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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 슬 Nov 12. 2018

며느리의 일기장 29

난 이런 거 다 필요 없다. 돈으로 줘라.

 시어머니 생신 전날, 지인분께서 시아버지 생신 기념으로 케이크를 만드신다기에 같이 만나서 케이크를 만들었다.

중학교 시절부터 취미로 베이킹을 했었지만, 시어머니께서 좋아하실까 싶은 마음에 괜히 더 신경 써서 만들게 되었다.

케이크를 만들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미역국을 끓이고 불고기와 이것저것 생일상을 차리기 위한 음식들을 만들었다.


 다음날 아침, 새벽 4시까지 만든 음식들을 가지고 시댁에 가서 아침상을 차렸다.

시어머니께서는 상차림을 보시더니 "이게 뭐냐?"라고 말씀하셨다.

"어머니 생신 축하드려요. 제가 어머니 생신상 차려드리려고 새벽까지 만들었어요~! 케이크도 제가 만들었어요. 드셔보세요."라고 말씀드렸다.

시어머니께선 상을 한 번 훑어보시곤, "나는 아침 잘 안 먹는다. 바쁘다 그냥 나간다. 그리고 난 이런 거 다 필요 없다. 돈으로 줘라."하시고는 밖으로 나가려 하셨다.


 그 모습을 본 시아버지께서 "며느리가 상 차려왔는데 그러는 거 아니다! 한 입이라도 먹고 가!"라고 하셨다.

시어머니께서는 아버님 말씀에 못 이기듯이 자리에 앉으셨다.

그리고 미역국을 한 번 맛보시더니 싱겁다고 하셨다.

나는 원래 싱겁게 먹는 편이라 혹시 몰라 챙겨간 간장을 넣어드리며 말씀드렸다.

"그러실 줄 알고 제가 간장 준비해왔어요~ 이제 간 맞으세요?"

시어머니께서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그래 이제 됐다."하고는 정말 한 입만 드시고 가셨다.

남편은 내 눈치를 보다가 "잘 됐네. 내가 다 먹으면 되겠다! 나 어제 새벽부터 먹고 싶었어!"하고는 케이크까지 먹고 출근했다.


 시어머니 생신상은 결국 주객전도되어 다른 이들의 배만 채웠지만, 그래도 먹어주는 이가 있어 감사해야 하나 싶었다.

며칠 뒤 다시 찾은 시댁에는 내가 만든 케이크며 음식들이 거의 그대로 있었다.

결국 시어머니는 그 한 숟가락 드시고는 매일 같이 술 약속에 집에서 식사도 하시지 않으셨고, 아가씨들도 나가서 먹고 들어오느라 아무도 내가 차린 밥상에 손도 대지 않았던 것이었다.


 내가 차린 정성은 그렇게 음식물 쓰레기가 되어 결국 개밥이 되었다.

나는 무려 개밥을 위해 12시간 넘게 요리한 셰프가 된 거였다.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앞으로 이 집안의 누구를 위해서라도 생신상은 차리지 않겠다고.

진짜 내 마음을 담은 그 어떤 것도 아닌 돈으로 해결해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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