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예술가의 동시대 미술 비틀어보기, 결국엔 사랑

-미술관에 가면 머리가 하얘지는 사람들을 위한 동시대 미술 안내서-

by 류승화
이 글은 2025년 8월 5일에 지역 도서관 지혜학교 <바나나로 보는 현대 미술 이야기> 강좌의 독후감 과제로 발표한 글입니다. 책 내용을 요약하고 간단한 감상을 쓰는 것이어서 글에 책의 내용이 많이 인용되어 있습니다.

미술 분야에는 문외한에 가깝지만 그래도 유명한 전시를 한다고 하면 궁금해서 아주 가끔 가보는 정도로 살고 있다. 게으름 탓에 대부분의 공연, 영화, 전시의 사전 정보 없이 갔다가 나중에 찾아보는 유형인지라 책 제목을 보고는 ‘내 얘기인데’라는 생각을 했다. 출판사에서도 나 같은 독자를 노리고 저런 제목을 붙였을 것 같다. 원제가 궁금해서 찾아봤더니 좀 더 담백한 느낌의 ‘Playing to the Gallery: Helping Contemporary Art in Its Struggle to Be Understood’였다.


저자는 본 강좌에서도 언급된 적이 있는 터너상 수상자인 도예가이자 태피스트리 예술가인 그레이슨 페리이다. 크로스 드레서로도 유명하다고 한다. 옷 입는 취향이야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라는 생각을 하기에 그런가 보다 했는데 외려 그레이슨 페리 본인은 성별의 사회적 경계를 충분히 인지하고 있으면서 또 그 경계를 넘어선 자기를 의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기본적인 정보 외에 저자에 관해 아는 바 없이 책을 펼쳤다가 처음엔 살짝 당황했다. 책에는 동시대 예술에 대한 유머와 풍자가 가득해서 곧이곧대로의 친절한 안내를 바랐던 나의 기대를 저만치 비껴갔다. 내가 모르는 숱한 예술가와 작품에 대한 언급 외에도 책의 절반 이상은 저자의 말대로 친한 친구를 놀려 먹듯 예술계의 최전선에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풍자와 농담 투의 글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후반부는 예술가로서 자신의 업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을 담아 예술의 갖는 의미를 논하고 있기에 차분하게 생각해 볼 수 있었고, 이로 인해 앞부분에서 언급한 이야기를 다시 곱씹어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저자는 누구나 예술을 즐길 수 있고 예술하는 삶을 살 수 있지만, 예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를 위해 이 책에서 예술에 관한 질문을 던지며 예술 또는 작품 자체보다는 예술계를 둘러싼 사회 정치적 역학 관계에 보다 치중하여 논의를 전개한다.


예술 작품을 평가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저자는 미술사적 의미, 미학적 세련됨을 고려할 수도 있겠지만 금전적 가치와 대중적 인기도 평가에 한몫을 한다는 현실적인 면을 언급함으로써 현실에서 피해 갈 수 없는 ‘예술 산업’의 씁쓸한 면도 비추어준다. 덧붙여 우리가 ‘미적 가치’ 혹은 ‘아름다움’이라는 두루뭉술한 말로 예술 작품을 논할 때도 그 말이 내포하는 바를 한 걸음 떨어져서 성찰할 것을 주문한다. 미(美) 개념은 배후에 온갖 차별과 위계질서를 내포한 채 존재하고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논하는 아름다움이란 익숙함의 다른 표현일 수도 있음을, 소위 전문가의 언급이나 돈의 권위로 인해 평가된 것일 수 있음을 언급하며 조건화된 아름다움은 아닌지 생각해 보라고 한다.


저자는 세상의 많은 소중한 것들이 ‘돈’이라는 단일화된 가치 체계 속에서 서열화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예술 또한 예외가 아님을 논하기도 한다. 예술품을 사는 것을 페라리나 핸드백 사는 일과 유사하게 여기는 벼락부자 수집가의 사례나 예술계와 관련된 젠트리피케이션의 사례를 들기도 하고, 심지어 예술의 상품화에 반기를 드는 예술품 또한 상업화되고 있음을 ‘안티 마케팅 시장’, ‘정당한 분노의 돈’이라는 역설적인 단어로 꼬집는다.


마르셀 뒤샹 이후로 일견 예술의 경계가 없어진 듯 보이지만 저자는 오히려 그럴수록 예술 및 예술가의 의미와 경계에 관해 묻고 성찰해야 한다고 말한다. 오늘날에는 동시대 예술을 충격, 파격, 최첨단의 어떤 것이라고 보아 기존의 틀을 깨는 것에만 의미를 두는 경향으로 인해 조악한 작품과 무도한 작가도 등장하고, 심지어 어느 테러리스트가 실패한 자신의 테러 시도를 행위예술이라고 말한 사례도 소개한다. 이런 상황에서 오늘날 예술가들에게 남은 가장 충격적인 수단이자 의미는 오히려 ‘아름다움’과 ‘진지함’이 될 수 있다고 저자는 제안한다. 사진이 나오면서 회화에 철학적 도전을 제기했듯, 최첨단 기술이 난무하는 요즘에도 비슷한 고민을 해 볼 수 있다. 저자는 ‘어떤 작품이 기술의 새로움에 너무 많이 의존하고 있다면, 그 기술이 일상적인 것이 되었을 때 그 작품은 껍데기만 남게 된다.’라는 말로 이에 대한 견해를 밝힌다. AI로 글과 그림, 영상을 제작하고 심지어 작품 공모전에 ‘AI 분야’가 생기고 있는 요즘, 기술과 예술의 관계에 관한 고민이 더 깊어져야 할 것 같다.


책의 후반부에서 저자는 이 책이 예술계에 보내는 사랑의 편지임을 밝히며 예술과 예술가의 의미를 논한다. 청소년을 위한 아트룸 프로그램과 헨리 다거 이야기(*저자가 책에 소개한 아웃사이더 예술가. 수위로 재직하며 소설을 쓰고 소설에 들어갈 삽화를 제작햇으나 사후에 발견됨.)를 통해 예술이란 우리가 살면서 겪는 상처를 긍정적인 경험으로 승화시켜 주는 것이며, 내면 깊은 곳에서 흐르던 자기표현 욕구와 창조성을 발휘함으로써 삶의 고통에 의연하게 대처하고 풍성한 삶을 살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저자가 생각하는 예술가란 ‘예술가’라는 명칭과 껍데기에 현혹되지 않고 예술을 진정으로 즐기는 태도를 지니고 있으며 본인의 창조적 에너지를 부단한 노력으로 잘 가꾸어 나가는 사람이다. 저자가 보기에 예술가란 다른 사람들은 알아보지 못하는 것을 알아보는 독창성을 지닌 사람으로, '새로운 클리셰'를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이와 관련하여 알랭 드 보통이 ‘진정으로 프루스트에게 경의를 바치기 원한다면 자신의 눈으로 프루스트의 세계를 보는 게 아니라 프루스트의 눈으로 자신의 세계를 봐야 한다.’는 말을 인용한 점이 인상 깊었다. “옛날에 그들은 지혜를 사랑했다. 오늘날 그들은 ‘철학자’라는 칭호를 사랑한다.”라는 키르케고르의 말도 인용하며 온갖 매체들의 범람 속에서 ‘예술’보다 예술가라는 칭호를 더 선호하는 오늘날의 경향을 지적한다. 생성형 AI에 의존한 창작, 표절과 도용을 일삼는 글쓰기 및 다양한 창작행태들이 웹상에 존재하는 요즘에 깊이 새겨볼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독한 풍자와 가벼운 농담을 넘나들며 동시대 예술과 예술가를 논하긴 했지만, 그레이슨 페리가 예술에 관해 기본적으로 지닌 태도는 ‘사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에게 예술이란 '내면에 자리한 아늑한 오두막'으로, 그 안에서 부단히 세계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자기를 새롭게 발견하는 공간이다. 책의 결론 부분에서 언급한 진지함, 성찰, 본질, 의미 등은 일견 고루해 보이는 단어들이지만 예술을 비롯한 어떤 분야에서든 지속적으로 중요하게 견지해야 할 가치라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도 나는 미술관에 가면 자주 머리가 하얘지는 경험을 하겠지만, 하얘진 머릿속 구석진 곳에는 채찍(*이 책에 보면, 예술과 예술 아닌 것을 가르는 여덟 가지 경계*를 설명하며 채찍질을 하는 삽화를 익살스럽게 그려두고 있다. 이는 중요한 것을 각인시키기 위해서 지적인 설명 외에 정서적 자극을 준답시고 채찍으로 때렸다는 종교단체의 의식을 비튼 것이다. -여덟 가지 경계: 1. 갤러리 혹은 예술의 맥락 속에 있는가? 2. 다른 무언가의 따분한 버전인가? 3. 예술가가 만든것인가? 4. 사진-미소짓지 말 것, 거들먹거리는 포즈일 것, 크기가 클 것, 5. 한정판 검증법 6. 핸드백과 힙스터 테스트 7. 쓰레기 하치장 테스트 8. 컴퓨터 아트 테스트)을 들고 서 있는 그레이슨 페리가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웃고 있을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창작희곡] 시지프의 희희낭락 4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