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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이셀러리 Dec 02. 2021

어른이들을 위한 일러스트레이터 : 조지 바비에르

세기말 찬란함과 몰락의 기운이 주는 매력



이미지 출처 : V&A



"세기말"이라는 단어는 사람들에게 묘한 위화감을 안깁니다.

한 세기가 끝난다라는 것은 다가올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알 수 없는 기대, 종말이 주는 두려움 등 복합적인 감상을 일으킵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유럽은 역사적 풍랑과 더불어 세기말 정서가 불러일으키는 전환의 시기였습니다.

군주제가 종말로 치닫고 선거권은 확대되며 제1차 세계 대전 발발 전의 평화로운 시대에 마치 회광반조의 현상처럼 <좋은 시대>라는 의미의 벨 에포크의 시대가 세기말을 점령했습니다.

학자마다 이견이 있지만 대체적으로 19세기 말에서 1914년 이전까지의 문화예술적으로 찬란했던 그 시기는 사실은 매우 어두운 이면을 간직한 "일부 부유층만의 전유물"이기도 했습니다.

찬란하고 아름답지만 사치스럽고 향락에 젖어 퇴폐적이고 탐미적인 시기

이후 타이타닉이 침몰하고 세계 대공황과 세계대전으로 유럽은 몰락하고 그래서 벨 에포크의 시기는 더더욱 찬란함으로 기억됩니다.

패션계에서는 러시아 발레단의 파리 공연을 계기로 동양풍의 신비스러움과 화려함을 표현한 스타일로 벨 에포크를 기억하는데

선구자 폴 푸아레를 필두로 뛰어난 패션 일러스트레이터의 거장들이 등장하고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작가 중 하나가 바로 조지 바비에르입니다.

바비에르는 현재 획득하고 있는 명성에 비해 개인사적인 자료가 베일에 휩싸여 있고 그의 죽음 후에는 상당기간 잊힌 작가이기도 했습니다.

활동을 왕성히 하던 전성기인 50살의 비교적 이른 나이에 사망을 하였고 그와 협업하기도 했던 뛰어난 작가 에르떼(Erte)와 유사하다고 폄하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그의 사후 큐비즘과 같은 더 추상적이고 남성적인 스타일이 유행했기에 바비에르가 영향을 받고 좋아했던 고전 예술의 흔적들 -그리스와 에트루리아 인들의 화병과 고대 그리스의 숲과 프레스코화-또한 그를 잠시나마 잊힌 작가로 만든 요소 이기도합니다.




그는 '르네상스적 인물'이기도 하였습니다. 

지금은 그의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이 워낙 유명하지만 생전에 조지 바비에르는 책의 삽화와 연극 의상 디자인으로 성공을 거두었고 보석, 유리, 벽지 디자인도 하였으며 수많은  사회 논평과 예술 비평 및 연극 평론을 잡지에 기고했습니다. 

조지 바비에르의 작품의 영감을 주는 요소들은 18세기 유럽 문화의 화려함과 고전 예술 작품들이었습니다. 


그가 그린  배경에는 역사적인 소재들이 빈번하게 등장합니다. 화려하고 이국적인 화병과, 커튼, 장식물, 직조물들이 당시 유행을 선도한 패션 의상을 입은 여인들과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섬세하고 정교한 화풍에 조화로운 색채의 향연, 특히 바비에르는 대담한 색들을 사용했고 그림이 주는 분위기는 지극히 세련되고 장식적이었습니다. 

그의 패션 일러스트레이션 속에는 댄디즘과 사치에 대한 사랑이 드러나며 여성들끼리의 친밀한 포즈와 여성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솔직한 묘사가 있기도 해서 현대의 비평가들은 '립스틱 레즈비언 시크' 디자인 미학이 나타난다고 보기도 합니다. 바비에르가 묘사한 남성의 특징은 남성성이 배제되어 여성인지 남성인지 구별이 모호하다는 점도 있습니다. 남성미가 거세된 인물 묘사는 기존의 관습을 벗어나 외설적이지는 않으나 묘한 관능성을 드러냅니다. 

간결하고 소박한 선과 기하학적인 형태 속에 구현된 나른한 관능미, 이국적인 배경 안으로 들어간 서구적인 캐릭터들의 이질감이 주는 신선함은 바비에르가 꿈꾸던 다른 세계로의 탈출 의지와 욕망이 투영되어 있습니다. 


1882년 19세기의 말에 태어나 1932에 사망한 그의 삶은 짧았던 풍요의 시대와 궤를 함께합니다. 

재능이 넘쳐난 만큼 감수성이 뛰어나고 예민한 성정을 가졌을 것이라 짐작되는 그가 

남다른 심미안과 뛰어난 취향을 바탕으로 만들어낸 '세계'가 온전히, 완벽하게 당시 이해받았을는지 알 수 없습니다. 


중국과 일본의 황실 이미지, 중동의 하렘, 호화로운 로코코 스타일의 궁전과 고대 그리스의 신고전주의 풍경이 아름다운 여인과 패션과 결합되어 더없는 시각적 미감의 만족을 채워주는 그의 작품은 지금의 눈으로 봐도 아름답기 그지없지만 곧 사라져 버릴 것 같은 위태로운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그의 삶이 베일에 쌓여있고 짧았기 때문인지, 벨 에포크라는 시대가 주는 향수 때문이지는 모르겠지만 

조지 바비에르의 작품들은 설명할 수 없는 애상과 탐미의 극단이 남기는 허무의 감상을 안겨줍니다. 

비록 그것이 지극히 상업적이고 현실적인 용도로 그려졌다 할지라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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