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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 슬 Dec 17. 2018

아내의 일기장 3

어쩌면 그의 변명을 뒷받침할 그의 어린 시절

 지방의 작은 마을에서 살아온 그의 어린 시절은 현대판 보릿고개였다.

처음부터는 아니었지만, 대부분의 삶이 가난했고 힘들었다.

그래서 가족들이 먹고 싶은 것도, 가지고 싶은 것도 마음껏 누리지 못했다.

내가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 듣기론 내가 어린 시절 스스로가 가난하다고 여겼던 우리 가정의 넉넉하지 못함과는 수준이 달랐다.

정말 굶주렸고, 힘들게 살아왔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대학을 포기하고 돈을 벌어 가족들을 먹여살렸다.

부모님의 빚을 갚았고, 그렇게 시작한 일을 군대 전역 후에도 계속했다.

어린 나이에 시작한 일에 대해 인정받기 시작하고, 사회 구성원으로 자리도 잡았다.

그러던 과정 중 나를 만났고 결혼을 했다.

결혼 후 한 번 직장을 옮겼는데, 그 직장이 너무 바빠 항상 야근을 해왔다.

결혼 생활 중 야근을 하지 않고 일찍 들어오는 달은 체감상 1~3달 정도였던 것 같다.

 

 나는 아무 연고지 없는 곳에서 신혼살림을 차린 터라 외로움을 많이 느꼈다.

거의 매일을 혼자 저녁을 먹고 새벽까지 그를 기다리거나 기다리다 지쳐 잠이 들었다.

함께하고 싶어서 한 결혼이 왠지 더 외롭고 힘들었다.

그런 생활을 반년 정도 했을 때부터 그에게 불만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너무 외롭고 힘들어서 행복하지 않다거나, 조금 더 일찍 들어왔으면 좋겠다는 둥 그의 입장에서는 징징거림에 가까운 그런 불만들을 이야기했다.

 

 나의 징징댐에 그는 항상 같은 말로 대답했다.

"나도 늦게까지 일하기 싫어. 그런데 내가 일이 좋아서 하는 게 아니라 빨리 자리 잡아서 우리 가족 편하게 살았으면 좋겠기에 그런 거야."라고.

그 말을 처음엔 이해했지만, 매일 늦게까지 끝나는 것도 모자라 주말마다 회식한다고 더 늦게 오는 거에 더 지쳐간 나는 점차 이게 누굴 위한 것인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당장 가족으로서 유대감이 느껴지지 않는데, 미래를 위한 경제적 기반을 다지기 위해 밤낮없이 일한다...?

여기서 남자와 여자의 생각 차이가 느껴지는가 싶었지만, 항상 기약 없이 늦게 들어와 잠만 자고 나가는 그를 기다리는 나는 많이 지쳐있었다.

인간관계는 혼자 만들어가는 게 아니라 서로가 함께하는 것이라 그도 함께 지쳐갔다.

그리고 그가 하는 항상 똑같은 대답엔 늘 점점 더 높은 목소리와 화가 담겨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야근 생활에 조금 무뎌진 나는 그저 "오늘 야근해?"라는 질문과 함께 점차적으로 조금 덜 신경 쓰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회사를 옮기게 되면서 우리 가정의 경제적 기반이 흔들리게 되었다.

그의 강력한 주장으로 그동안 계속해서 그가 경제적 관리를 해왔기에 회사를 옮기기 전 그와 충분한 상의를 했었다.

회사를 옮기게 되면 월급 날짜라던가 여러 가지로 경제적 변동이 있을 수 있으니 그거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거나 걱정이 되면 회사를 옮기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큰 변동은 없을 것 같다며 동의했다.

 

 하지만 내가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직장을 다니기 직전 그는 당장 생활비가 없다고 말했다.

한 달의 여유를 두고 상의했던 노력은 헛수고가 되었다.

그때는 분명히 잘 따져보고 대답한 게 맞냐고 재차 확인까지 했었고, 그렇다고 대답하더니 알고 보니 아무런 생각이 없었던 것 같았다.

화가 났지만 함께 결정한 일이고 더 확실히 알아보지 않은 내 잘못도 있으니 일단 해결방안을 함께 찾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그의 대답은 집을 나가 돈을 벌어오겠다는 거였다.

당장 어딜 가려고 하느냐고 묻자 돌아온 대답 속에는 제대로 된 계획이 없어 보였다.

어려울 땐 서로 뭉쳐야 한다고, 같이 머리를 맞대고 문제를 해결해보자고 하는 나를 두고 결국 어느 날 아침 그는 짐을 싸서 출근하는 길에 "나 오늘부터 집에 안 들어온다."하고는 집을 나갔다.

그는 문제가 생길 때에는 회피하는 기질이 있었다.

그래서 그렇게 나를 놔두고 집을 나갔다.

언제 들어올지 기약도 없었다.

 

 어느 날 그가 주말에 집에 와서 말했다.

시댁에 가서 먹고 자고 회사일이 끝나면 다시 시댁 일을 도우며 일하고 있다고.

어이가 없었다.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던 것 같기도 했다.

전부터 시댁과 그는 시댁에서 운영하고 계신 사업을 언제 물려받을지 이야기가 오갔으나 시집살이에 시달리고 있던 나는 반대했다.

투자금 없이 받는 사업에는 그만큼 큰 대가가 따를 것이 분명했다.

아무튼 그와 대화하며 사업을 물려받는 일은 조금 미뤄뒀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그는 집을 나간 지 1개월쯤 되어서야 속내를 말했다.

"내년에 사업 물려받기로 했어."라고.

이 남자는 항상 통보하는 식이구나 싶어 더욱 화가 났다.

그러나 그 말에 제대로 반박하거나 화를 낼 여유도, 힘도 없었다.

그가 집을 나간 지 2개월쯤 되어서는 나에게 말했다.

"나 사실 지금 사업 물려받고 있어."

그리고 집을 나간 지 3개월이 되었을 때에는 이혼하자며, 자기 성공하는 길 막는 사람은 자기 인생에 두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나는 그가 더 이상 가난하게 살기 싫다고, 더는 배고프고 싶지 않다는 말로 나를 버릴 때 내가 가치 없는 사람으로 느껴져 너무 힘이 들었다.

숨이 막혔고, 그의 인생에서 돈보다, 사업보다 못한 사람이 된 것에 비통했다.

처음에는 나를 버리지 말라고 애원했지만 그는 컴퓨터만 있으면 된다고 나머지는 다 내가 가지라고 말하고는 컴퓨터만 들고 떠났다.

그렇게 나는 그와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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