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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 슬 Nov 09. 2018

며느리의 일기장 27

너네 엄마가 나한테 뭐 줄 거 없니?

 친정 엄마께서는 내가 어려서부터 자영업을 하셨다.

업종이 대개 비슷하긴 했지만 조금씩 바꿔가시며 꾸준하게 해오셨다.

그러던 중 하시던 장사를 잠시 쉬시고 휴식기를 갖기로 하셨고, 가게를 정리하셨다.

친정 엄마께서는 정리하며 괜찮은 가전제품들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그 모습을 본 시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너네 엄마가 나한테 뭐 줄 거 없니?"

내가 지금 잘못 들은 건가 싶어, "네? 저희 엄마께서 어머니께 뭐 드릴 것 없냐고 물으신 거죠?"라고 되묻게 되었다.

시어머니께서는 "그래. 너네 엄마가 나한테는 뭐 줄 거 없니?"


 내가 결혼 한 후로 약 9개월간 엄마께선 거의 매달 우릴 통해 과일이며 이것저것 시어머니께 보내셨다.

내가 "이렇게 좋은 건 엄마랑 아빠 드시지 왜 자꾸 보내요? 이런 거 안 보내도 되니까 부담 갖지 마요."라고 말씀드릴 때마다 엄마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다 너 잘 부탁한다는 거지. 그냥 가져다드려. 너는 엄마처럼 힘들게 시집살이 안 했으면 좋겠어."라고.


 친정 엄마의 '우리 딸 잘 봐주세요.'라는 결국 "너네 엄마가 나한테 뭐 줄 거 없니?"로 변질되어 돌아왔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라는 말처럼 엄마의 호의는 시어머니께 당연한 권리가 된 것이었다.

진짜 속이 불타오르고 너무 화가 나서 참기가 어려웠다.

시어머니께서는 엄마의 마음을 받으실 때마다 "너네 엄마는 뭐 이런 걸 다 보내셨니? 엄마께 감사하다고 전해드려라."라고 하시거나, "너네 엄마는 왜 전화를 안 받으시니? 내가 감사하다고 하려 했는데 전화를 왜 안 받니?"하셨다.


 엄마께서는 고정 손님이 항상 계셨고, 매일 같이 바빴기 때문에 평소에도 연락하기 여러운 경우가 많으셨다.

그런데 시어머니께서는 '내가 전화했는데 너네 엄마가 안 받아서 말 못 한 거야.'라는 식으로 말씀하시거나, '너네 엄마가 내 전화 안 받아서 기분 상했다.'라는 의미를 담아 말씀하셨다.

내가 비꼬아 들은 게 아니라, 실제로 그런 식으로 말씀하셨다.


 이럴 때에는 나 자신을 탓하게 되었다.

내가 잘 못하고, 내가 부족하고, 내가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해서 우리 부모님께서 욕먹고 나 같은 대우를 당하는 것 같아서 너무 죄송했다.

시댁 식구들이 내 자존감을 낮추는 건 그래도 견딜만했다.

그런데 우리 부모님의 자존감을 낮추는 건 견딜 수가 없었다.

특히나 부모님이 계시지 않는 자리에서 그러는 건 더 비겁하게 느껴졌고, 더 죄송스럽고 힘들었다.

우리 부모님께서는 그 자리에 계시지 않았기 때문에 스스로 방어하거나 항변할 기회조차 없이 누군가의 표적이 되신 거니까.


 내가 모든 일에 대한 원인인 것 같다는 죄책감이 한 번 들기 시작한 후로 계속해서 나를 괴롭혔다.

내 어리석은 선택이 나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을 깎아내리고 있었고, 그 자괴감은 나를 갉아먹고 있었다.

나는 점차적으로 밖에서도 조금씩 조금씩 빛을 잃은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서는 말을 잘 하지 않거나, 맴돌거나 결국에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에 조금씩 압박감이 느껴져서 지인들에게는 "나 대인기피증 생기는 거 아닐까? 아니, 나 지금 대인기피증 생겨나고 있는 것 같아."라고 말하기도 했다.


 사실, 그때의 나를 본 사람들은 잘 눈치채지 못했을 수도 있다.

나는 원래 너무 활달했고, 그래서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할 만큼의 소심함을 보일 뿐이었다.

그런데 정말 나를 오래 본 사람들은 말했다.

"너 요즘 무슨 일 있어? 예전 같지 않네."

그도 그럴 것이 진짜 대인기피증이 생길까 봐 두려워서 발악하듯이 예전의 모습대로 살려고 악을 썼기 때문이다.

진짜 대인기피증이 생겨서 무너지면, 그땐 정말 내 모든 게 무너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정말 다행이고 감사했던 것은, 내 주변에는 항상 나를 좋아해 주고 챙겨주고 아껴주는 좋은 분들이 너무 많았다.

내가 "이혼하자."라는 말과 함께 컴퓨터만 있으면 된다고, 그래서 정말 컴퓨터만 들고나간 내 전 남편의 모습에 충격받아 울면서 죽어야겠다고 힘들어할 때도 내 지인들은 나를 방치하지 않고 내 바로 옆에서 나를 돌봐줬다.

그리고 그 도움은 아직까지도 계속돼서 지속적으로 안부를 묻고, 내 상태가 나아진 것에 대해서 진심으로 다행으로 여겨주고, 지금 내가 새로 시작한 일들을 지지해주고 응원해준다.

그래서 나는 지금 나름대로 멀쩡할 수가 있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내가 지금 글을 쓰고 있는 것도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격려로 이루어졌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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