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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결락 Feb 29. 2020

그 해 여름

산문

그 해 여름




삼 년 전, 박호민 시인과 여름 한 철을 보냈다. 여러 차례 왕래가 있었지만, 흑백영화의 스크래치처럼 기억 속에서 그해 여름이 지지직 줄이 그이는 것은 웃고 싶으면 웃고 울고 싶으면 울 수 있는 사람을 만났기 때문이었다.


그대, 모든 헤맬 길
서러움도 마른 뒤엔
살구꽃 피는 동구洞口에서 만나리.

-박호민, 별 후別 後 전문


휴가를 아우와 보내겠다며, 고흥에서 내 사는 거주지까지 버스를 타고 오신 호민 시인의 눈빛은 그의 어깨에 옷으로 입혀진 가방처럼 후줄근하고 홀가분해 보였다. 시인다웠다. 사흘을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마셨던 술의 양의 비해 유독 내가 많이 취했던 건 시인의 눈을 술잔으로 삼아 마신 탓일 게다. 얼근한 술기운에 “작것들”하며 두주불사의 출발을 알리는 그의 한 마디는 연주의 시작을 알리는 재즈의 트럼펫처럼 번쩍이면서도 판소리의 시작을 알리는 고수의 북채처럼 둔탁하기도 하였다. 언제 그칠지 모르는, 결코 그쳐서도 안 되는 “작것타령”이 시인의 입에서 흥얼거려질 때마다 긴 한숨을 내뿜으며 들이 킨 술잔은 허기가 진다. 항상 이랬다. 아직 나는 헤매고 있고, 불길 속에서도 마르지 않을 서러움도 있고, 미로 속에서 풀리지 않는 실타래를 끊어볼까도 하는데, 어느새 나는 살구향 비누가 굴러다니는 고향의 수돗가 앞에 쪼그려 앉은 아이가 되어 훌쩍훌쩍 짜고 있으니……. 형님, 왜 저는 형님만 보면 눈물이 날까요. 작것들. 형님, 눈물이 나요. 작것, 작것들.


사흘은 후딱 지났다. 누구를 만나면 시간이 되고, 또 누구를 만나면 세월이 된다. 짧은 세월이 아쉬워 모셔다 주마하며 내 차를 몰고 순천까지 동행하였다. 자고 가라 하신다. 그래서 새벽에 각자 길을 나서는 걸로 합의를 하고 여관에 들어섰다. 밤은 길고 만남은 짧아, 길고 짧은 건 술로 가늠해보자며 또 술을 마셨다. 이번에는 겉옷을 벗고 맨살로 앉았다. 미처 들이키지 못한 술 몇 방울이 시인의 메마른 갈빗대 사이에서 멈춘다. 내가 휴지로 닦아준다. 겸연쩍으셨던지, 아우야, 시인은 시를 써야 시인이야, 버럭 내뱉으시고는 “작것들”이라는 단칼을 휘두르신다. 시대정신詩大精神으로 벼린 시인詩人의 칼날에서 한 시대時代가 베어지는가 싶더니 시인時人이었던 나도 베어졌다. 협객의 일성에 튀어나온 뜨끈한 안주 파편들이 얼굴을 덮쳤다. 휴지로 내 얼굴을 닦고는 시인의 입 주위를 닦았다. 닦다 보니 또 눈물이 났다. 사랑에 속고 돈에 속은 홍도처럼 나는 울었고, 그런 나의 뒷목을 끌어당기며, 아우야, 울 줄 알아야 시인이야, 세상에 대해서 울 줄 모르는 것들은 시인이 아니라며 속삭이신다. 시인의 숨결에 귓가가 따스하다. 파편도 가득하다. 형님, 너무 더러워요, 꺼이꺼이. 작것, 작것들.


밤도 짧고 만남도 짧았다. 긴 건 술이었다. 직장이 쫄딱 망해서 딱히 할 일도 없었던 나는 기어이 시인의 주거지, 고흥까지 끌려갔다. 숲해설가셨던 시인의 뒤를 쫓아다니며 동냥 술을 얻어먹기도 하며, 소리꾼들을 만나기도 하며, 마을 사람들도 모르는 경치를 둘러보며 시인 체험마을의 일정을 소화해 나갔다. 살구꽃 피는 동구洞口에서 짹짹거리는 참새처럼.


토함산 추령 너머 감포 가는 길
잡목림 우거진 산정에서 오줌을 누는데
구경 나온 안개족 처녀들이 치마를 걷더니
사람 것들은, 쏴아 ─
한바탕 까르르 하늘로 가버렸다
그래, 창피했지
언어만 파먹고 살던 시인도
그림자 없는 고향을 서성대는 객도
돌아갈 차표 한 장 없으니
사람 것들은, 쏴아 ─
소낙비 퍼붓는다.

-졸시, 동행 전문


십 년 전 여름에도 우리는 동행을 했다. 경주에서 감포를 지나 울산역으로 가는 행로였다. 살구꽃 피는 마을을 지나 다시, 헤맬 길로, 서러움에 젖어가야 하는 길은 비가 내렸다. 추령 골짝에 피어오르던 안개가 우리네 마음 같았을까. 쳐다보기만 쳐다보다가 끝내 붙잡지 못하는 동행의 끝은 침묵이었다. 대합실에서 깃발 같은 손을 흔들며 살아있으라, 살아있으마 하고 보냈던 마지막 펄럭임은 슬픈 버릇이 되었는데도 훌쩍 돌아서는 시인의 등이 미웠다.


가난한 친구가 받아주는 낮술은
아끼는 맛이 좋아라
비 오는 바다 위로 청둥오리 떼 내리니
세상도 조금 느긋해지려나
수수깡, 마른 풀대 뼈를 부딪는 늦가을
기다림도 한 희망이라지만
기다림마저 잃었을 땐 어이 하리
드틴 약속은 부질없이 모래펄로 쌓이고
십리 해변길엔 파도소리뿐.
다시 돌아 돌아가려네, 비 그친 뒷길로
잡히지 않는 세상의 낮은 눈물들
반쯤만 버리고.

-박호민, 해변길 전문


기다리는 곳은 다 집이 된다. 집을 떠나 집으로 가야 하는 때가 왔다. 헤어질 때가 되면 해야 할 말은 못 하고 사람만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손 한 번 잡지 못 하는 사이였는데, 그날따라 시인이 내 손을 잡았다. 나는 손을 빼며 안 이러셔도 된다고 뿌리를 쳤지만 그는 끝까지 내 손을 잡고 놓지 않았다. 형님, 왜 이러십니까. 아우야, 얼른 가라. 잡은 손을 놓고는 언제나처럼 훌쩍 등을 보였다. 저만치 사라지는 미운 등. 진짜 미우십니다, 형님.

돌아오는 길, 갓길에 차를 세웠다. 십만 원, 동구에서 놀던 시절을 지나 다시 세상을 향해 나가는 여비라고 주신 것일까. 가난한 친구가 받아주는 낮술은 아끼는 맛이라도 있다지만 가난한 시인이 벌어다 준 여비는 아렸다. 눈물이 났다. 손을 잡힐 때 잠시 보았던 그렁그렁한 시인의 눈망울이 떠올라서, 목수일을 하다가 다쳤다는 툭 불거진 오른쪽 집게손가락이 떠올라서, 가난이 죄가 아니라지만 가난한 시인에게 받는 돈은 죄라는 걸 알게 되어 눈물이 났다.

생의 오의奧義는 눈물, 울어야 할 때 울어야 하고 울릴 수 있을 때 울려야 하는 슬픈 이가 시인이라는 걸 그는 너무 잘 안다. 가진 게 없어 시詩로 내몰린 운명에 순명하며 살기엔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아도, 그는 산다.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는 진부해졌다. 서정시로 살아남아야 하는 시대가 맞다.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도 낡았다. 초심은 없다. 태초에 기록이 있었고 기록은 한 줄 시였다. 그 태초부터 흘러온 줄기가 그에게는 가난한 술잔에 담긴 시였고, 나에게는 “십만 원”이었다.

세상 하늘 아래,
믿음은 하나
그리움도 희망이다.


언제나 그리움은 따뜻한 절망이었다. 그 절망을 믿고 또 믿는 건, 그가 보고 싶기 때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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