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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의미부여 Aug 18. 2020

우렁각시가 다녀가는 우리집

우리집엔 가끔 우렁각시가 다녀간다.

​어느 날 보면 음식물 쓰레기통이 비워져 있고 어느 날은 욕실 유리창 얼룩이 지워져 있다. 그러느라 하루 종일 욕실 불이 켜져 있거나 하는 일도 발생하지만 말이다.

​우렁각시의 정체는 바로 같은 아파트 라인 3층에 사시는 나의 친정아빠. 남편 없이 혼자 지내는 임산부 딸이 걱정스러워 매일 아침 첫째를 데리러 오는 것도 모잘라 거기에 우렁각시 노릇까지 하시는 중이다.

​평일에는 무거운 임산부 몸을 이끌고 회사를 다니느라 집안일에 전혀 신경 안 쓰는 나는 우렁각시의 도움을 미처 캐치하지 못했다가 주말쯤 돼서 발견하고는 그냥 지나가기 일쑤라 매번 감사 표현도 잘 못 드리고 있다.

​첫째를 돌 직후부터 지금까지 맡아주시는 친정 부모님의 노고에 늘 감사해야지 생각하면서 친정엄마께는 고마운 마음을 많이 간직하고 있는데 늘 나도 모르게 친정아빠의 역할은 과소평가하고 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본다.

​엄마의 서브 역할을 하시던 아빠는 엄마가 일을 시작하시고서 비정기적인 외출이 잦아지면서 서브가 아닌 메인에 준하는 육아를 하고 계시는 중이다.

​샤워를 시켜주거나 머리를 묶어주거나 그런 세심한 여자아이 케어에는 서툴지만 오후 픽업, 책 읽어주기, 간식 챙겨주기, 남편 없는 날 나의 출근 시간 맞춰 아침에 데릴러오기 등등 은 온전히 아빠의 몫이다.

​퇴직 후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계신 아빠가 계셔 육아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게 사실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생각해본다. 아빠의 존재로 지난 4년 동안 엄마 역시도 집안일 외 여러 가지 일을 챙기면서도 첫째 아이 캐어를 해주실 수 있었다.

​부모님의 사랑은 정말 끝이 없는 걸까. 손주는 안 봐줄 거다 라며 미리 못을 박아두시는 부모님들도 있다던데 우리 부모님은 너무나 기꺼이 조손 육아를 감당해주시고 거기에다가 임산부 딸 밥 챙기랴 집안일 도와주시랴 시집간 딸이 친정 쫓아 이사 온 거까지 너무 좋아해 주신다.

​내가 회사생활을 지금까지 지속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자 일등공신이었던 부모님. 그래서인지 퇴사일 지모를 휴직을 앞둔 딸을 보며 못내 서운해하시고 경단녀가 될 딸이 걱정되어 아까워하신다.

​이런 친정 부모님께 사위인 남편이 좀 더 가슴 깊이 감사했으면 하고 생각한다. 매월 드리는 양육비로는 절대 할 수 없는 그런 감사의 마음 말이다. 그러다가 다시 생각을 고쳐 먹는다.

“나부터 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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