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엔 가끔 우렁각시가 다녀간다.
어느 날 보면 음식물 쓰레기통이 비워져 있고 어느 날은 욕실 유리창 얼룩이 지워져 있다. 그러느라 하루 종일 욕실 불이 켜져 있거나 하는 일도 발생하지만 말이다.
우렁각시의 정체는 바로 같은 아파트 라인 3층에 사시는 나의 친정아빠. 남편 없이 혼자 지내는 임산부 딸이 걱정스러워 매일 아침 첫째를 데리러 오는 것도 모잘라 거기에 우렁각시 노릇까지 하시는 중이다.
평일에는 무거운 임산부 몸을 이끌고 회사를 다니느라 집안일에 전혀 신경 안 쓰는 나는 우렁각시의 도움을 미처 캐치하지 못했다가 주말쯤 돼서 발견하고는 그냥 지나가기 일쑤라 매번 감사 표현도 잘 못 드리고 있다.
첫째를 돌 직후부터 지금까지 맡아주시는 친정 부모님의 노고에 늘 감사해야지 생각하면서 친정엄마께는 고마운 마음을 많이 간직하고 있는데 늘 나도 모르게 친정아빠의 역할은 과소평가하고 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본다.
엄마의 서브 역할을 하시던 아빠는 엄마가 일을 시작하시고서 비정기적인 외출이 잦아지면서 서브가 아닌 메인에 준하는 육아를 하고 계시는 중이다.
샤워를 시켜주거나 머리를 묶어주거나 그런 세심한 여자아이 케어에는 서툴지만 오후 픽업, 책 읽어주기, 간식 챙겨주기, 남편 없는 날 나의 출근 시간 맞춰 아침에 데릴러오기 등등 은 온전히 아빠의 몫이다.
퇴직 후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계신 아빠가 계셔 육아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게 사실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생각해본다. 아빠의 존재로 지난 4년 동안 엄마 역시도 집안일 외 여러 가지 일을 챙기면서도 첫째 아이 캐어를 해주실 수 있었다.
부모님의 사랑은 정말 끝이 없는 걸까. 손주는 안 봐줄 거다 라며 미리 못을 박아두시는 부모님들도 있다던데 우리 부모님은 너무나 기꺼이 조손 육아를 감당해주시고 거기에다가 임산부 딸 밥 챙기랴 집안일 도와주시랴 시집간 딸이 친정 쫓아 이사 온 거까지 너무 좋아해 주신다.
내가 회사생활을 지금까지 지속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자 일등공신이었던 부모님. 그래서인지 퇴사일 지모를 휴직을 앞둔 딸을 보며 못내 서운해하시고 경단녀가 될 딸이 걱정되어 아까워하신다.
이런 친정 부모님께 사위인 남편이 좀 더 가슴 깊이 감사했으면 하고 생각한다. 매월 드리는 양육비로는 절대 할 수 없는 그런 감사의 마음 말이다. 그러다가 다시 생각을 고쳐 먹는다.
“나부터 잘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