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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 슬 Nov 14. 2018

며느리의 일기장 32

그래. 밥 먹자.

 이혼하기 전, 그러니까 그땐 내가 이혼하게 될 줄 몰랐던 그때.

나는 공휴일에 시댁에 찾아가 점심을 대접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우나 고우나 내 시댁이고, 남편의 가족이며 나의 가족이기도 하니까.

곧바로 시어머니께 전화를 드려 공휴일에 출근하시는지 여쭤봤다.

시댁에서는 사업을 시작하신지 얼마 되지 않아 바쁘셨고, 공휴일에도 일해야 한다고 하셨다.

그래서 그날 점심을 같이 먹고, 그 이후에 나도 일손을 돕겠다고 했다.


 시어머니께서는 "그래. 밥 먹자."라고 하셨고, 점심시간에 맞춰서 내가 찾아뵙기로 했다.

며칠 뒤,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머니, 아버지랑 얘기해봤는데, 그날 밥 먹는 거 취소해야 할 것 같아. 우리가 너무 바빠서."라고 말하는 남편에게 나도 대답했다.

"아 그럼 나도 가서 도울게! 밥은 일 빨리 끝내고 먹어도 되고, 아니면 다음에 먹어도 되니까. 일단 일이 급하니까 나도 가서 도울게."


 남편은 내 얘기를 듣더니 "아니, 그럴 필요 없을 것 같아. 그냥 우리끼리 해도 되니까 집에 있어."라고 말했다.

근데 그 말투에는 내가 힘들까 봐 쉬라는 걱정이 아닌, 그냥 귀찮다는 식 혹은 정말 내 도움은 필요 없다는 식의 감정만이 담겨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왠지 찝찝했지만 그냥 알았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날 저녁 친한 대학 선배에게 전화가 왔다.

"잘 지내고 있어? 오늘 내가 꿈을 꿨는데, 꿈 내용이 좀 이상해서 전화했어!"

선배의 꿈 내용은 이랬다.

꿈속에서 길을 걷다가 투명한 유리 관에 여자사람 세 명이 더 있었는데, 모두 시체 같았고 박제된 것처럼 전시되어 있어 섬뜩했다고 했다.

그리고 그 옆에 내가 서 있기에 "이 사람들 누구야?"하고 물으니 "응. 내 시댁 식구들이야."라고 답했다고 한다.

그 말에 섬뜩하다고 생각하고 주변을 봤는데 인형인 듯 인형 아닌듯한 이질적인 고양이 두 마리가 섬뜩하게 시체 쪽을 보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마치 시체들에게 조종당하는 느낌이었달까?


 꿈 얘기를 듣고 소름이 돋았었는데, 선배와 이런저런 얘기를 더 하다가 유리관 속 시어머니와 큰 아가씨는 매치가 되는데 나머지 한 명이 누군지 모르겠다고 했었다.

그래서 막내 아가씨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됐고, 그때야 선배는 "난 너네 시댁 막내가 남잔 줄 알았지. 근데 여자였구나. 그럼 그 유리관에 있던 여자 세명이 너네 시댁 식구들 맞나 보다. 그 세 명이 고양이 두 마리를 조종하는 것 같았는데, 그 고양이들은 남자 같았어."라고 말했다.

시댁에 있는 여자들이 남자들(시아버지와 남편)을 조종한다는 건가?


 선배와 통화를 마치고 소름 돋은 게 가시질 않아 한동안 꿈 얘기만 생각해도 계속해서 소름이 돋았다.

그 당시 나와 남편의 사이는 좋지 않았다.

둘 사이에 냉전 상태가 오래가고 있었고, 남편은 시댁 일을 돕는다는 핑계로 집을 나가 시댁에서 지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기간은 이혼 전까지 대략 3개월 정도 됐었다.

나는 당시 지쳐있었고, 남편에게 집에 들어오기를 계속해서 얘기하는 중이었다.


 남편은 언제 들어온다는 말이 없이 그저 우유부단하게 대답할 뿐이었다.

결국 나는 남편에게 이렇게 사는 건 부부의 삶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니 집으로 들어올 걸 약속해줄지, 아니면 나와 그만 살고 싶다면 그만하자고 얘기하던지 결정해달라고 했다.

애초에 남편이 집을 나가 시댁에서 지내게 된 것도 나와 상의 없이 어느 날 통보로 이루어진 것이었기에.


 남편이 없는 집에서 나 혼자 3개월을 보내는 것은 정말 끔찍했다.

안방을 두고 매일 거실에서 혼자 TV를 켠 채로 잠이 들어야 했고, 불면증에 시달렸다.

그리고 아무리 먹어도 살이 빠지고 또 빠져 3개월 동안 15킬로가 빠졌었다.

계속해서 우울하고 무기력함에   회사에서도 업무에 집중을 잘 못하기도 했다.

집에서도, 집 밖에서도 어디 하나 마음 편한 곳이 없었다.

그렇다고 남편이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친정에 얘기하지도 못했다.


 주말에는 친정에 가서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친정엄마께서는 남편은 왜 같이 안 왔는지 물으셨다.

원래 남편은 야근이 잦았고, 바쁜 걸 알고 계셨기에 그냥 일이 바빠서 주말에도 일하느라 같이 안 왔다고 둘러댔다.

친정 아빠는 그런 나를 보며 조금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보시긴 했지만 그냥 넘어가셨다.


 그런 생활을 반복하던 중, 나는 남편에게 이혼을 통보받았다.

그리고 난 친정 부모님께 그 소식을 전해야 했고, 부모님께서는 남편과 시댁을 상대로 소송을 걸자고 하셨다.

친정 부모님께는 시댁에 대한 이야기를 거의 전하지 않았지만, 어느 정도는 내가 겪었던 어려움을 알고 계셨기에 그동안 쌓인 게 많으셨다.

그런데 나는 소송을 선택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보상받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을 만큼 나는 많이 지쳐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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