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내린 폭우가 미리 예고라도 한 듯, 하롱베이에 도착했어도 구름이 가득했다. 햇빛 하나 없는 흐린 하롱베이는 4시간 동안 달려온 나에게 꽤 안타까운 실망감을 안겨줬다. 베트남이라고 하면 항상 수식어처럼 따라붙는 관광지 하롱베이를 두 눈으로 보고 싶어서 이렇게 왔지만, 나의 소감은 '글쎄'였다. 한참 바다 위를 항해하는 배의 갑판 위에서 열심히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솔직한 생각은 우리나라 남해 한려 해상 국립공원에서 배를 타고 보는 것 같은 느낌이 강했다. TV에서 그렇게 홍보하던 하롱베이는 중국의 장가계처럼 웅장하고 아름다울 줄 알았는데 현실은 정반대였다.
중간에 동굴 투어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기에 살짝 기대를 했지만(슬로베니아 포스토이나 동굴의 느낌을 기대했었다.), 인위적인 화려한 조명들로 장식을 해놓고 석순이나 석주들을 보면서 사자를 닮았느니 무엇을 닮았느니 하는데, 전혀 공감을 못했던 나는 영혼 0%의 리액션만 보여줬다.
2014. 베트남 하노이
동굴 투어가 끝나고, 다시 배는 출발해서 바다 위에 떠있는 수상가옥으로 갔다. 간이 선착장에 내려서, 작은 나무배로 조를 나눠 갈아타고 하롱베이 섬들의 구석구석을 둘러볼 수 있었다. 그제야 내가 하롱베이에 있다는 느낌을 제대로 받을 수 있었다. 섬들에 만들어진 자연적인 동굴을 배를 타고 천천히 지나면서 다시 바깥으로 나올 때 만나는 풍경들이 상당히 멋있었다. 안전 때문인지 아니면 위치적으로 멀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처음부터 동굴 투어를 빼버리고 이런 구성으로만 투어를 만드는 것이 훨씬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 코스라도 없었다면 난 하롱베이에 대해서 평생 안 좋은 기억만 가지고 있었겠지. 하롱베이는 들어올 때 보다 나갈 때 만나는 풍경이 더 멋있었다. 만약 파란 하늘이었다면, 난 감탄사를 연발했을 것 같다.
난 여행을 다녀오면 내가 좋았던 곳을 지인들에게 추천한다. 그리고 코스를 짜주기도 한다. 그런데 하노이 여행에 있어서는 나는 하롱베이를 그렇게 추천하지 않았다. 왜냐면, 다음날 떠난 투어에서 내가 하노이 여행을 생각하면서 가졌던 가장 이상적인 곳을 만났기 때문이다.