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하반기에 지역 도서관에서 희곡을 읽고 쓰는 프로그램(희희낭락)에 참여하여 쓴 글입니다.
2024년 10월 18일에 완성하고, 2024년 11월에 프로그램을 마치며 함께 책(비매품-저작권 보호)으로 엮은 글입니다.
글쓴이: 류승화
등장인물: 정원, 희영, 준희, 선생님
회사 점심시간 티타임. 사무실 한켠에 작은 티테이블과 의자 3개가 있다. 정원이 서서 커피를 내리고 있다.
정원: (커피 내린 것을 머그잔에 따르며) 다들 커피 한 잔씩 하고 일해요. 어서들 오세요.
희영과 준희가 차례대로 등장한다.
희영: 앗, 벌써 다 내렸네. 오늘은 살짝 달달한 게 생각나긴 했지만, 내린 커피도 좋아.
준희: 나도 같이 한잔해. 오우,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희영과 준희는 의자에 앉아서 커피를 천천히 마신다. 정원은 그들 옆에 서서 커피를 마신다.
준희: 음, 커피 한 모금 마시니까 좋다.
희영: 글쎄, 어제 우리 집 중딩 딸이 친구들하고 대화 나누는 것을 우연히 들었는데, 죽고 싶다는 얘기를 서로 아무렇지 않게 하길래 깜짝 놀랐잖아.
준희: 그래? 무슨 얘기를 하다가?
희영: 그게…. 앞에서 한 얘기는 잘 못 들었고, 죽고 싶다는 말에 너무 놀라서 나중에 딸한테 죽고 싶다는 얘기가 그렇게 쉽게 나오냐고 물어봤지.
정원: 그랬더니? (의자에 앉아서 몸을 희영 쪽으로 기울인다.)
희영: 시큰둥하게 내가? 정말 그랬어? 라고 하던데. 그냥 입버릇처럼 툭 나온 말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 그래도 그렇지. 죽고 싶다는 얘기를 그렇게 쉽게 할 수가 있을까? 요즘 애들 정말 모르겠다.
준희: 얼마 전에 우리 애랑 대화했는데 걔가 그러데, 청소년 시기에 한 번쯤 자살을 생각 안 해 본 사람이 있냐고. 생각해보니 나도 사춘기 때 뭐 하나 잘하는 게 없는 것 같은 생각 때문에 힘든 적이 있었어. 자존감은 팍팍 떨어지지, 뭘 해 먹고 살지 미래는 막막하지, 철없는 마음에 잠시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은 있어.
희영: 하긴.
정원: 그래? 다들 그래봤단 말이야? 난 사춘기와 2~30대를 지나면서 한 번도 그런 생각을 안 해 봤어.
준희: 오~ 어릴 때부터 긍정적이셨군요, 역시 타고났나 봐.
정원: 타고나긴. 요즘도 자살 충동이나 그런 건 여전히 없는데 가끔 인생의 허무함이랄까, 무의미함이 불쑥불쑥 올라올 때가 있어. 그럴 때면 허무함을 어떻게 이겨낼지 마음이 아득해진다니까. 그러다 바쁘게 일하다 보면 잊고 살지. 해결이 아니라 잠시 잊고 사는 거야.
준희: 맞아, 난 한창 바쁠 때는 아무 생각이 없다가 좀 여유로워지면 문득 그런 생각이 나기도 해.
희영: 난 애가 줄줄이 셋에다 막둥이가 너무 어려서 아직도 매일 전쟁이야. 인생이니 의미니 하는 말도 여기서나 듣지. 평소에는 그런 생각할 틈조차 없어. 나중에 애들이 어느 정도 크고 나면 고민을 해볼까, 아무튼 지금은 그래. (희영은 커피잔을 놓고 퇴장)
준희: (희영과 함께 일어서려다 말고 다시 의자에 앉는다.)그러지 말고, 여기 앉아서 이거 한번 볼래? (핸드폰을 꺼내서 뒤적이다 정원에게 핸드폰 화면을 보여주며) 지난번에 우리 같이 그림책 만들기를 했던 곳에서 이번에는 희곡을 낭독하고 쓰는 프로그램을 한다고 해. 제목은 ‘희희낭락’, 희곡을 낭독하는 즐거움이라는 뜻인가 봐. 내가 링크 보내줄게, 봐봐.
정원은 핸드폰 화면을 켜고 스크롤을 올리며 화면을 바라본다.
정원: 오~ 이런 프로그램도 있네. 재미있겠다.
준희: 그치? 그치?
정원: 희곡을 읽는 모임이면 덜 부담스러울 텐데, 쓸 생각을 하니 좀 아득해지네. 난 소설이나 시 같은 문학 장르는 잘 안 읽어서. 내가 은근히 서사 구조에 취약해서 영화를 봐도 꽂히는 장면, 대사, 주제 의식 이런 건 머릿속에 남는데 주인공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전체 줄거리나 결말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아.
준희: 들고 다니는 책들이 주로 비문학 쪽이긴 하더라. 난 그런 책들 머리 아픈데.
정원: 뭐랄까, 효율적이잖아. 이를테면 이런 거지.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라는 찰리 채플린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오히려 멀리서 보면 비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희극이다, 라는 말이 우리의 삶을 더 적확하게 표현한다. 왜냐하면 아무리 비참한 시기를 살아낸 인생이어도 구체적인 장면에서는 아름답고 빛나는 순간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몇 줄로 정리가 되는 것을 작가는 수백 페이지에 걸쳐서 힘들게 쓰고, 독자도 오랜 시간을 투자해서 읽어야 하는 게 소설이라고 생각하니 괜히 읽기가 싫어지더라고. 기껏 힘들여서 읽은 게 작가가 창조한 허구의 인물과 가상의 상황이잖아. 그래서 단도직입적으로 자기의 생각을 쓰는 에세이류를 주로 읽거나, 이야기라면 다큐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들을 더 선호하지. 현실의 이야기들이 허구보다 더 흥미진진해.
준희: 엥? 난 어릴 때부터 만화, 드라마, 소설에 빠져 살았어. 지금도 웹툰 볼 때는 우리 애랑 죽이 척척 잘 맞아서 같이 봐. 정원 씨처럼 효율성을 따지려는 생각 자체를 안 해봤어. 그냥 이야기 자체가 재미있고, 다음 전개가 어떻게 될지 너무나 궁금하고. 허구라도 등장인물들에 생생하게 몰입해서 나라면 어떤 말을 했을까, 그 상황에서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뭐 그런 걸 생각하다 보면 다른 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지. 그 자체로 재미가 있는 거지. 이 프로그램 같이할 생각 없어? 내가 글쓰기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희곡 쓰기를 하다 보면 이야기를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정원: 희곡 쓰기라…. 한번 생각해 볼게.
(조명이 꺼진다.)
https://brunch.co.kr/@myryou/7
* 수강생들의 작품은 금천구립도서관에서 [희희낭락]이라는 책으로 소장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