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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 슬 Nov 13. 2018

며느리의 일기장 31

엄마가 돈 보내줄게.

 결혼 후 우리 부부에게는 경제적 어려움이 몇 번 있었다.

아직 어리기도 했고, 부모님 도움 없이 결혼했기에 자립하는 동안 시간이 필요하기도 했다.

나는 그 시간이 힘들지만 당연한 거라 생각했다.

그래도 열심히 살다 보면 언젠간 자리 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더 열심히 살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하루는 퇴근 후 저녁을 뭘 먹어야 할까 고민하다가 생각해보니 장을 못 봐서 집에 먹을 게 없었고, 내 주머니엔 월급 전이라 돈이 없었다.

같이 벌어도 생활비며 이것저것 지출하면 각자의 용돈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그냥 일단 집으로 가던 길에 시어머니께 전화가 왔다.

"저녁 먹었니?"라는 시어머니의 물음에 "이제 가서 먹으려고요."

시어머니께서는 "뭐 먹을 거니?"라고 하셨고, 나는 "집에서 밥 먹을 생각이에요"라고 말씀드렸다.


 시어머니께서는 "맛있는 거 먹지 왜 집에서 밥 먹니? 오늘도 혼자 먹니?"라고 하셨다.

웬일로 나를 챙기시나 싶었지만, 시댁과 가까운 곳에서 일하는 남편이 종종 시댁에 일을 도우러 갔었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힘들다는 얘기를 하지는 않았나 싶었다.

"네. 오늘도 혼자 먹을 것 같아요. 남편이 계속 바빠서 벌써 한 달 넘게 혼자 먹은 것 같아요."라고 말씀드리니 "엄마가 용돈 보내줄게 그걸로 맛있는 거 사 먹어."라고 하셨다.


 용돈. 나도 자주 드리지 못하는 용돈을 시어머니께 받는 게 불편했다.

갑자기 나한테 왜 이렇게 친절하신지, 내가 이 돈을 받으면 또 나중에 '내가 이렇게까지 너한테 잘해줬는데, 너는 왜 이 모양 이 꼴이니.'라는 소리를 듣지는 않을까 걱정됐다.

그래서 정중히 거절했다.

"괜찮아요 어머니. 저 집에 엄마가 보내주신 반찬 있어서 그거랑 밥 먹으면 돼요. 어머니도 힘들게 버신 건데 마음만 받을게요. 감사합니다."

그래도 시어머니는 결국 내 통장으로 입금해주셨다.

그리고 전화로 말씀하셨다. "엄마가 통장에 돈 넣었다. 가서 맛있는 거 사 먹어라. 굶지 말고."

무슨 일인가 싶었지만, "어머니 감사해요. 남편 요즘 치킨 먹고 싶다 했었는데, 오면 치킨 시켜줄게요."하고 말씀드렸다.


 시어머니와 통화 후 집에 가서 뭘 먹기는커녕 의자에 앉아서 받은 용돈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정말 받아도 되는 건지, 후폭풍은 없을지.

어쩌다가 이렇게 용돈 받는 일도 불편한 일이 되었는지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남편 퇴근 후에 시어머니께서 용돈을 보내주셨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먹고 싶어 하던 치킨을 시켜줬다.

남편은 맛있게 먹었고, 나는 입맛이 없었다.


 잠자리에 누워서도 계속해서 마음이 찝찝했다.

남편과 얘기하던 중, 시어머니께 요즘 힘들다는 얘기를 했다고 들었다.

그리고 시어머니께서 처음으로 우리가 이렇게 힘들어하고 있다는 걸 처음 아셨다는 듯이 반응하셨다 했다.

그동안은 둘이 버니 넉넉한 줄 알았다고 하셨다.

그래서 계속해서 생일엔 생일상 대신 돈으로 달라고 하셨던 거고, 복날이나 월급 날마다 뭘 사줄 건지 물어본 거라고 하셨다고 한다.


 그동안 내가 무리한 요구를 들었을 때에 "저희가 요즘 조금 힘들어서 그렇게는 어려울 것 같은데, 대신 이렇게는 해드릴 수 있어요."하며 차선책을 내놓았을 때에는 듣지도 않으시더니, 남편이 얘기하자 한 번에 이해하셨나 보다.

그래서 나한테 전화해서 용돈을 보내주셨나 싶었다.

어찌 되었든 시어머니의 마음을 받는 게 나에게는 어려웠다.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와 시어머니 사이는 뭘 드리는 것도 불편하고, 받는 것도 불편한, 우리는 가족인데 참 어려운 사이였다.

가족이라는 이름이 참 멀게 느껴지고 그 속에서 이질감이 느껴졌다.

남편의 어머니.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낳아주신 분인데 나는 그분을 제일 어려워했다.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정이 가지 않았다.

그저 그분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했다.

그날 밤에는 '과연 시어머니와의 관계 회복이 가능할까?'라는 질문만 끝도 없이 하다가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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