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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정희 Oct 19. 2018

아버지와 협력자가 될 수 있을까

정신분석가 이승욱이 말하는 <소년>의 성장기

어지간히 게을러서 전작주의자는 결코 되지 못하는데, 출간한 책을 그래도 꽤 많이 읽은 작가가 있다. 정신분석가 이승욱의 책들이다. 작년과 올 여름까지는 심리학에 관한 책을 한 달에 한 종만 판매하는 서점림을 운영하기도 해서, 서촌 쪽에 갈 일이 있을 때마다 무조건 들르곤 했다.
사실 나는 이분의 독자이기 이전에 초창기 편집자였다. 아빠가 사춘기 딸과 소통하고 마음을 여는 길을 안내하는 심리학자의 책을 내고 싶었는데, 고마운 분이 소개해주었다. 마침 중학생 딸을 둔 정신분석가이고, 하자학교 교감선생님도 지냈다고 했다. 본인이 과거에 교실 뒷자리에서 어지간히 놀아보신 분이라 공감력도 문제없다고 판단. (이번 책에서 보니 아예 교실 밖에서 노셨다고...) ‘글쓰기 실력 검증’차 보내준 몇 편의 칼럼도 좋았다. (팀장 시절의 나는 꽤 거침없었던 듯하다. 정중하게 요청하긴 했지만, 어쨌든 용건은 ‘얼마나 잘 쓰는지 알아야겠으니 쓰신 글 좀 보여달라’는 말을 면전에 대고 했으니. 가끔 그때가 그립네 ㅎㅎ)
원고는 칼럼보다 훨씬 더 좋았다. 편집하다 눈물 나기는 그때가 처음이었던 듯. 책 나오고 나서 “누나를 위한 책만 썼다고 아드님이 나중에 서운해하는 것 아니냐”는 농담을 하기도 했는데, 이 책 <소년>을 쓰셨네. 아들에게 주기 위해 쓰기 시작한, 본인의 성장기다. 소년이 어엿한 어른이 되기 위해 해야 할 질문들, 거쳐야 할 감정들, 극복해야 할 두려움들에 관한 글.
옮기고 싶은 구절을 메모장에 입력하다 보니 너무 많다. 추리고 추리겠지만, 그래도 서문의 이 구절은 같이 읽고 싶다.


어른인 척하는, 늙고 덩치만 큰 어린아이들은 많습니다.
하지만 소년을 품은 어른을 만나기란 쉽지 않습니다.
어른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소년을 망각했기 때문입니다.

소년을 잘 간직한 채 성장하여, 어느 한 계절도 빈 곳 없이 속이 탄탄한 나무처럼, 섬세하고 집요한 어른이 되기를 바랍니다.
소년의 아름다움과 도도함을 고이 잘 간직하면 좋겠습니다.
평생토록 말입니다.


이승욱 작가의 이전 책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아버지에 대한 애정이었다. 부모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은 당연한 것 아닌가, 할지 모르지만 나는 별로 당연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우리나라 기성세대의 부자관계란 좀 무겁지 않은지? 애와 증 사이를 심란하게 왔다갔다 하게 마련인데, 이분 글에 등장하는 아버지는 한결같이 사무치는 그리움이다. 글 속 그의 아버지는 매우 독특했다. 1.4후퇴 때 홀홀단신으로 월남한 아버지는 주말이면 딸들의 교복을 다림질하고, 급하게 아침밥 먹는 딸 옆에 서서 머리를 땋아주던 분이었다고 했다. 오히려 어머니가 대소사를 진두지휘하고 화도 내는 장부 스타일이었다고 했다. 타인의 고민과 분노에 뛰어들어 분석하고 치유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과정이 얼마나 힘들지는 잘 상상이 안 되는데, 아버지의 저런 섬세한 돌봄을 경험했기에 그 과정이 낯설지 않을지도 모르겠구나 짐작해본 기억이 난다.

이번 책은 소년의 성장에 관한 것인 만큼 아버지 이야기가 다른 책에서보다 훨씬 더 많다. 그러다 보니 아버지의 아픔이나 슬픔, 아버지 때문에 갖게 된 상처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술 취해 동네 초입에 아무렇게나 뻗어버린 아버지를 업고 집에 온 일은 할 수 있다면 ‘칼로 도려내고 싶은’ 기억이라 했다. 도중에 같은 반 아이를 마주쳤을 때의 낭패감. 어떤 느낌일지 너무 알 것 같아서 읽다가 나도 기분이 별로가 되었던 이야기다. 그런데 반전은, 어른이 되고 아버지 기일에 모인 가족들의 대화에서 일어났다. 당신 아버지가 며칠이라도 살아 돌아오신다면 한번 업어드리고 싶다던 매형의 말. 어릴 적 매형이 아프면 아버님이 업어서 달래주셨는데, 본인은 아버지를 업어드리지 못했다는 그리움이었다. 그때 생각했다고 한다.


<아, 나는 아버지를 업어 본 적이 있구나.> 그것이 비록 감사의 뜻도, 애정의 표현도 아니었지만 내가 아버지를 짧으나마 업어 보살핀 적이 있었다는 겁니다.
오랫동안 내게는 모멸과 수치의 기억으로 남아 있던 그날 밤의 경험이 수십 년이 지나서 다른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그날 밤에서야 나는 진정으로 술 취한 아버지까지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늦가을 밤, 아버지를 업고 오던 10대 중반의 소년은 몇 십 년이 지나 그렇게 아버지를 받아들이고서야 또 한 번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아버지가 훌륭하고 다정하고의 문제와 별개로, 원망스럽고 창피한 아버지마저 받아들이고서야 내가 또 한 번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개는 소년이 아버지에게 굴복하면서, 혹은 아버지를 극복하면서 성장한다고 하는 것 같은데, 이 책에서는 최종 목표가 ‘아버지와 협력자가 되는 것’이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아버지와 협력하지 못한 채 늙어가는 바람에 소년에 머물러 있다고. “아버지를 극복하고 결국 아버지와 협력자가 되면, 어머니와 건강하게 분리할 수 있다”고도 한다. 조금 어려운 이야기이지만 어렴풋한 느낌은 온다. “어머니의 품에서 벗어나야 진정한 어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모녀보다는 모자관계에서 더 어렵고 중요한 미션인가 싶기도 하다. 계속 내가 소년인 것처럼 읽다가 이 대목에서 처음으로 극복대상인 엄마로 돌아와 아들을 생각했다. 잘 극복되는 것은 내 몫이기도 하다.

옮기고 싶은 이야기가 더 있지만 (특히 고모할머니 이야기 ㅠㅠ) 한 대목만 적자면, 어릴 적 아버지와 매일 새벽 오르던 마을 뒷산의 나무에 관한 글이다. 하루는 산 중턱의 절 마당에 묘목 두 그루를 심었는데, 그만 까맣게 잊고 살다가 중년이 되어 산에 올랐다고 한다.


아버지와 함께 걷던 새벽길의 어둠과 적막을 더 이상 당신과 함께 나눌 수 없는 것이 무엇보다 슬펐습니다. 내게 아버지는 어둠이기도 하고 밝음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아픈 발길로 절 가까이 도착했습니다.
(...) 절이 눈앞에 들어오자 나는 내 눈을 의심했습니다. 예전에 나무를 심었던 곳에 큰 나무 한 그루가 우뚝, 그것도 내 키의 몇 배나 넘는 크기로 그 잎도 무성하게 웅장하게 서 있었습니다. 나의 나무가 거기에 잘 자라 버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또 한 그루의 나무는 내 아버지처럼, 이 세상에서 사라진 내 아버지처럼 흔적이 없었습니다. 두 그루의 나무 중에서 한 그루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주인이 바뀐 절의 스님도 그 나무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정말 그 나무는 내 아버지와 함께 하늘나라로 간 것 같습니다.
그날 나의 나무 아래서 내 마음은 견딜 수 없었습니다. 나의 나무가 아니라 사라진 나무가 내게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너와 함께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입니다.
돌아와 나는 <소년>이라는 이 글을 내 아들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자고 생각했습니다. 소년들에게 아버지의 손전등 같은 글이 되면 좋겠다는 소망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아들딸들에게 마음의 나무를 한 그루 같이 심자고 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이 글이 여러분의 삶에도 손전등 불빛이, 작은 묘목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전부터 엄마는 내가 ‘너무 좋아하는’ 존재였다. 그에 비해 아버지에 대한 상은 뚜렷하지 않다. 차라리 예전에는 정말 극복해야 할, 부정적인 의미로 뚜렷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으니 그나마 다행인 건가. 내 성격이나 행동규범을 만든 것은 절반 이상이 아버지임을 안다. (그래서 아버지가 더 거부감이 들기도 했다.) 그러니 아버지를 안다는 건 나를 안다는 것, 좋은 면과 나쁜 면을 담담히 보고 받아들일 수 있다는 뜻이 되겠군. 큰 과제 하나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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