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검진
태어나서 서른 세 해, 다른 건 몰라도 건강만큼은 누구보다도 자신할 수 있었다.
감기도 잘 걸리지 않았고, 가끔 음식을 잘못 먹었을 때 배앓이를 하는 것 빼고는 약을 먹는 일도 없었다.
힘들다는 3년의 사법시험 준비기간에도 한약 한 번, 흔하디 흔한 홍삼 한 방울 먹지 않고도 크게 힘든 줄 몰랐다.
일주일에 여덟 번씩 재판을 가야 하는 벅찬 스케줄을 감행하면서 이렇게 살다가는 정말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년 반의 로펌 생활 끝으로 일이 바쁘지 않다는 공공기관 법무팀으로 옮겼다. 일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해가 떠있는 시간에 퇴근하는 기쁨을 누렸다.
하지만 그 기쁨은 채 한해도 넘기지 못했다.
2016년 3월 출근하기 싫음을 핑계로 다른 직원들보다 조금 일찍 건강검진을 했다. 로펌에 다니는 동안은 건강검진을 별도로 받지 않았기 때문에 종합 건강검진은 서른 세 해 만에 처음 받는 것이었다.
한 달쯤 지나 건강검진을 받았다는 사실도 잊어버렸을 무렵, 회사로 배달된 건강검진 결과지는 나의 예상과는 달랐다.
"갑상선내 석회화된 결절이 보입니다. 이비인후과 등 전문의의 진료가 필요합니다"
인터넷에 "갑상선 결절"을 검색해보니 갑상선 결절은 흔하게 발견되는 것이고, 대부분이 양성으로 판명이 된다고 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몇 년 전 엄마와 아빠도 갑상선에 결절이 있어서 조직검사(세침검사)를 받았고,
양성으로 나왔던 게 생각났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삼성서울병원에 진료 예약을 하려고 전화를 걸어 건강검진 결과지를 언급했더니 급하게 예약을 잡아주었다.
삼성병원에 예약하기가 쉽지 않은데 당장 다음 주로 급하게 잡아주는 예약에 문득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하던 일을 멈추고 인터넷에 "갑상선 결절"과 "석회화"를 함께 검색해 보았다.
아뿔싸!
갑상선 결절은 우리나라 성인에게서 흔히 볼 수 있지만 그 결절이 석회화되었을 때에는 완전히 다른 얘기였다.
석회화된 결절은 대부분 암으로 판명이 난다고 했다.
하지만 "암"은 나와는 너무나 먼 단어 같았고, 다른 사람은 다 암에 걸리더라도 나에게 이런 일이 올 거라고는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애써 나에게 일어날 일이 아닐 거라고 부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