진짜의 삶이고 무엇이 가짜의 삶인지 알 수는 없다. 그저 남편과 함께하는 현재 내 삶을 사랑하여 한껏 껴안아 지키고 싶을 뿐. 내가 느끼는 느낌, 감정과 내가 사는 지금만이 내게는 '진짜'다. 그게 남들에게 무엇이라 불려도 상관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