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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 슬 Nov 08. 2018

며느리의 일기장 26

쏼라 쏼라 하고 오셨어요?

 나는 언어 공부하는 것을 좋아한다.

고등학생 때는 중국어를 좋아해서 그 시간만큼은 반에서 제일 열심히 하려고 노력했었다.

더불어 그 시절에는 잘 하진 못했지만,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대학시절까지 꾸준히 펜팔도 해왔었다.

대학에 가서는 영어에 더 빠져서 자연스럽게 원어민 교수님들과 친해졌었고, 그 인연으로 원어민 교수님 전담 조교도 잠시 했었다.

아쉬운 점은 언어 공부를 꾸준히 하지 못하고, 하다가 중단되었다는 것이다.


 첫 취업 후 여유가 생기면 언어 공부를 새로 시작하려 했으나 그럴 틈이 없었다.

결혼 후 어느 정도 안정을 찾고 난 후 나는 다시 중국어 공부를 시작했다.

중국 친구가 있었기에 중국어 전화를 했었는데 그 시간이 나에게 힐링이 되었다.

그래서 더 열심히 하려 하고 애착을 갖는 시간이었다.

중국어 전화를 하는 날, 시댁과 약속이 생겨 시간을 조금 미뤘다.

그러나 어른들의 술자리가 길어졌고 약속한 시간이 다가와 잠시 양해를 구하고 나와서 중국어 전화를 했다.


 나름대로 짬을 내서 계획을 이뤘다는 생각에 뿌듯했는데, 시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쏼라 쏼라 하고 오셨어요~?" 표정은 비아냥 거리는 듯하였다.

"네. 오늘 중국어 전화하는 날인데 지금 아니면 늦을 것 같아서요."라고 말씀드렸다.

옆에 계셨던 어른들께서 "며느리가 참 여러 가지 열심히 하네. 보기 좋아."라고 하셨고, 시어머니께서는 또 탐탁지 않아 하셨다.


 시어머니께선 항상 내가 뭔가 배우고 도전하기를 원치 않으셨다.

공부, 운동, 취미생활을 시작하면, "이번엔 또 뭘 하세요~?"하시며 비꼬셨다.

그리고는 "너는 할 줄 아는 거 많아서 좋겠다! 요즘 애들은 하고 싶은 건 다 하고 살아서 얼마나 좋아! 우리 아들도 하고 싶은 거 많을 텐데."라고 하셨다.

남편이 하고 싶어 하는 게 많다는 건 나도 알았다.

하지만 남편은 회사 일로 매일 같이 야근했고, 그래서 여유가 없어 시작하지 못한 것뿐이었다.

나는 남편의 자기개발을 반대한 적이 없었다.


 이러한 일이 반복되자 나는 어느 순간부터 새로운 것을 배우거나 시작하면 시어머니 모르게 하려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뭐 하나 자유롭지 못했다.

그저 사생활 하나도 존중받지 못하고 매번 감시당하는 CCTV와 함께하는 삶 같았다.

가끔 멍하니 집에서 키우는 미니 거북이와 물고기를 구경하고는 했는데, 잠깐 수면 위로 숨을 고르고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참 부러웠다.

나도 잠깐 숨 좀 돌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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