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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 슬 Nov 15. 2018

며느리의 일기장 33

우리 가족들이 너 만나고 싶지 않데. (완결)

 헤어짐은 일상 속에서 갑자기,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3개월 동안 남편과 떨어져 지내면서 여러 일들이 있었다.

함께 계속해서 살 건지, 아니면 헤어질 건지에 대해서 수많은 이야기들이 오갔다.

그러나 남편은 이제부터라도 시댁과 잘 지내보자며, 가족들과 어떻게 지낼 건지, 명절에는 어떻게 보낼 건지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며 앞으로의 계획을 이야기했다.


 시댁에 나와 어떤 갈등이 있었던지 서로 따지지 말고 그냥 사과하고 앞으로의 일만 생각하고 잘 지내보자고 이야기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명절에는 각자 집에 공평하게 가고, 설에 시댁 먼저 갔으면 추석에는 우리 부모님 댁에 먼저 가겠다고 했다.

그리고 집에는 언제쯤 들어올지도 대략적으로 약속했다.

그런 후 본인도 아직 생각이 완벽히 정리된 게 아니니 다음 주 주말에 다시 이야기하자고 했다.


 그 얘기를 듣고 나는 안심했다.

그래도 이 관계가 끝이 아니고 다시 제자리를 찾고 나도 안정을 찾겠다 싶었기 때문이다.

남편이 옆에 없는 3개월은 불안정하고 또 불안정해서 너무 힘이 들었다.

그래도 이 사람이 내 옆으로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했으니 이제 다 끝났다는 생각에 그날 밤은 편안하게 잠들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곧 다가올 시아버지 생신을 어떻게 축하드릴지 남편과 의논했다.

그 주 주말에 시댁과 함께 시아버지 생신 축하를 위해 외식을 하기로 했다.

시댁과 공휴일 점심 약속이 취소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었던 터라 나는 시아버지 생신 선물에 더욱 신경을 썼다.

남편이 데리러 온다고 했으니 그전에 더 완벽하게 준비하려고 꽤나 애를 썼다.


 시댁과의 약속 당일, 나는 잠깐 친정에 들를 일이 생겨 남편이 오기로 한 시간에 맞춰서 집에 가기로 했다.

약속한 시간의 한 시간 전쯤 전화를 해봤다 그러나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냥 일이 있어서 전화를 못 받나 싶어서 나중에 다시 전화하겠지 싶었다.

집에 도착하기 직전까지 연락이 없기에 좀 늦나 싶어서 집에서 일단 기다리려고 했다.

그러나 집에 가보니 남편이 누워서 TV를 보고 있었다.


 "내가 전화했었는데 안 받길래 바쁜 일 생긴 줄 알았는데, 집에 있었네?"하고 물으니 난데없이 "할 말 있으니까 여기 앉아봐."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버님 생신은? 가족들 기다리고 계신 거 아니야? 가면서 얘기하면 안 되는 거야?"라고 물으니 앉아서 얘기부터 하자는 대답이 다시 돌아왔다.

그 남자의 표정은 심각했고, 나는 다시 불안해졌다.


 "오늘 우리 가족이랑 밥 안 먹을 거야. 엄마랑 얘기해봤는데 우리 가족들이 너 만나고 싶지 않데."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었다.

"나를 만나고 싶지 않다고? 그게 무슨 말이야?"라고 묻자, "우리 가족들이 이제 너 만나고 싶지 않데."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서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묻자 시댁에서 다시는 날 볼 생각이 없으며, 본인도 자신의 가족들을 버릴 수 없기에 내가 아닌 가족들을 선택하겠다고 했다.


 눈물이 흘렀다.

저번 주에 했던 말들은 그럼 뭐였냐고, 분명히 긍정적인 얘기를 들었었는데 한주만에 이렇게 말을 바꾸니까 당황스럽다고 얘기했다.

그러자 비겁하게 "내가 아직 생각이 완벽히 정리된 게 아니니까 다음 주 주말에 다시 이야기하자고 했잖아."라는 대답을 했다.

망치로 머리를 한대 맞은 것 같았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되지 않았고,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울면서 비겁하다고,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나는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말만 반복했다.


 내가 울고 있는 그 상황에서 그 사람은 그냥 대화를 얼른 마무리 짓고 다음 주에 다시 얘기하자며 시댁으로 돌아갔다.

그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해야 되나 고민이 됐다.

친정에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내가 왜 이렇게 된 거며 나는 그동안 뭘 위해서 그 힘든 시간들을 참고 산 건지 수많은 생각이 들었다.

고통스러웠다.


 일주일을 기다리면서 많은 생각을 했고, 그 남자를 다시 만났을 때 뭐라고 해야 할지 생각을 정리했다.

나는 너무 갑작스러움에 소송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고, 그 사람들에게 보상받는다고 과연 내가 행복할까 싶었다.

그래서 그냥 내 명의인 신혼집은 내가 갖고 남편 명의인 차는 남편이 갖고 그렇게 합의이혼하자고 말하기로 했다.

만약에 신혼집도 나누자거나 달라고 하면 그땐 소송을 해서 나도 내걸 지키자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들을 친정부모님께 전달드렸다.


 부모님께서는 그래도 소송하는 게 낫지 않겠냐며, 지난 시간들이 너무 억울하고 분하다고 하셨다.

나는 나중에 후회한다고 해도 지금은 너무 지치고 힘들어서 편하게 끝내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내 말에 부모님께서는 생각이 바뀌게 되면 말해달라고, 주변 인맥을 동원해서라도 도와주시겠다고 하셨다.

부모님도 쉽지 않으셨을 텐데 그래도 날 생각해주시고 걱정해주시고, 내 의사를 존중해주셔서 감사했다. 그리고 너무 죄송했다.


 주말이 되었고, 남편을 만났다.

표정은 굳어있었고 이런저런 얘기를 시작했는데 모두 나에 대한 비난이었다.

내가 시댁 욕을 하고 다녔다는 둥, 그러면서 있지도 않은 거짓말을 하고 다녔다는 둥, 시댁에 해준 게 없다는 둥 이야기를 하는데 오히려 그게 더 거짓 같았다.

나는 거짓으로 얘기한 적이 없었다. 시댁 욕을 했다면 정말 힘들 때 친한 친구들에게 너무 힘들다고 고민을 얘기했던 것이다.

그게 욕이라면 할 말이 없지만, 그럼 내가 그 상황에서 숨통 트일 새도 없이 그냥 참고만 살았어야 하나 싶어서 답답했다.

그리고 내가 시댁에 해준 게 없다니, 그동안 한 노력들이 물거품이 된 것 같아 허망했다.


 그 말들에 내가 반론하자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됐어. 내가 오늘 너랑 얘기 잘 해보고 다시 살지 말지 결정하려고 했는데, 그냥 헤어지자. 너랑 얘기할 가치도 못 느낀다."라는 말을 했다.

나는 끝내더라도 얘기는 잘 마무리 짓고 끝내야지, 감정에 치우쳐서 이렇게 끝내는 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결혼은 장난이 아니고 이혼도 장난이 아니니까.

그러자 그 남자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너 자꾸 내 성질 건드리면 내가 너 어떻게 할지 몰라. 우리 엄마도 나 왜 안 건드리는지 알지?"라고.

남자한테, 그것도 내 남편한테 처음 듣는 말이었다.

너무 무서웠다.


 그래도 잘 어르고 달래 자리에 다시 앉아 이야기하도록 했다.

상대방의 감정이 너무 격한 것 같았다.

그래서 일단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해보라고 했다.

그러자 역시나 나에 대한 비난들을 이어갔다.

그냥 나랑 살기 싫다는 얘기들로 들렸고, 이 사람은 나랑 헤어질 마음을 돌이킬 생각이 없어 보였다.

얘기를 다 듣고 나서 나도 내 생각들을 말했다.

나는 시댁에 대한 거짓말들을 얘기한 적이 없으며, 친구들에게 고민을 얘기하다 시댁 얘기를 한 게 욕이라면 그거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지만 나도 숨 쉴 구멍은 필요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내가 시댁에 해준 게 없다는 말은 너무하다고, 내가 시댁 일이 바쁠 때 가서 도와드리고 그런 건 뭐냐고, 내가 그동안 참고 살았던 건 뭐냐고 물었다.


 그에 대한 대답은 참으로 이기적이고 나에 대한 배려가 없으며, 나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다.

내가 시댁에 대한 욕을 한 게 맞는다고 인정한 거라며, 그리고 내가 시댁 일을 도운 건 퇴근하고 집에 버스 타고 혼자 가는 게 싫으니까 남편을 기다리며 도와주는 척 한 거라고 했다.

당시 시댁 근처 회사에서 일한 적이 있는데, 그 일이 끝나고 집에 가기 전 시댁에 가서 일을 도왔던 게 그 사람 눈에는 집에 버스 타고 가기 싫어서 남편 차 타고 가려고 도운 걸로 보였었나 보다.

정말 답답하고 억울하고 화가 났지만 감정을 억누르고 말했다.

이혼할 거면 집은 내가 갖고 차는 본인이 가져가라고.

그러자 그 남자는 말했다. "응. 다 가져. 난 컴퓨터만 있으면 돼. 오늘 컴퓨터 가져간다."


 그러고는 정말 컴퓨터만 가지고 나갔다.

그러는 모습을 보며 나는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듯이 이야기했다.

"가지 마. 나 두고 가지 말라고. 나한테는 네가 지붕이고 기둥인데, 네가 그렇게 가버리면 나는 비가 오면 그 비 다 맞고, 눈이 오면 그 눈 다 맞고.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라고..."

근데 그 남자는 참 매정했다.

그 말에 "나는 이제 네가 무슨 말을 해도 들리지가 않아. 나 갈게."하고 가버렸다.


 사람들이 힘든 결혼생활을 하다가 지쳐서 이혼하게 되었을 때 왜 일상생활하기에 힘들어한다는지 전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힘든 일에서 해방되면 후련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에 미안함이 들었다.

나는 컴퓨터만 들고 문 밖을 나가는 그 사람의 모습을 보고 난 뒤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눈물이 멈추지도 않았고, 죽어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 와중에 '내가 죽으면 저 사람은 날 보러 올까?'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너무 힘이 들었고, 몇 시간을 울다가 지인에게 전화를 했다.

나와 그 사람 사이에 있었던 일들을 얘기했고, 지금 너무 힘들어서 죽고 싶다고.

너무 감사한 건 그런 나를 걱정해서 위로해주고 달래주고 일단 나를 진정시켜주었다.

진정된 나는 지인을 만나 위로를 받았고, 그분들은 지금까지도 나를 계속해서 챙겨주신다.


 그 사람이랑 헤어지기로 하고 나서 며칠간 회사에 나가지 못했다.

회사에는 이혼하게 되었다고 말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해받지도 못했다.

근데 그런 부분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저 멍했고, 매일 울었고 밥도 먹지 못했다.

그러다가 출근하기로 약속 한 날 아침 준비하다가 정신을 잃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점심시간이었고, 회사에 전화로 상황을 설명하고 출근했지만 시선은 따가웠다.


 그날 저녁 내 상황들을 이야기했고, 회사를 그만두기로 했다.

갑작스러웠지만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앞으로 뭘 하고 지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일단 쉬어야겠다고 생각했고, 집을 두고 친정으로 왔다.

그렇게 쉬면서 안정을 찾고 새로운 일들을 시작했다.

내가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하나둘씩 찾아서 시작했고, 나는 지금 참 많이 괜찮아졌다.

내가 이혼한 사실을 모르고 전 남편의 안부를 묻는 친구들에게는 이혼했다고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한다.


 이혼한 게 이제는 별 흠이 아니라고들 많이 말하지만 어린 나이에 결혼해서 짧게 결혼생활을 마친 나에게는 여러 시선들이 있다.

'어른들 말 안 듣고 결혼해서 이렇게 된 거라고, 다음부턴 어른들 말 잘 들으라고.'

'네가 너무 철이 없었다고. 결혼은 그렇게 쉬운 게 아니라고. 결혼은 현실이라고.'

'그럼 앞으로는 어떻게 할 거야? 결혼 또 할 거야?'

이 밖에도 참 많은 말들을 들었다.

그리고 나를 잘 알고 지냈음에도 그런 얘기를 하는 사람들과는 연락을 끊었다.


 그 말들에 상처받았지만 나는 내 삶을 살기로 했다.

이혼도 해보지 않은 사람들의 말을 듣고 상처받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그 사람들의 영양가 없는 말들을 계속해서 들을 필요는 없으니까.

그냥 내가 잘 살고 앞으로 누구를 만나건, 어떤 삶을 살던 나 스스로에게 충실하기로 했다.

결혼해서 나는 나를 많이 잃었었고, 그 삶은 지옥 같았다.

지금 생각해도 숨이 막이는 삶이었는데, 그 당시 나는 그걸 어떻게 견뎠을까 싶다.

그래도 지금은 내가 행복을 다시 찾을 수 있음에 감사하다.


 나는 어렸고, 그래서 실수했음에는 인정한다.

돌아보니 그 사람들과 나는 맞지 않았고 그래서 결혼생활이 쉽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어린 나이에 그런 걸 판단할 만한 지혜가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내가 다시 결혼하게 된다면 어떤 사람과 해야 할지, 나는 또 어떤 부분을 준비해나가야 할지 조금은 알게 되었다.

가끔 지난날이 떠올라 힘들 때도 있지만 그것도 잠시뿐이다.

지금 내가 사는 삶을 살기에도 충분히 바쁘고 즐겁고 새롭다.

내가 겪은 인생의 두 번째 위기는 이렇게 극복되고 있다.

앞으로 또 누굴 만나고 어떤 삶을 살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현재를 살기로 했다.

Carpe di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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