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즐기는 사람들

『북천역』

by 정정심

인터넷 검색엔진으로 기차역을 검색하다 보니 폐역(廢驛)이라는 의미가 직장 내에서 통용되는 의미와 다르게 사용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직원들에게 폐역에 관해 물으면 누구나 열차가 다니는지를 중심으로 대답한다. 다시 말해 선로 이설이나 신설 등으로 기차의 운행이 완전히 중지된 역이 바로 폐역이다.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폐역은 문이 닫혀 있어 내부로 들어갈 수 없으면 폐역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문이 닫혀 있더라도 열차가 다니면 무인역이다. 무인역과 폐역은 완전히 다르다. 무인역은 철도노선도에 존재하는 역이고 폐역은 완전히 자취를 감춘 역이다. 사람에 비유하자면 무인역은 살아있는 사람이고, 폐역은 죽은 사람인 것이다.


북천역을 검색하니 두 개의 북천역이 나온다. 북천역과 북천역(폐역)이다. 이럴 경우에는 자세히 알아보지 않아도 폐역이 맞다. 현재의 북천역과 과거의 북천역이 있다는 소리다. 2016년 경전선 이설과 함께 신역사가 문을 열었고, 과거의 북천역으로는 기차가 다니지 않게 되었다. 폐역이 된 북천역이 오늘 내가 가기로 마음먹은 곳이다.


오래전, 북천역에 근무하던 직원이 코스모스 씨를 뿌려 역이 유명해졌다는 소문이 난 적이 있었다. 보통은 ‘북천역 가꾸기’라던가 ‘코스모스 북천역’과 같은 이름으로 조직 프로젝트에 의해 역을 가꾸는 게 보편적인데 직원 혼자서 씨를 뿌려 유명한 역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당시 사무실에서 그 얘기를 전해 들으며 상급부서의 지시 없이 직원 스스로 씨를 뿌렸다는 이야기를 다들 못 믿는 눈치였다. 물론 지금까지도 사실 여부는 확인하지 못했다. 어쨌거나 북천역은 그때나 지금이나 코스모스로 이름난 역이다.

20241028_115236.jpg 하동레일파크, 북천역 폐역

북천역 진입로에 아치 모양으로 ‘하동 레일파크’라고 커다랗게 붙어있다. 이제는 북천역이 아니라 하동 레일파크다. 역사 벽면에 코스모스와 코끼리, 토끼 그림이 보인다. 거수경례하는 소와 양손으로 ‘좋아요’를 날리는 강아지도 나를 환영한다. 어디선가 어릿광대를 선두로 한 음악대가 나타날 것 같다.


승장장 쪽으로 나가다 보니 건널목이 보인다. 철도 제복을 갖춰 입은 역장이 한 손에 검표 가위를 들고 지키고 있다. 실제와 비슷한 크기로 제작된 모형이다. 하트와 부엉이로 장식한 포토존은 물론 색연필 모양으로 둘러싸인 의자까지 그야말로 사진찍기 좋은 곳이다. 최고의 포토존은 역시 풍경 열차다. 증기기관차처럼 생겼는데 레일바이크 표를 구매하면 풍경 열차를 타고 인근의 양보역까지 가서 레일바이크를 타고 돌아온다고 한다. 아쉽게도 내가 방문한 시간에는 운행 일정이 없어 타볼 수가 없었다.


코스모스가 승강장 주변을 뒤덮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코스모스를 찾기가 어려웠다. 시기를 못 맞춘 탓인지, 풍경 열차를 타고 나가야 코스모스를 볼 수 있는 건지……. 잠시 아쉬운 마음에 젖어있는데 어디선가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린다. 사진찍기에 몰두하고 있는 방문객들이다. 체크무늬 남방에 청바지를 똑같이 차려입었다. 중년 여성 셋이서 기억에 남을 사진을 찍으려고 이곳을 찾은 듯하다. 딸처럼 보이는 젊은 친구가 사진사다.


“이모, 좀 더 앞으로! 이모, 거기 말고! 셋이서 이쪽으로!”

더 멋진 사진을 찍기 위해 사진사는 그들에게 다양한 자세와 위치를 요구한다. 즐겁다는 듯 까르르 웃는 그들의 모습이 행복해 보인다. 똑같은 옷을 입고 추억을 함께 만들 친구가 있다는 사실이 부럽다. 얼마 전, 한 드라마에서도 학창 시절부터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이 한동네에 살며 같이 늙어가는 이야기가 나왔다. 자식들까지도 서로 마음을 나누는 친구로 지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나의 과거와 현재를 잘 이해해주는 친구가 필요하다고 느낀다. 내 흉허물을 늘어놓아도 보이지 않게 잘 덮어줄 수 있는 친구, 자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지는 친구, 온천탕에 들어앉아 하루종일 같이 있을 수 있는 그런 친구…….


나에겐 똑같은 옷을 입고 함께 사진을 찍고 싶은 친구가 몇 명이나 있나, 떠올려본다. 삶이 고달파서 스스로 연락을 끊은 친구, 나 자신이 인연을 끊어야겠다고 생각한 친구, 멀리 떨어져 있어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친구를 빼고 나니 한두 명의 얼굴이 남는다. 지금부터라도 자주 연락하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일렬로 서 있던 바람개비가 경쾌한 소리를 내며 돌아간다. 북천역 폐역,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놀이공원과 같은 곳이다.

하동레일파크를 지키는 역장

제 소임을 다한 역, 새 생명을 부여받아 다른 역할을 하고 있는 역, 방치되어 다 쓰러져가는 역 등을 둘러보며 나 자신이 한 발짝씩이나마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역을 바라보며 느꼈던 다양한 감정과 생각들이 스스로의 세계를 조금은 크게 만들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특히나 주변 사람들과의 갈등으로 마음이 요동칠 때 아무도 찾아주는 이 없는 기차역에서 멍하니 있다 보면 사는 게 뭐 별건가, 하는 마음이 절로 들었다.


불과 몇 년 후면 우리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작고 소박한 간이역은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무궁화호가 지나다니고, 한두 명의 역무원이 웃으며 손님들을 맞아주는 그런 역은 대부분 없어지고 고속열차가 질주하는 역들만 살아남을 것이다. 현실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내 마음속의 간이역 한두 개쯤은 늘 남겨두며 살아가고 싶다.


더 좋은 것, 더 멋진 것들은 늘 한발짝 앞에서 우리를 기다린다. 시간은 무언가를 자라게 하고 해마다 아름다움을 조금씩 더한다. 신의 가호로 고맙게도 우리는 또다시 한 해 더 앞으로 나아간다!

『정원가의 열두달』, 카렐 차페크, 옮긴이 배경린, 펜연필독약, 2019, p201.


세월이 흘러도 마음의 균형을 잘 잡고 살아가는 일은 늘 어렵다. 아마 죽을 때까지 흔들리는 마음과 드잡이를 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 사람의 운명인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무언가를 자라게 한다는 카렐 차페크의 말이 새삼 위안이 된다. 정원의 식물들도, 내 마음속에 자리 잡은 콩알만 한 인내와 관용과 사랑도 쑥쑥 자라기를 바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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