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퍼펙트 데이즈를 보고
이른 아침에 눈을 뜨면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양치를 한다. 수염을 깎은 후 화초를 돌본다. 밖으로 나가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마시고 카세트테이프 음악을 들으며 출근한다. 그의 일터는 도쿄의 화장실이다. 화장실의 쓰레기를 줍고 변기를 구석구석 세심하게 닦는다. 이 모든 일은 화장실에 들르는 사람들에게 불편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이루어진다. 청소가 끝나면 목욕탕에서 씻고 단골 식당에서 밥을 먹는다. 간혹 단골 술집에 들르기도 한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 오면 윌리엄 포크너의 책을 읽다가 졸리면 잠에 든다. 그리고 특별한 일이 없다면 비슷한 일과를 반복한다.
히라야마, 그의 하루는 반복되고 평온했지만 지루하지 않았고 그가 만들어내는 일상의 정갈함과 편안한 침묵을 따라가다 보면 함께 묵언 수행을 하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영화에서는 같이 일하는 동료와 그의 여자 친구, 집 나온 조카와 그 조카를 찾으러 온 여동생, 호감을 가졌던 술집 주인과 그의 전 남편에 관한 단편적인 에피소드들이 나온다. 이러한 소소한 사건들을 통해 그의 과거와 성격을 짐작할 여지가 있기도 했지만 그것이 영화에서 크게 중요하게 여겨지지는 않았다. 보이는 그대로 따라가며 히라야마의 고즈넉한 하루를 함께 느끼는 것만으로도 영화는 충분히 좋았다.
영화 제목은 <완벽한 날들>이다. 완벽한 날들을 이어가면 완벽한 삶이 될 것이다. 히라야마는 조카 니코에게, 니코 엄마(여동생)와 자기가 사는 세상은 많이 다르다고 한다. 서로 다른 세상을 사는 사람들에게 완벽한 날들, '완벽한 삶'의 의미는 다를 것이다.
얼마 전, 모임에서 스치듯 '성공'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학창 시절에 공부에 매진해서 그럭저럭 좋은 대학을 졸업한 후 그럭저럭 괜찮은 곳에 취업을 하여 승진하는 것이 성공인가? 이 사회(조직)가 설정한 직렬 체제에서 우위에 있는 서열을 점하는 것이 성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나는 어느 위치에 있든 그 위치와 자리에 맞는 태도와 역량을 제대로 갖추는 것, 혹은 갖추려고 노력하는 것이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속 히라야마만 해도 그렇다. 그는 도쿄의 화장실 청소를 하는데 정시에 출근하여 최선을 다해 청소를 한다. 심지어 스스로 청소 도구를 제작하기도 하고 변기를 구석구석 안 보이는 곳까지 반사경을 이용해 닦는다. 내가 우리 집 화장실을 청소하는 것보다 더 깨끗하게 청소하는 히라야마의 모습에 감탄을 했다.
같이 일하는 동료는 그렇게까지 열심히 하는 히라야마를 이해하지 못한다. "뭘 그렇게까지 하세요? 어차피 더러워지는데."라고 핀잔을 주듯이 말한다. 맞다. 그렇게 열심히 해도 화장실은 얼마 못 가 더러워지고, 화장실 청소 만족도에 따라 성과급을 더 주지도 않을 것이다. 히라야마의 동료가 보이는 류의 태도와 말은 흔하다. "월급 더 주지도 않는데.", "그런다고 누가 알아줘?"처럼.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내가 제일 잘 안다. 타인의 인정에서 오는 쾌감은 강하며 중독성도 있다. 하지만 더 본질적인 것은 스스로가 진실되게 인정하는 보람과 뿌듯함이며, 이것이 충족될 때 그의 하루는 완벽해질 것이다.
수완이 좋고 요령이 있는 사람들은 비교적 일을 수월하게 처리하기도 하는데, 보이는 것에만 신경 쓰느라 정작 내용이 부실한 것도 있지만 어떤 경우는 내실도 있고 결과가 훌륭하기도 하다. 반면 우직하게 일을 하지만 수완이 그다지 좋지 않은 사람의 경우에는 들인 공에 비해 결과가 초라하기도 하고 심지어 요령의 부족으로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누군가는 이들 중 수월한 일처리에 내실 있는 결과를 챙긴 쪽을 성공이라고 하겠지만, 나는 어느 쪽이 더 성공적인 삶인지, 단순하게 비교해서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누군가의 최선을 단기간의 관찰로 폄하하는 것 같아서이다. 다만, 어느 쪽의 삶이 더 흥미로운지를 고르라면 우직하게 일을 하는 쪽을 선택하겠다. 쉽지 않은 길을 계속 걸어가게 하는 원동력이 무엇인지가 궁금하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나에게 인상 깊게 다가온 것은 하루 일과를 끝낸 히라야마가 잠들기 전에 책을 읽는 장면이었다. 크게 뭘 한 것 같지 않지만 매일이 전쟁 같다고 여기는 나는, 집에 오면 여가 시간에 폰을 들여다보며 최대한 집중을 요하지 않는 읽을거리나 볼거리를 보다 잠든다. 그런 나도 간혹 책을 읽는 경우가 있는데, 직업적 쓸모 때문에 허겁지겁 정보를 찾아서 무엇인가를 제작하기 위해서 읽는다. 그래서 히라야마가 여유롭게 문학책을 읽으며 마무리하는 하루가 더욱더 부러웠다.
영화의 색감은 왜 이리 아름다운가? 동틀 무렵 창에 비치는 오로라와 같은 어렴풋한 진초록빛, 밤에 포크너의 책을 읽느라 켜둔 작은 전등의 불빛으로 평범하기 그지없는 작은 다다미방을 비춘 화면은 잘 찍은 예술 사진처럼 보였다.
히라야마의 하루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하늘 보기, 나무 보기'와 '사진 찍기'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일하는 도중 틈틈이, 퇴근할 때, 집에 올 때 등 그는 수시로 하늘을 보고 나무를 보고 순간의 아름다움을 사진기로 포착한다. 흔들리는 나뭇잎 사이로 일렁이는 햇살을 뜻하는 일본어를 '코모레비'라고 한다는데, 영화에서 히라야마의 시선은 코모레비에 머무를 때가 많다. 나 또한 햇살과 자연이 만나 어우러지는 풍경을 만나면 그 아름다움에 매혹되어, 하염없이 바라보곤 했기에 더 공감이 되었다.
이 영화의 모든 장면이 좋았지만, 특히 마지막 장면은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이 장면을 연기한 배우님께 존경을 보낸다. 묵언 수행을 하는 것 같던 주인공 히라야마의 웃음과 눈물. 웃으면서 울고, 울면서 웃는다. 이 역설적인 장면이 그저 무조건 이해된다는 것이, 보면서도 신기했다. 그렇게, 숱한 사연과 북받치는 설움을 무심하게 긍정하며 최선을 다하는 그의 하루하루는 완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